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미산마을이 30년간 만들고 바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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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해결 위해 모여…약자와 함께 공동체를 만들며 ‘다양성’ 자라

사회 변화 속 여러 고민…협동조합 통합 등 공동체 지속 대안 모색

지난 11월 18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성미산마을극장 입구에 ‘성미산마을 30주년’ 기념행사를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김창길 기자

지난 11월 18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성미산마을극장 입구에 ‘성미산마을 30주년’ 기념행사를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김창길 기자

서울 도심 속 마을공동체 ‘성미산마을’이 올해로 출범 30년을 맞았다. 1994년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국내 최초 협동조합형 어린이집인 ‘우리어린이집’이 문을 열었고, 그때를 성미산마을 형성의 씨앗이 심어진 해라고 본다. ‘육아’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모인 사람들이 필요에 따라 다양한 공동체를 만들었고, 이 공동체들이 개인의 삶과 지역에서 발생한 여러 문제를 함께 대응해오면서 오늘의 성미산마을에 이르렀다.

성미산마을은 ‘마을공동체의 성공 사례’(정부 정책 주간지 ‘위클리공감’ 블로그, 2013. 7)로 인정받는 곳이다. ‘풀뿌리 시민운동’의 대표 사례(경향신문, 2006. 12)로 불리기도 하고, ‘좌파 인물 양성소’(국가정보원 ‘서울시장의 좌편향 시정운영 실태 및 대응방향’ 문건, 2013. 5)라는 왜곡된 시선을 받기도 했다.

‘특별한 공동체’임은 분명하다. 이는 성미산마을이 지리적 개념의 ‘마을’이 가진 전통적 정체성과는 다른 속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성미산마을 사람들을 이렇게 말한다. “해발 66m의 작고 낮은, 그러나 마포구 유일의 자연산인 성미산을 중심으로 연결된 크고 작은 70여개의 ‘커뮤니티 네트워크’(공동체들의 관계망)를 일컬어 ‘성미산마을’이라고 한다.”

성미산마을은 지난 30년간 무엇을 만들었고 앞으로 무엇을 만들어갈까. 지난 11월 18일 성미산마을 일원인 동네책방 개똥이네 책놀이터에서 마을주민이자 활동가 4명을 만났다.

■성미산마을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우리어린이집 설립 이후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까지 서울 성산동, 망원동, 합정동 일대에 공동육아 어린이집 4곳이 순차적으로 개원했다. 1999년에는 초등학생 마을방과후(현 도토리마을방과후)가, 2004년에는 초·중·고 과정 대안학교 성미산학교가 문을 열었다. 아이들의 성장과 함께, 부모들의 필요로, 대안적 보육·교육기관들이 들어섰다. 우리어린이집 개원 당시 부모 조합원이었던 이경란씨는 “민주화 세대 부모들에게 꿈이 있었다. 민주화된, 성평등하고 생태적인 사회에서 아이들이 자라기 바랐고, 그걸 구상한 사람들(‘공동육아 연구회’)이 있었다. 모집 공고를 냈는데 빠른 속도로 (조합원들이) 모였다”고 했다.

아이들이 자라며 어른들의 관계망 유지가 어려워지자 성미산마을 사람들은 2001년 마포 두레생협(현 울림두레생협)을 만든다. 생협은 “초기부터 ‘지역과 함께’라는 취지를 분명히 했기 때문에 이후 마을축제, 성미산 지키기 운동, 지역교육센터, 마을기업 추진 등에 생협이 가장 앞장서서 노력했으며 마을에서도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위성남, ‘도시 속에서 함께 살아남기’, ‘황해문화’ 2013 가을호).

생협은 마을공동체 확장의 주축이었다. 상대적으로 집값이 싼 지역을 찾아 2011년 성산동으로 이사 온 박수경씨(개똥이네 문화놀이터 사무국장)도 육아로 인한 고립감을 해소하고자 생협 마을모임에 참여한 게 마을활동의 시작이었다. 그는 “아이가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마을활동이 확장됐다”고 했다. 지인의 소개로 우리어린이집을 알게 돼 공동육아를 시작했고,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면서 개똥이네(2011년 창립) 일을 시작했다. 개똥이네는 동네책방이면서 주민 문화활동 프로그램과 초등학생 돌봄을 제공한다.

