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선거 결과를 취재하며 가장 많이 들은 말은 “김 기자는 몰랐어? 나는 알았어!”였습니다. 대선 기간에 꽤 많은 미국 내 보도, 전문가 분석 등을 읽었지만 솔직히 몰랐습니다. ‘나름대로 예측은 있었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가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아마도 “나는 알았어”라고 말한 분들 역시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누구든 확신했다면, 지금쯤 엄청난 부자가 됐거나 거지가 됐을 테니 말입니다. 이처럼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을 ‘확신’한다는 것은 엄청난 기회이자, 동시에 위기입니다. 적어도 공신력을 지향해야 할 언론, 국민을 책임진 정부가 할 일은 아닙니다.
미국 대통령선거가 끝난 시점에서 지난 2년 반, 윤석열 정부 외교정책을 돌아봅니다. 왜 자꾸 ‘확신’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질문만 떠오르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영원할 것처럼 확신했습니까”, “왜 한·미동맹만 한국 안보정책의 전부인 것처럼 확신했습니까” 등입니다. 정부의 확신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함께 이제 한국의 위기가 됐습니다. 그가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 외에 한국 외교·안보 정책에 무슨 선택지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미국 내 유명한 국제정치 전문가들과 이야기할수록 낙담은 더욱더 깊어졌습니다. 당장 한·미동맹만 봐도 그들과 우리의 인식이 너무나 달랐습니다. 그들은 “트럼프는 한국에 더 많은 방위비 분담금을 요구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 미국만 기여한다고 생각하느냐. 우리도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기여하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그러면 답장이 없거나 “한국이 다른 대안이 있느냐”는 식의 핀잔이 돌아왔습니다. 저 역시 ‘동맹’을 이성이 아닌 감성으로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지난 2년 반, 윤석열 정부 외교정책에 관한 기사를 썼습니다. 비판적 접근을 해왔지만, 지금만큼은 순수하게 응원하고 싶어집니다. ‘한국은 미국이 결코 놓쳐선 안 될 동아시아의 린치핀(Linchpin·핵심)’임을 윤석열 대통령이 꼭 한번 각인시켜주길 기대합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