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기후행동 박종권 고문, 변기수·이상용 공동대표 인터뷰
경남 창원의 한 환경단체가 22대 총선에서 지역 후보 기후 공약에 등급을 매겨 발표했다가 검찰에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이들의 혐의는 공직선거법 제108조의3 위반. 이 조항은 “정당·후보자의 정책이나 공약에 관해 비교 평가하고 그 결과를 공표할 수 있다”면서도 “점수 부여 또는 순위나 등급을 정하는 등의 방법으로 서열화하는 행위는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공약 서열화 금지’를 어기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이 환경단체의 이름은 ‘창원기후행동’. 이들이 받고 있는 재판은 선거법에 관한 몇 가지 질문으로 이어진다. 해당 조항은 ‘공정하지 않은 평가’가 선거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공약의 서열화를 원천 봉쇄한다. 그러나 평가의 공정성과 적절성은 공론장에서 논박되는 것이 옳지 않을까. 꼼꼼한 정책 검증을 위해서는 다양한 평가가 나오고 이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돼야 하는 것 아닌가. 기후 문제를 가지고 후보자 우열을 가렸다는 이유로 형사처벌을 받아야 한다면, 기후정치의 시대는 언제쯤 열릴 수 있을까. 총선 공약 평가를 통해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려다 형사 재판을 받게 된 창원기후행동의 박종권 고문(72), 변기수(67)·이상용(59) 공동대표를 지난 11월 18~19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경남선관위가 고발하자 검찰은 기소
-문제가 된 지난 4월의 공약 평가에 대해 설명해 달라.
변기수(이하 변) “기후위기는 개인이 아니라 정부나 정치권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고 기후위기를 고민하는 유권자의 선택을 돕기 위해 공약 평가를 하게 됐다. 창원 지역 국회의원 후보자 11명이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공약을 대상으로, 탄소를 저감하는 공약엔 1~10점까지 가점을 주고 탄소를 많이 배출할 것으로 보이는 공약엔 1~10점까지 감점했다. 30~40년간 환경운동을 해온 창원기후행동 임원 세 사람(박종권 고문, 변기수·이상용 대표)이 평가위원을 맡았고, 셋의 점수를 합산한 뒤 구간을 설정해 최우수·우수·보통·미흡·낙제로 등급을 매겼다.”
창원기후행동은 ‘재생에너지청 신설’이나 ‘월 3만원 대중교통 프리패스’ 같은 공약에 높은 점수를 줬다. ‘그린벨트 해제’, ‘해양레저 관광도시 개발’ 등 개발 공약은 감점했다. 총점을 토대로 ‘우수’ 3명, ‘보통’ 3명, ‘미흡’ 3명, ‘낙제’ 2명 등 각 후보의 이름과 소속정당을 기자회견에서 공개했다. 최우수 후보는 없었다.
“시급하게 탄소 배출을 줄이지 않으면 인류에게 희망이 없다. (중략) 기후학자를 비롯한 수만명의 과학자가 우리가 지금처럼 살아가면 앞으로 4~5년 내 인류는 끔찍한 기후재앙과 식량위기를 겪게 된다고 경고한다.” 회견문은 비장했지만 기자회견은 썰렁하게 끝났다. 경남도민일보와 오마이뉴스만이 창원기후행동의 기후공약 평가 결과를 보도했다. 예상외의 ‘적극적 반응’은 경남선거관리위원회에서 나왔다. 총선 한 달 뒤 경남선관위는 창원기후행동을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했고, 검찰은 지난 9월 이들을 기소했다.
-형사 재판까지 받게 될 것을 예상했나.
박종권(이하 박) “기소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공약 평가와 관련한 법 조항이 모호해 선관위에 문의했더니 ‘(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서열화는 등수를 매기는 것’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그룹으로 묶어 등급을 매기는 것은 가능하겠다 싶었다. 그런데 선관위에서 그다음 날 다시 전화해 ‘등급 매기는 것도 안 된다’고 했다. 선관위 자신도 헷갈리는구나 싶었고, 무조건 안 된다고 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서열화 외에 다른 비교평가 방법은 없었을까.
박 “누가 더 좋고 나쁘다를 말하지 않고 비교평가가 가능한지 되묻고 싶다. 법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앞에서는 ‘비교 평가해서 발표할 수 있다’(제108조의3 제1항)고 해놓고 뒤에서는 ‘점수, 등급 등 서열화해서 발표하는 것은 안 된다’(제108조의3 제2항 제2호)고 한다. 우리가 유죄면 애매한 공직선거법 때문이다.”