지난 30년간 성미산마을에는 주민들의 현실적 욕구를 해결하고자 다양한 경제·생활·주거·문화·의료 공동체가 생겨났다. 어린이집부터 방과후, 학교, 반찬가게, 카페, 책방, 극장 등 이용할 공간도 다양해졌다. 협동조합형 마을기업, 비영리단체, 두레, 동아리, 단기 소모임 등 형태도 가지가지다. 그사이 어떤 공동체들은 해산하기도 했다. 이 공동체들은 주로 성미산 주변 지역에 터를 잡았다. 그러나 이곳에서 살지 않아도 성미산마을 공동체 활동에 참여하면 성미산마을 주민이라 여긴다.

성미산마을 정체성 형성에는 ‘성미산 지키기 운동’이 큰 영향을 미쳤다. 성미산마을 공동체들은 2001~2003년, 2007~2010년 두 차례에 걸쳐 서울시·한양재단, 홍익재단의 성미산 개발 계획에 반대하며 성미산 지키기 운동을 벌였다. 생태 환경을 보호하자는 운동이었고, 아이들의 놀이 터전을 지키자는 운동이었다. 1차 투쟁은 성공, 2차 투쟁은 실패였다. 이는 성미산마을을 대외적으로 알리고, 내부 결속을 강화한 계기가 됐다.

■성미산마을은 어떤 곳···어떤 사람들이 살까

서울 도심 속 마을공동체 ‘성미산마을’의 마을활동가 박수경씨, 이경란씨, 홍정희씨, 조승연씨(왼쪽부터)가 지난 11월 18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동네책방 개똥이네 책놀이터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했다. 김창길 기자

서울 도심 속 마을공동체 ‘성미산마을’의 마을활동가 박수경씨, 이경란씨, 홍정희씨, 조승연씨(왼쪽부터)가 지난 11월 18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동네책방 개똥이네 책놀이터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했다. 김창길 기자

‘내가 살아본 성미산마을’은 어떤 곳일까. 이경란씨는 “성미산마을은 편한 곳, 편리한 곳”이라고 말했다. “같이 만들어가면서 일도 많고 시간도 많이 쓰지만 그만큼 애 키우는 과정이 편했어요. 또 소비자로서도 대안적 소비가 가능해요. 먹거리를 선택하거나 아플 때 가야 하는 곳을 찾을 때나, 노인이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런 고민이 줄어들죠. 필요한 걸 대신 만들어주는 믿을 만한 사람들이 많은 곳인 거예요.”

박수경씨도 “필요하면 구해지는 곳”이라고 했다. 그는 “옷이나 음식 같은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육아, 환경, 문화, 취미 등 어떤 영역이든 자기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찾아지고 없더라도 같이 만들겠다고 최소 몇 명은 나서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고 했다.

성미산마을 공동체들을 연결하는 단체인 사단법인 ‘사람과 마을’ 운영위원장인 홍정희씨는 2002년 일하던 출판사가 있는 서교동으로 이사했다. 출판사가 경기도 파주로 이주한 후 회사를 그만두고 동네에서 할 만한 일을 찾다가 생협 마을 모임에 참여하면서 마을과 연결됐다. 그는 “성미산마을은 안전한 마을”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의 행동반경이 마을공동체 안에 다 들어와 있어요. 물론 애들은 힘들어할 수도 있지만요(웃음). 장애인, 성소수자 그리고 우리 모두 각자 모난 점이 있는데 삶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그걸 재미난 것으로 승화해버리는 곳이에요.”

조승연씨는 자녀가 초등학생 때 대안학교를 알아보다 성미산학교가 개교한 2004년 성미산마을로 이주했다. 조승연씨는 “마을에서 장애인을 쉽게 만날 수 있고, 퀴어퍼레이드도 매년 하고 있다”며 “강좌를 듣거나 책을 읽지 않아도, 마을에서 산다는 것만으로 더 넓은 생각을 할 수 있어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는 마을”이라고 했다.

성미산마을 30주년 기획단-아카이브팀은 성미산마을에 살거나 살았던 중학생 이상의 구성원을 대상으로 지난 8월 15일부터 10월 11일까지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총 270명이 참여했다. 전체 구성원보다는 마을활동에 적극적인 사람들의 생각일 수 있다고 아카이브팀은 설명했다.

