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다가올수록 몸이든 마음이든 지쳐가고 있다는 걸 절감한다. 하루쯤은 쉬고 싶다고, 마음 놓고 쉬고 싶다고 되뇌곤 한다. 가을이 깊어가고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는 게 느껴지는 어느 날이었다. 전북 장수는 좀처럼 인연이 닿지 않던 곳이었다. 한국의 오지를 이야기할 때, 강원도를 빼면 의외의 지역이 등장하게 마련이다. 그중 하나가 ‘무진장’이다. 무주, 진안, 장수. 전주와 대전이 가까워 무슨 오지가 있나 싶겠지만, 의외로 한국 최고의 오지라고 불리는 곳들이다. 그중 장수의 영월암을 찾았다. 인연 있던 스님이 그곳에 자리를 잡으셨다고 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스님 내려갈게요.” 전화기 너머에서 스님은 흔쾌히, 언제든 내려오라고 하셨던 참이다.
푹 쉬라면서 스님은 방의 한쪽을 내주셨다. 차를 마시는 동안 며칠 전 보았다는 절 아랫마을의 운무를 이야기해 주셨던 게 아른거려 늦잠을 잘 수 없었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와 절의 위로 올랐다. 맞은편 산 아랫마을에는 운무가 가득했다. 보통 봄이나 가을의 물안개는 물가 주변에서 피어오르게 마련이다. 큰 강이 없는 산서면에는 조그만 물길만이 졸졸 흐르고 있었지만, 그런데도 안개가 피어올라 마을 위를 덮었다. 가을 아침의 맑은 풍광이 눈에 가득 담겼다. 어깨를 묵직하게 누르던 피로감마저 저 안개 위로 스르륵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글·사진 정태겸 글 쓰고 사진 찍으며 여행하는 몽상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