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3일 전·현직 교수 309명과 연구자 26명 등 335명은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표가 천명한 금융투자소득세(이하 ‘금투세’) 폐지 방침을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앞서 이 대표는 지난 11월 4일 ‘금투세 시행 유예’와 ‘금투세 예정대로 시행’ 사이에서 좌고우면하던 기존 당론을 뒤엎고, 아예 금투세 자체를 폐지하는 새로운 방침을 천명해 세상을 놀라게 한 바 있다.
참으로 놀랍고 애석한 일이다. 이번 사건은 그동안 적어도 겉으로나마 진보와 정의를 숭상하고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온 민주당의 실체가 사실은 강자의 논리를 대변해온 국민의힘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다. 오죽했으면 한국은행 독립성이나 삼성 승계 사건도 아닌데 ‘엉덩이 무거운’ 교수들이 앞장섰겠는가.
이 대표, 인기 올리려다 더 큰 손실
이재명 대표가 ‘유예’도 아니고 ‘폐지’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는 아마도 인기만 조금 더 올라간다면 무슨 일이든 마다하지 않겠다는 절박함의 발로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대표는 본인이 인식하건 아니건 간에 더 큰 손실을 보았다.
우선 경제 현실에 대한 이해력의 깊이가 얼마나 얄팍한지를 그대로 드러냈다. 이 대표가 금투세 폐지를 천명하면서 거론한 이유는 “현재 주식시장이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하나는 이 논리는 ‘유예’의 빌미는 될 수 있어도 ‘폐지’의 논거가 될 수는 없다는 점이다. 현재 시장 여건이 새로운 제도의 도입에 적절하지 않다면 시장 여건이 개선될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것이지, ‘말짱 도루묵’을 천명할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주식시장이 어려운 경우 금투세 도입의 충격은 오히려 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금투세는 금융투자소득이 있을 때 세금을 매기는 제도다. 금융투자소득은 시장이 전반적으로 활황일 때 크게 발생한다. 따라서 그때 세금 부담도 크다. 반대로 이 대표 말처럼 주식시장이 어렵다면 활황에 비해 상대적으로 금융투자로부터 손실을 경험한 투자자가 더 많을 것이다. 그런데 투자 손실이 있을 때는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약세장이 오히려 세제 도입의 적기일 수도 있다.
물론 약세장에서는 투자 손실을 경험한 투자자가 많고, 따라서 제도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제도의 장점을 차분히 설명하면서 투자자를 설득하는 방식으로 풀어나가야 할 문제이지, 시행하기로 예정된 제도를 뒤엎어버릴 일은 아니다.
이 대표가 얻은 가장 본질적인 손실은 본인의 정체성에 관한 대중의 실망감이다. 이번 사건은 이 대표가 국가를 운영하는 확고한 원칙이나 철학 없이 그저 대중적 인기에만 영합하는 기회주의자에 불과하다는 이미지를 더욱 공고히 했다. 이 대표가 작은 정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일국을 통치하는 대권을 추구할진대 이렇게 차곡차곡 쌓이는 인기영합적 기회주의자 이미지는 결코 도움이 될 수 없다. 소탐대실이 아닐 수 없다.
세수 더 줄어 정부 살림살이 압박 불 보듯
그렇다면 근본적으로 금투세는 왜 도입해야 할까?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을 매기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기 때문이다. 일해서 돈을 번 근로소득에 세금이 붙는다면 돈을 굴려서 돈을 번 자본소득에 대해서도 세금이 붙어야 마땅하다. 일하는 것이 무슨 반사회적 행동이어서 세금을 부과하고, 돈을 굴려서 돈을 버는 것은 축복해주어야 할 행동이어서 면세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원칙이 무너지면 국가는 더 이상 세금을 제대로 거둘 수 없다. 당장 근로자들이 반발하지 않겠는가? “왜 돈 굴려서 돈 버는 사람한테는 세금 안 때리고, 일해서 돈 버는 우리한테만 세금 때리냐? 우리가 호갱(호구 고객)이냐?” 부동산 양도소득세는 또 어떤가? “돈 굴려서 돈 번 사람은 봐주고 달랑 집 한 채 가지고 있다가 (2년 이내에) 팔았다고 세금 내라고 하니 이게 말이 되느냐?”고 하지 않겠는가? 그때 과연 “금투세 폐지야 주식시장이 어려워서 그런 것이지만, 근로자 너희들은 등 따습고 배부르게 잘살지 않냐? 그러니 세금 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또 시장이 어렵다고 세금 빼준다면 부동산시장 침체기에는 부동산 양도소득세를 폐지하겠다는 것인가?
소득이 있더라도 과세하지 않겠다는 이번 결정이 초래할 문제점은 전문가들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예를 들어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문위원은 ‘조세 분야 법률안 검토보고: 소득세법’이라는 보고서에서 소득에 따른 과세 원칙의 훼손을 우려하면서 금투세의 존치를 권고하기도 했다. 조세 부과는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전제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번 금투세 폐지는 이 두 가지 특성을 모두 저버렸다.
마지막으로 이 대표가 금투세 폐지에 따른 비난의 도피처로 거론한 상법 개정을 통한 주주 권익 제고 부분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정말 금투세 부과와 주주 권익 제고는 하나를 포기하더라도 다른 하나를 획득하면 큰 문제가 없는 상호 대체 관계에 있는 두 가지 덕목일까? 전혀 아니다. 하나는 과세 원칙의 정당성과 관련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식시장의 인프라를 튼튼히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둘 사이에는 과세 원칙을 세우는 대신 주식시장 인프라를 엉망으로 방치하거나, 아니면 과세 원칙을 훼손하는 대신 인프라를 튼튼히 하는 그런 거래 관계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주식시장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인프라 정비와 과세 원칙 모두가 필요하다.
문제는 더 있다. 이번 결정은 이 대표 본인이나 민주당의 몰락을 초래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당장 세수 감소로 귀결되는 등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부정적 효과를 초래할 것이다. 왜냐하면 금투세 도입을 전제로 그동안 존재했던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거래세를 폐지했기 때문이다. 기존 세금은 폐지하고, 그 대신 도입하려던 다른 세금도 폐지하면 당장 세수 자체가 감소할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세금이 모자라서 한국은행에서 마이너스통장을 잔뜩 끌어 쓰고 있는 정부의 살림살이가 더 쪼그라들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물론 이것을 관리해야 할 일차적인 책임은 기획재정부에 있다. 그러나 거대 야당으로서 국정 운영의 책임을 행정부와 나누어질 수밖에 없는 민주당도 이번 결정의 책임을 모면할 수 없다. 민주당과 이 대표는 지금이라도 잘못을 국민 앞에 고백하고 금투세 폐지를 철회해야 할 것이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