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정치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 한다. 그런 고귀한 단어가 ‘정치질’이라고 폄하되며, 선동·분탕의 의미로 쓰일 만큼 현실 정치는 오염됐지만, 여전히 이 사회를 잘 지탱해 보고자 하는 시민들은 다시 한번 정치에 희망을 건다. 지난 총선은 우리 시대 가장 주요한 사회 문제가 된 기후위기를 정치로 해결해보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던 선거였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자신을 기후 유권자로 규정한 사람들이 더 많은 기후 유권자를 결집하고 후보자에게 기후정책을 요구했다. 대한민국에서도 이제 기후는 과학이나 환경의 영역이 아닌 정책과 정치의 문제로 논의되게 됐다.
검찰은 문제가 있는 법 조항을 과도하게 해석해 시민단체의 정당한 정책 비교를 위축시키는 행위를 삼가야 하고, 국회와 중앙선거위원회는 하루빨리 자기모순을 해결해야 할 것이다.
기후를 정치로 해결해 보려면, 좋은 정책이 절실하다. 경남 창원의 한 환경단체는 그러한 취지에서 지역 국회의원 후보자 11명이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공약에 ‘기후’라는 관점을 투영해 최우수·우수·보통·미흡·낙제로 평가했고, 그 결과를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했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활동이 공직선거법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기소돼 재판을 받게 됐다. 공직선거법 제108조의3을 위반했다는 것인데, 이 조항은 언론기관과 단체가 정당과 후보자의 정책·공약에 관해 비교평가하고 그 결과를 공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후보자별로 점수를 부여하거나 순위나 등급을 정하는 등의 방법으로 서열화하는 행위’는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상당히 당혹스럽다. 비교평가를 원칙적으로 할 수 있다고 해놓고, 서열화는 해서는 안 된다니. 우리가 후보들의 정책을 비교한다고 할 때는 무엇이 똑같고, 무엇이 다른가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구의 정책이 더 나은가를 보기 위해서가 아닌가? 특히 기후정책의 경우 그 용어와 내용이 일반적이지 않아 온실가스 감축 효과 면이나 기타 사회경제적 효과를 수치화해서 비교해 보여줄 수 있다면, 유권자들은 더 적극적인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다.
2012년에도 이 조항의 모순이 문제 된 적이 있었다. 중앙선관위는 이 조항이 언론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약하고 정책선거(매니페스토)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며, 종합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개정 의견을 제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10년이 지나도록 개선되지 않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정책선거를 표방하고 홍보한다. 그런데 정책선거를 가로막는 이러한 독소조항조차 해결하지 않고, 정책선거가 무엇인지 홍보만 해서 될 일인가? 우리가 2050 탄소중립, 앞서는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해 기후 문제 해결의 희망을 부여잡기 위해서는 2026년 지방선거를 통해 지역별로 야무지고 치밀한 기후정책이 뿌리 깊게 자리매김해야 한다. 그러려면 각 지역 후보들의 공약은 더 치열하게 비교평가되고 공표해야 한다. 검찰은 문제가 있는 법 조항을 과도하게 해석해 시민단체의 정당한 정책 비교를 위축시키는 행위를 삼가야 하고, 국회와 중앙선거위원회는 하루빨리 자기모순을 해결해야 할 것이다.
<지현영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