시즌 도중 홍명보 대신 4위팀 맡아…위험 감수하는 역동적 축구 구사
“기회를 기다리기보다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더 좋은 기회를 창출하는 역동적인 축구다.”
올해 프로축구 1부리그(K리그1)에서 프로축구사상 세 번째로 리그 3연패를 이룬 김판곤 울산 HD 감독(55)이 추구하는 축구다. 김 감독은 지난 7월 국가대표 사령탑으로 떠난 홍명보 감독 대신 울산 구단 지휘봉을 잡고 4위에 처져 있던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통제, 압박, 전진, 위험 감수라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한 ‘김판곤식’ 게임 모델은 울산을 단순히 이기는 팀이 아니라 경기를 지배하면서 이기는 팀으로 성장시켰다는 평가다.
김 감독은 지난달 리그 우승을 조기에 확정한 뒤 자신을 “지하 10층에서 시작한 사람”이라고 자평했다. 호남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부상으로 프로 선수생활을 조기 마감하고 지도자 길을 걷기 시작했다. 부산 아이파크에서 코치, 감독 대행을 하면서 성과를 냈지만, 스타 출신 지도자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국내 축구계의 구조적 한계를 절감하고 홍콩으로 떠났다. 그는 홍콩 사우스차이나에서는 리그를 2연패 했고, 2009년 홍콩 국가대표 감독으로 홍콩 축구 역사상 첫 국제대회 우승을 만들었다. 대한축구협회 감독 선임 위원장을 그만둔 뒤에는 2022년 말레이시아 대표팀 사령탑에 올라 43년 만에 말레이시아를 아시안컵 본선에 진출시켰다. 김 감독은 “맡은 팀마다 최고 성적을 올렸지만, 더 높은 곳에 오르기에는 한계가 있는 팀들이었다”라며 “K리그 강호인 울산을, 그것도 시즌 도중에 맡아 우승까지 만들었으니 무척 뿌듯하다”고 말했다.
“축구 감독은 서비스맨이다”
김 감독의 축구 철학은 ‘하이 리스크(고위험), 하이 리턴(고수익)’을 기반으로 한다. 그는 모든 순간 위험을 감수하며 도전하는 플레이를 선호한다. 실점할 위험도 있지만, 상대 진영에서 볼을 빼앗으면 득점할 가능성은 커진다. 김 감독은 “상대 진영 깊숙한 곳에서 공격적으로 상대를 압박해서 성공하면 더 확실한 기회를 잡을 수 있다”며 “엉덩이를 빼고 뒤로 물러나 안정적으로 플레이하면서 상대 실수를 기다리는 축구는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나는 우왕좌왕, 갈팡질팡하지 않고 확고한 게임 모델을 가능한 한 빠르게 전달하고 세팅하는 노하우를 가졌다”고 자평했다.
울산 선수들은 나이가 다소 많아도 기량과 몸값, 경험 등에서 K리그 최정상급 선수들이다. 김 감독이 지시하는 명확하면서 힘 있는 게임 모델은 울산 선수들에게 축구를 하는 재미, 힘들어도 경기를 지배하면서 이기는 재미를 불어넣었다. 그게 울산이 1점 차 승부에서 강한 면모를 보이며 막판 역전 우승을 달성한 원동력이 됐다.
지난 7월 말 김 감독이 부임했을 때 울산은 경기력이 하락하고 있었다. 수비 조직력도 많이 약한 상태였다. 그는 수비만 보강하고 나머지는 그대로 유지하라는 주위 조언을 거부했다. 대신 빌드업, 압박, 프로그레션, 피니싱 등 거의 모든 전술을 바꾸는 선택을 감행했다. 김 감독은 “초기에는 반신반의하는 지도자, 선수도 있었다”며 “게임 모델에 따른 반복적인 훈련, 그로 인한 성과를 경기에서 맛보면서 선수단은 자신감을 되찾았고 조기 우승까지 이뤄냈다”고 자평했다.
김 감독은 아름다운 축구보다는 역동적인 축구를 좋아한다. 김 감독은 “다이내믹한 축구는 관중을 흥분시키는 동시에 선수에게도 즐거움을 준다”며 “상대팀을 상대 진영 안에 가두고 옥죄는 플레이를 해본 뒤 ‘재밌다’고 말하는 선수들을 볼 때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강호 맨체스터 시티의 세밀한 빌드업, 위르겐 클롭 감독이 이끈 리버풀의 ‘헤비메탈식 축구’, 브라이튼의 수적 우위 점유법 등 현대 축구 다양한 전술을 연구한다. 김 감독은 “아무리 좋은 전술이라고 해도 우리 선수들에게 맞춰 변형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고 강조했다.
김 감독은 축구 감독을 ‘서비스맨’이라고 정의한다. 김 감독은 “과거 감독에게는 소위 아우라와 카리스마가 요구됐지만, 현대 축구에서 감독은 선수들에게 최고 환경과 지원을 제공하는 서비스맨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감독이 선수들에게 가장 좋은 훈련 프로그램, 명확한 경기 플랜,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제공해야만 선수들에게도 높은 성과를 요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감독의 역할은 “모든 면에서 승리할 확률을 높이는 것”이다. 김 감독은 “승패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지만, 이길 확률을 최대화하는 것은 감독이 할 수 있는 분야”라며 “확률을 높였는데도 패했다면,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데 교훈으로 삼고 보완하면 된다”고 말했다.
모든 선수에게 고르게 기회 제공
김 감독은 모든 선수에게 고르게 기회를 제공하는 공정성을 강조했고, 이를 통해 선수들이 감독의 의도를 믿고 따를 수 있도록 유도했다. 경기에 나서는 11명은 가장 좋은 경기력을 가진 선수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지켰다. 동시에 후보 선수, 부상으로 빠진 선수들을 인간적으로 배려했고 격려했다. 김 감독은 “나는 칭찬을 주로 한다. 잘못된 것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선수가 더 잘 안다”며 “부족한 걸 고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하는 걸 더 잘하게 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좋은 것을 먼저, 많이 이야기하고 부족한 것 한두 개만 고치면 더 뛰어난 선수가, 국가대표가 될 수 있다고 말하면 선수들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스스로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김 감독은 모든 구성원과 좋은 하모니를 이루는 게 좋은 리더라고 말했다. 그는 “리더는 선수들이 원하는 것을 찾아 제공하고, 팀의 방향성과 목표에 대한 공감대를 끌어내야 한다”며 “모든 구성원이 원하는 것을 잘 종합해 각자 가진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게 감독의 의무”라고 설명했다.
김 감독은 ‘꼰대’라는 말을 들어도 아버지로서, 인생의 스승으로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듣기 싫어하는 선수도 있는 게 사실”이며 “그래도 좋은 사람이 돼야 축구에 더 집중할 수 있고 축구를 더 잘할 수 있다는 신념에는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 김 감독은 돈 관리, 화 다스리기, 좋은 남편·애인·아버지 되기, 바람직한 친구 관계 유지 등 인생 전반에 걸쳐 본인의 경험담을 전했다. 김 감독은 “선수들이 먼저 좋은 사람, 훌륭한 직업인이 되고자 하면 훈련은 스스로 열심히 하고 자발적으로 자신을 통제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울산은 2024년 K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2024~2025시즌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내년 6월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에 출전한다. 김 감독은 “현재 우리 전력으로는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 클럽월드컵에서 좋은 성과를 기대하기는 힘들다”며 “내년 시즌에 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선수단 개편 등 전력을 끌어올릴 방안을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