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모기에 물린 종아리를 긁었다. 모기라니, 11월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진작 서랍에 들어갔어야 할 모기향 훈증기는 연일 맹활약 중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이맘때 모기가 날아다닌다는 건 농담거리도 못 될 이야기였다. 지금은 진지한 다큐다. 질병관리청 자료를 보니 올해 10월 3주 모기 개체수가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8배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 기후위기로 폭염이 길어지고 가을이 따뜻해지면서 모기 활동기가 늘어났기 때문이란다. 정작 7~8월에는 너무 더워서 모기가 날지 못했다고 한다.
이 글이 게재될 때쯤이면 폭염과 모기는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질지도 모르겠다. 끔찍하게 더웠던 몇 달 전 우리는 친구끼리 가볍게 만난 자리에서도 불안한 목소리로 폭염을, 기후위기를 걱정했다. 그땐 정말 지구가 콘에 올려진 아이스크림처럼 녹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다음 주쯤이면 찬 바람이 불 테고, 모기들은 사라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다. 피부에 닿지 않는 것을 걱정하기란 더더욱 어렵다. 외투를 동여매고 폭염을 이야기하는 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일개 개인인 우리는 그렇다 쳐도, 언론이나 정치권 같은 ‘공공의 영역’은 다를 수 있지 않을까. 매년 여름이면 폭염을 다루는 기획기사와 방송 리포트가 쏟아진다. 쪽방촌의 더위와 폭염에도 쉴 수 없는 이들의 노동이 매년 보도되고, 정부는 잘 감독하고 있다고 매년 똑같이 해명한다. ‘몇 년 만의 폭염’ 기록 그래프는 비트코인처럼 치솟고, 해외 어느 나라가 기온 사십몇 도를 찍었다는 뉴스가 착실히 배달된다. 하지만 찬 바람이 불면 기사가 확 줄어든다. 당연히 기사를 쓸 때 시의성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매년 뜨거워지는 지구에서 폭염이란 1년 내내 시의적절한 이슈여도 되지 않을까.
사시사철 돌아가는 정치권의 관심도 사계절을 지나치게 충실히 따라가는 것 같다. 여름마다 취약계층 냉방비 감면법, 폭염 작업 중지 의무화법 같은 법이 우수수 쏟아지지만 그때뿐이다. 한 언론 집계를 보면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폭염 관련 법 29건은 모두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고 한다. 폭염이 지나간 뒤까지 끈질기게 법안을 밀어붙이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뜻이다.
사회팀과 노동팀에서 3년 넘게 일한 나도 이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매년 똑같은 폭염 기사를 숫자만 높여서 쓰는 게 이상하게 느껴질 때쯤 뒤늦은 반성이 떠올랐다. 우리가 찬 바람 불 때부터 폭염을 이야기하면 좋겠다. 모두가 힘을 모아서, 계절과 상관없이. 이제는 정말 필요한 일 같다. 몇 달 전의 끔찍한 폭염은 무엇이었는지. 손꼽아 기다리던 가을은 왜 그리 짧게 스쳐 갔는지. 이 모든 일이 왜 매년 더 심각해지고 있는지.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지.
얼마 전에도 ‘따뜻한 수능’이었다. 이러다 정말 몇 년 안에 수능 시험장에 모기향을 피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수능 듣기평가 시간엔 비행기도 멈춰버리는 입시공화국이지만, 자연은 그런 식으로 막을 수 없다. 이미 우리는 11월에 입어선 안 될 옷을 입고 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