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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0일 서울 성북구 동덕여자대학교 월곡캠퍼스 운동장에서 열린 학생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는 학생들. 이날 남녀 공학 전환 안건에 대해 투표를 진행했다. 정효진 기자

지난 11월 20일 서울 성북구 동덕여자대학교 월곡캠퍼스 운동장에서 열린 학생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는 학생들. 이날 남녀 공학 전환 안건에 대해 투표를 진행했다. 정효진 기자

헬스를 시작했다. 지난해 풋살에 이어 운동을 본격적으로 배우는 건 두 번째다. 저녁 약속이 없을 때면 일터에서 헬스장으로 곧장 퇴근하는 게 일상이 됐다. 퍼스널트레이닝(PT)도 따로 받고 있다. “술을 줄이라”는 PT 선생님의 잔소리가 내심 반갑기도 하다. 직장인이 된 이후 내 밥상을 이토록 살펴봐 준 이가 있었나 싶다.

헬스장 앞엔 ‘여성 전용’이란 안내판이 붙어 있다. 집에서 도보로 7분 거리라는 점이 1순위 요인이었으나, 여성 전용이란 점도 마음에 들었다. ‘헬스’ 하면 남성 보디빌더부터 떠올리는 사람에게 일반 헬스장의 장벽은 높다. 운동하는 모양새가 조금만 어색해도 튀어 보이지 않을까? 탈의·샤워 시설 이용에서도 좀더 안전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풋살을 시작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다른 세상이 보인다. 헬스장을 찾는 여성의 연령대는 상상 이상으로 다양했다. 15㎏도 힘든데 40㎏ 무게를 거뜬하게 치는 ‘언니’(멋있으면 다 언니)들도 수두룩했다. 헬스와 별도로 열리는 스피닝 수업은 대기자가 있을 만큼 인기다. 혼자 운동할 때 자세를 바로잡기 위해 영상을 몇 번 찾아본 탓에 유튜브 알고리즘은 온통 헬스 관련한 내용이다.

헬스장 등록 전에 여성 전용 헬스장을 검색한 적이 있다. 온라인상에는 ‘여성 트레이너는 무조건 걸러라’, ‘여성 전용 헬스장은 상술이다’ 등 부정적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반면 생각보다 여성 전용 헬스장의 수가 많아서 놀라기도 했다. 절대 걸러야 한다는 여성 전용 헬스장이 성행한다는 건 그만큼 수요가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니까.

여고와 여대를 나온 내게 여성에게만 허락된 공간은 낯설지 않다. 남성 구성원이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여성이 수적 우위인 공간을 접해봤다는 의미다. 통제받던 여고 생활과 달리 무한한 자유와 권한이 주어졌던 여대에서의 경험은 특별했다. 각종 장(長)은 물론 의사결정의 주체 등 ‘디폴트’가 여성인 그토록 거대한 세상은 여자대학 외에는 경험해보지 못했다.

직장생활을 한 햇수가 여대에서의 5년을 넘긴 지 오래다. 그때의 경험이 체화된 것 같긴 한데 기억은 희미하다. 지금 발 디딘 세상은 남성의 얼굴을 하고 있다. 역대 여성 편집국장이 한 명이던 회사는 말할 것 없고, 출입처 역시 남성이 과대 대표됐다. 22대 국회에 입성한 여성 지역구 의원은 36명, 비례대표는 24명이다. 전체 300명 중 20%로 절반에 한참 못 미친다. 그런데도 역대 최다 기록이라고 한다.

최근 ‘동덕여대 공학 전환 반대 시위’가 화두다. 시위 방식을 두고 여러 갑론을박이 오간다. 정치부에서 한 발 떨어져 사태를 본 입장에서 한 마디를 얹기 조심스럽다. 위기에 몰린 보수 정치인들이 ‘폭력 사태’ 운운하며 쉽게 여론몰이용으로 쓸 만큼 사태는 간단하지 않다는 건 알겠다.

여대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학생들의 이야기에 공감한다. 여대는 여성들이 자신의 주체성에 대해 ‘안전하게’ 논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이다. 이 사태에 학내 무단침입, 칼부림 예고 등 일부 남성들의 이해하기 힘든 반응이 나온 이유를 되짚는 이가 적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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