응답자 특성을 연령별로 보면 40대(48.1%)와 50대(30.0%)가 다수를 차지했다. 가구 형태는 3인 이상 가구가 83%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아카이브팀은 “성미산마을을 자녀의 ‘교육 및 육아’ 활동에 중점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40대 부부와 자녀로 이뤄진 핵가족 중심의 공동체로 파악할 수 있겠다”고 분석했다. 실제 성미산마을 참여 동기와 관련해 80%가 ‘교육 및 육아’라고 답했고, 성미산마을에서 가장 만족하는 부분도 ‘교육 및 육아(72.6%)’가 꼽혔다.

성미산마을의 이웃관계의 특징으로는 ‘다양한 마을활동을 통해 이웃과의 어울림(70%)’ 및 ‘비슷한 사고와 가치관(67%)’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가장 많았다. 성미산마을 사람들의 비슷한 사고와 가치관은 무엇일까. 주관식으로 질문했더니 총 119개 단어가 언급됐으며 공동체(200회), 돌봄(120회), 다양성(78회), 생태(75회) 등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대안(72회), 연대(66회), 나눔(61회), 공감(52회), 협동(52회) 등도 많이 언급됐다.

‘성미산마을 주민이 추구하는 다섯 가지 가치’를 주관식으로 물었을 때 응답을 워드클라우드 그림으로 시각화한 자료. 성미산마을 30주년 기획단-아카이브팀 제공

‘성미산마을 주민이 추구하는 다섯 가지 가치’를 주관식으로 물었을 때 응답을 워드클라우드 그림으로 시각화한 자료. 성미산마을 30주년 기획단-아카이브팀 제공

■의사결정 문화가 ‘성미산마을의 역사’

성미산마을에서는 30년 동안 소수자, 사회적 약자와 함께 공동체를 만들면서 ‘다양성’이 자랐다. 조승연씨는 성미산학교 교사로 14년간 활동한 후 현재는 발달장애 청년들의 생활공동체 ‘사부작’(2017년 창립)에서 활동가로 일한다. 그는 “공동육아 기관에서 장애 통합 교육을 하는데 아이들이 졸업하고 사회와 단절되는 문제가 있었다”며 “일자리 위주의 대안적 활동만 있었는데, 꼭 일하지 않더라도, 시설에 가지 않고 마을에서 같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놀이·생활공간으로서 사부작이 만들어졌다”고 했다. 이어 “어제도 클럽을 열었다”며 “발달장애 청년들이 갈 클럽이 없으니까, 두 달에 한 번씩 클럽을 열고 논다(웃음)”고 했다. 마포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마포의료사협)이 운영하는 무지개의원은 성소수자가 장벽 없이 다닐 수 있는 의료기관이다.

도시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대처해왔다. 관계망 지속을 위해선 안정적인 주거가 필요했던 성미산마을 사람들은 2007년 첫 공동주택을 지었다. 이후 2009년 공동주택 전문 시행사인 ‘소통이있어행복한주택’(소행주)을 창업했다. 2010년대 들어 망원동 일대는 일명 ‘망리단길’이라 불리는 상권이 형성되면서 성미산마을도 젠트리피케이션(일명 둥지 내몰림 현상)의 영향을 받았다. 2014년 마을카페 작은나무가 폐업 위기에 내몰렸고, 마을 사람들이 서울시에 젠트리피케이션 대책을 요구하기도 했다. 작은나무는 이후 마을회관으로 이전했으나, 지난해 마을회관이 문을 닫았다.

성미산마을 공동체들이 꽃길만 걸었던 것은 아니다. 이경란씨가 울림두레생협 이사장으로 있던 2010년 생협은 확장 방향을 두고 내부 논쟁을 벌였다. 그는 “그해 1년 내내 논의를 했고 이견을 묶어나가고 풀어나가면서 결론을 냈다”며 “그때 ‘다양한 의견을 통합해낼 수 있겠다’란 자신감도 생겼던 것 같다”고 했다. 소수의 목소리를 배제하지 않으면서 합의에 이르는 의사결정 문화 자체가 성미산마을이 만들어온 역사다. 이경란씨는 이렇게 말한다. “공동육아 경험의 힘이 컸다고 봐요. 공동육아는 한 사람의 목소리를 배제하면 무너지는 거거든요. 조합원 모두의 목소리를 수렴하는 것이 연습이 돼 있던 것이죠.”