이상용(이하 이) “정책공약의 우열을 가리는 것조차 막으면 어떻게 좋은 정책을 견인해낼 수 있겠는가. 우리는 점수를 매겼지만 공개하지 않았고, 그 대신 구간을 설정해 등급을 매겨 발표했다. 법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공약 서열화 금지는 독소조항”
이들의 말대로 ‘누가 더 좋고 나쁘다를 말하지 않는’ 비교평가는 가능할까. 이는 오랫동안 공약 분석·평가를 해온 시민단체들의 고민이기도 하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22대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의 공약을 상세하게 비교 평가한 자료를 공개했다. 재벌개혁, 재정세제, 노동, 중소상공인, 부동산, 보건의료, 복지 등의 분야별 공약을 개혁성·구체성·실현 가능성 지표로 평가했다. 최종 결과는 정당별 서술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당의 재벌개혁 공약이 가장 좋다’는 식으로는 발표하지 못했다. 서휘원 경실련 정치입법팀장은 “개혁성, 구체성, 실현 가능성 지표로 점수를 매겨 각 정당의 분야별 공약 ‘총점’을 냈지만 선관위 문의 결과 위법하다는 답변을 받아서 발표할 수 없었다”면서 “공약 서열화 금지는 정책 선거 운동을 저해하는 독소조항이다. 삭제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공약 서열화 금지 조항의 연원은 1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대 중반 ‘매니페스토’라는 이름의 정책 선거 운동이 벌어지자 선관위는 정책 공약 비교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선거법 개정의견서를 2006년 국회에 제출한다. 이 의견서에 ‘공약 비교를 허용하되 후보자별·정당별 순위를 부여해 공표해선 안 된다’는 내용이 담겼고, 2008년 이를 반영해 법이 개정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선관위조차 입장이 달라졌다. 2016년 중앙선관위는 “유권자의 알권리를 보호하고 정책 선거를 촉진하기 위해” 언론기관에 한해 공약 서열화를 허용해야 한다는 법 개정 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입법부는 ‘묵묵부답’이었다. 선관위는 지난해에도 같은 의견서를 제출했지만, 이번에도 관련 논의는 진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는 “서열화 금지 조항은 시민단체의 입을 막아버리는 것으로, 선거 때마다 삭제해야 한다는 지적이 계속됐다”면서 “그런데도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이유는 좋게 말하면 국회의원들의 무관심 때문이고, 나쁘게 말하면 존치가 국회의원 자신들에게 이롭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판부에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박 “법이 이해되지 않았다. 일반인의 상식으로 평가를 받아보고 싶었다. 그런데 재판부는 ‘사실이나 양형을 다투는 게 아니라 법리적인 문제로 보인다’면서 국민참여재판 신청을 기각했다. 가벼운 벌금형으로 마무리 지으려는 게 아닌가 싶은데 형량이 아무리 작더라도 유죄를 받으면 고등법원, 대법원까지 가서 다툴 것이다. 국민참여재판도 다시 신청할 것이다.”
변 “국민의 알권리를 차단하는 위헌적 성격도 있다고 생각해 헌법재판소에 위헌 심판도 구할 생각이다. 우리는 옳은 일을 했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굳이 변호사 도움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선임하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 나이가 많아서 법에 따라 국선변호인의 조력을 받게 됐다. 국선변호인도 우리 뜻에 선뜻 동의해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서를 써 주었다.”
세 사람의 법률대리인을 맡은 홍재욱 변호사는 “공약 서열화 금지 조항에 위헌적 성격이 있다는 피고인들 주장에 공감하게 됐다”면서 “해당 조항은 정치적 표현의 자유, 선거운동의 자유, 국민의 알권리 등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가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받아들여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가의 적절성에 관해 묻고 싶다. 오직 ‘탄소 저감’만을 기준으로 삼아 공약을 평가했는데.
박 “과학자들에 따르면 앞으로 4년이 기후위기를 막을 골든타임이다. 이번에 선출된 국회의원의 임기가 4년이다. 22대 국회의원 후보자라면 기후위기를 막아 낼 막중한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개발 공약은 지역주민은 좋아할지 모르지만 기후위기 해결에는 도움이 안 된다. 공약을 자세히 보니, 국회의원 후보자들이 기후위기에 얼마나 관심이 없는지 느낄 수 있었다. 시의원이나 구의원이 공약할 법한 ‘자투리땅 공영주차장 만들기’ 같은 공약이 너무 많았다. 기후위기 대응에 관한 공약이 전무한 후보자도 있었다.”
-세 사람의 나이가 평균 66세다. 보통 기후위기는 청년층이 주목하는 이슈다. 이렇게 열정적으로 기후위기를 알리는 이유는.
변 “국방부 공무원으로 일하며 약 40년간 환경운동연합 회원으로 활동해왔는데, 이때 환경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은퇴 후 적극적으로 환경운동을 하겠다고 다짐했고, 실천하고 있다.”
박 “저 역시 은행에서 일하면서 환경운동연합 활동을 열심히 해 오다가 퇴직 후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런데 인류가 멸종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을 접하고 나니, 지금까지 환경운동 헛했구나 싶다. 기후위기는 기성세대의 책임이다. 마지막으로 미래세대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젊은 시절부터 환경운동과 연구를 업으로 삼아왔다. 1991년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한국생태환경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다. 과거에는 정치권이 환경에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환경단체와 시민들이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니까, 결국 법과 제도가 개선됐다. 기후위기 문제 역시 열심히 운동하면 언젠가는 정치권에서 앞다퉈 좋은 공약을 내는 시대가 올 거라고 믿는다. 그때까지 우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