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시드 레인: 죽음의 비-재난에 맞선 프랑스 가족의 대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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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딸 셀마다. ‘기후위기란 정리해고를 가리기 위해 가진 자들이 퍼뜨린 낭설’이라는 음모론을 믿는 아버지에 맞서 셀마는 “나 같은 미래세대에게는 정말로 중요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셀마는 지구적 재난을 겪고 난 뒤 성장한다.

/㈜엔케이컨텐츠

/㈜엔케이컨텐츠

제목: 애시드 레인: 죽음의 비(Acid/Acide)

제작연도: 2024

제작국: 프랑스

상영시간: 100분

장르: 드라마, 재난, 스릴러

감독 : 쥐스트 필리포

출연 : 기욤 까네, 라에티샤 도슈, 파스장스 문헨바흐

개봉: 2024년 11월 27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수입 : ㈜엔케이컨텐츠

배급 : ㈜디스테이션

한국이라면 어땠을까. 쥐스트 필리포 감독의 영화 <애시드 레인: 죽음의 비>를 보며 끊임없이 떠오른 생각이다. 기후변화로 어느 날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사람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살인적인 독성(산성)을 갖게 된다면? 빗방울은 마치 백린탄처럼 연기를 내뿜으며 땅속을 파고든다. 사람들이 우왕좌왕 필사적으로 도주하는 대혼란이 벌어진다. 국가 시스템은 붕괴하고 생존에 필요한 제한된 자원을 차지하려고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벌어진다. 국가에 이어 사회도 무너지고 만다. 정말 그렇게 될까.

산성비가 만들어낸 아포칼립스

불과 몇 년 전이다. ‘코로나19 시국’이라고 불리던 감염병 만연 시기. 이 역시 재난이라면 재난이라고 할 수 있겠다. 확실히 국가의 통제를 순순히 따랐던 한국이나 대만 등 동아시아권과 마스크 착용 문제를 개인 자유권 침해로 인식하는 유럽의 사회적 정서는 달랐다.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쪽에서는 ‘5G 전파가 코로나바이러스를 퍼뜨린다’라는 괴담까지 그럴듯하게 유포돼 기지국을 파괴하는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진짜로 ‘모든 것을 녹이는 산성비’가 내린다면 우리는 뭘 했을까. 지진이나 핵폭발 이후의 아포칼립스와 같은 상황이 아니다. 쓰나미나 대홍수도 아니고 산성비를 머금은 먹구름만 피하면 된다. 일단 콘크리트 건물 안에 머무는 것이 제일 안전하다(영화에서도 그 재앙을 일으키는 산성비가 콘크리트를 뚫고 파고들진 못한다). 다행히도 한국의 주거 형태는 콘크리트로 지어진 아파트가 대세다.

미셸(기욤 까네 분)은 파업 중 경찰기동대를 폭행해 보호관찰 처분을 받는다. 경찰기동대를 두드려 패는 영상이 소셜미디어에 공개돼 사회적 비난도 받는다. 미셸의 가정은 이미 풍비박산 난 상황이다. 부인 엘리스(라에티샤 도슈 분)와 열다섯 살짜리 딸 셀마(파스장스 문헨바흐 분)는 그와 별거 중이다. 미셸은 같이 노조 운동을 했던 카린이라는 여성에게 호감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남미에서 산성비를 맞고 가축이나 동물이 다쳤다는 뉴스가 나온다. 모두 “그건 남미의 일이고 프랑스 같은 유럽에는 그런 일이 일어날 리 없어”라며 무시하는데 그 ‘모든 걸 다 녹이는’ 산성비 먹구름이 프랑스에도 나타난다.

재난 영화는 결국 가족 성장 영화?