성미산마을 공동체 구성원들이 지난 11월 9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성서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마을축제를 기념해 단체사진을 찍었다. 사단법인 사람과 마을 제공

성미산마을 공동체 구성원들이 지난 11월 9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성서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마을축제를 기념해 단체사진을 찍었다. 사단법인 사람과 마을 제공

성미산마을을 두고 ‘그들만의 세상’이라는 평가도 있다. 공동체 활동을 하려면 아무래도 조합원이어야 하고, 그 구성원을 보면 고학력 중산층 사람들이 모인 마을이라는 생각에서다. 이경란씨는 “그런 이야기는 계속 있었고 이 지역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 갈 수 있을까 고민해왔다”며 “그 출발이 마을축제(2001년~현재)였고 마포의료사협과 마포희망나눔이 (지역으로 확장하는) 다른 길을 내며 가고 있다”고 했다. 홍정희씨는 “마포희망나눔에서는 지역 어르신들과 주민들이 만나는 ‘청춘쌀롱’을 주 2회 진행한다. 보통 어르신 복지라고 하면 가정을 방문하는 형태인데 청춘쌀롱은 어르신들을 밖으로 나오게 했다”며 “또 고립가구가 될 수 있어 취약층으로 꼽히는 50대 1인 생활자들이 풍물도 하고 춤도 출 수 있도록 활동 영역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수경씨는 “이 지역에서 성미산마을 공동체로 묶이지 않는 가게 중에서도 발달장애 청년들이 이용하는 ‘옹호가게’가 늘고 있는 걸 보면 경계를 넘어 함께 마을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현재 성미산마을의 고민

현재 성미산마을도 사회 변화 속에 여러 고민을 안고 있다. 성미산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마을에서 활동하는 강다운씨(26)는 성미산마을에서 ‘청년의 자리’가 많이 없다고 했다. 그는 “여기서 자란 친구들 보면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기도 하니까 20대 초반엔 성미산마을을 많이 떠난다”며 “한편으론 이 지역에 공동육아를 하는 청년 부모 외에 1인 청년 가구가 굉장히 많다. 이들도 공동체가 필요한데, 성미산마을의 기존 공동체로 들어오라고 하는 것이 맞나, 그들 나름의 생활공동체를 별도로 만들어가는 게 맞지 않나 이런 고민을 한다”고 했다.

공동체 운영을 ‘대면 만남’을 기반으로 했던 터라, 성미산마을도 코로나19 유행을 거치며 변화를 겪었다. 박수경씨는 “코로나19 때 대면 모임이 사라져서, 그때 ‘열린 공간이 갖는 힘’을 생각했다”며 “세대가 바뀐 영향도 있는 듯한데 사람들을 다시 만나게 하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했다. 공동육아를 하는 부모들의 세대가 바뀌면서 세대 간 문화적 차이가 있다. 또 마을에 오래 살아온 이들과 최근에 새로 유입된 구성원 간 마을활동 참여에 관한 인식 차이도 있다.

‘저출생’이 가장 위기감으로 다가온다. 박수경씨는 “공동육아 어린이집들이 마을활동의 기초단위이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아이들이 줄어들면 굉장한 위기라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이경란씨는 “생협의 경영상 어려움이 커지고 있는 것도 동네 아이들이 줄어든 영향이 있다”며 “큰 변화를 맞는 시기인 것 같다”고 했다. 지난 11월 20일 성미산마을극장에서 주민들이 진행한 30주년 이야기자리(포럼)의 주제는 ‘돌봄’이었다. 아이 돌봄뿐만 아니라 살면서 다양한 상호 돌봄, 그리고 요양원·요양병원에서 죽음을 맞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돌봄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협동조합 간 통합, 마을 자산화, 마을활동가 양성, 새로운 돌봄공동체 설립 등 공동체의 지속을 위한 여러 대안을 모색할 때라고 활동가들은 말했다. 다만 누군가가 앞장서 특정 방향을 정해놓고 이끌거나, 어떤 공동체를 꼭 살리겠다는 명분을 두고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성미산마을이 위기와 갈등을 겪으며 자연스럽게 흘러왔듯이,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했다. 또한 이런 위기감은 성미산마을만의 고민도 아닐 것이다. 마을공동체는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 이경란씨의 말이다.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은 참 많이 있다고 생각해요. 마을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이(1년에 약 3000명) 있는데, 그런 분위기가 확산하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닐까요. 주류의 흐름이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조금씩 관계망이 퍼지는 것을 봅니다. 그런 것이 희망이 되지 않을까요.”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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