재난 영화의 전형적인 클리셰(진부한 설정)는 가부장성에 바탕을 둔 가족 성장 서사다. 이혼이나 별거 등으로 분열한 가정이 재난 상황을 맞아 재결합한다는 공식이다. 사회적으로 무능력하고 비난받는 남편은 이 결정적인 순간에 ‘남자 구실’을 하면서 가족 재결합을 이끈다. 부인은 전남편과 새 남자 친구 사이에서 갈등하는데, 이 새 남자 친구는 전남편이 갖지 못한 부나 지위를 가졌지만, 재난 상황에는 별 쓸모가 없다.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아이가 갖는 내면의 갈등은 ‘이유 없는 반항’ 또는 ‘지체된 성장’으로 묘사된다. 주인공인 전 남편은 영화 절정부에 가부장의 능력을 ‘입증’하고, 전 부인과 아이는 그에게 돌아온다. 남성 판타지다. 아이 역시 이유 없는 반항을 그치고 지체됐던 성장은 다시 정상 궤도에 오른다. 영화 <2012>(롤랜드 에머리히 감독·2009)에서 배우 존 큐잭이 맡은 주인공 잭슨의 딸 릴리는 영화 마지막에 아버지의 귀에 대고 “이제 저 기저귀를 차지 않어요!”라고 속삭인다. 영아 수준으로 지체됐던 성장이 다시 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애시드 레인: 죽음의 비>의 주인공도 가부장인 미셸일까. 얼핏 그래 보인다. 파업 장면으로 시작한 영화는 지속해서 ‘이 영화의 주인공은 미셸이야’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딸 셀마다. ‘기후위기란 정리해고를 가리기 위해 가진 자들이 퍼뜨린 낭설’이라는 음모론을 믿는 아버지에 맞서 셀마는 “나 같은 미래세대에게는 정말로 중요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어머니 대신 다른 여자를 택한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던 셀마는 이 지구적 재난을 겪고 난 뒤 성장한다.

영화의 원작 동명의 단편영화와 비교해 보면

/유튜브 캡처

/유튜브 캡처

<애시드 레인: 죽음의 비>는 같은 감독이 만든 동명의 18분짜리 단편영화(사진)를 확장했다. 이 단편영화는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데 댓글에는 핍진성이 없었다는 지적이 많다. 위험한 산성비가 내리는데 등장인물들이 어리석게 행동한다는 것이다. 장편도 마찬가지다. 일단 대피소. 장편은 모든 대피소가 꽉 차 프랑스를 벗어나 외국으로 가야 한다는 설정인데 굳이 그 사람들이 산성비 속에 수백㎞를 이동해 가족 생명을 위험으로 내몰 필요가 있을까. 대피소를 향하는 대열을 놓친 주인공 부녀가 한 마을에 들어서는데 하필이면 집들이 낡은 목조건물이라 산성비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설정 역시 무리수 같다.

단편이나 장편 모두 ‘만약 치명적인 산성비가 내린다면 세상은,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의 행동은 어떨까’라는 아이디어를 놓고 벌인 일종의 사고실험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각본이 그리 영리해 보이지는 않는다. 아이디어나 연출은 오히려 단편영화가 돋보인다. 단편에서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고속도로 바닥에 누군가 흘린 곰 인형이 산성비를 맞아 녹아내리는 장면이 나온다. 산성비로 단란한 가정이 파괴된다는 은유다. 또 부부가 (장편과 달리) 어린 남자아이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산성비를 피해 도망가는데 영화의 호흡이나 편집이 장편보다 낫다. 장편을 보면 감독이 가졌던 아이디어는 단편으로 다 소진해버렸는데 뜻밖의 호평을 받아 엿가락 늘이듯 억지로 만든 느낌이 든다. 두 영화 모두 왜 그런 모든 걸 녹이는 산성비가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나오지 않는다. 기후변화(장편영화에서는 고집스레 지구온난화라는 말을 쓴다) 때문으로 대신하고 넘어가긴 설명이 부족하다. 이번 영화의 후속편이 만들어진다면 예컨대 ‘어디 대서양쯤 아래에 있던 아황산가스의 커다란 거품이 터지면서 산성비 구름이 만들어졌다’는 식으로 뒤늦은 배경 설명이 나올 만도 하다. 하지만 후속편이 만들어질 가능성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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