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듣기평가 시간에 모기가 날아다닌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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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하루 앞둔 지난 11월 13일 서울 중구 이화여고에서 수험생들이 수험표와 고사장을 확인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2025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하루 앞둔 지난 11월 13일 서울 중구 이화여고에서 수험생들이 수험표와 고사장을 확인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어젯밤 모기에 물린 종아리를 긁었다. 모기라니, 11월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진작 서랍에 들어갔어야 할 모기향 훈증기는 연일 맹활약 중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이맘때 모기가 날아다닌다는 건 농담거리도 못 될 이야기였다. 지금은 진지한 다큐다. 질병관리청 자료를 보니 올해 10월 3주 모기 개체수가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8배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 기후위기로 폭염이 길어지고 가을이 따뜻해지면서 모기 활동기가 늘어났기 때문이란다. 정작 7~8월에는 너무 더워서 모기가 날지 못했다고 한다.

이 글이 게재될 때쯤이면 폭염과 모기는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질지도 모르겠다. 끔찍하게 더웠던 몇 달 전 우리는 친구끼리 가볍게 만난 자리에서도 불안한 목소리로 폭염을, 기후위기를 걱정했다. 그땐 정말 지구가 콘에 올려진 아이스크림처럼 녹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다음 주쯤이면 찬 바람이 불 테고, 모기들은 사라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다. 피부에 닿지 않는 것을 걱정하기란 더더욱 어렵다. 외투를 동여매고 폭염을 이야기하는 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일개 개인인 우리는 그렇다 쳐도, 언론이나 정치권 같은 ‘공공의 영역’은 다를 수 있지 않을까. 매년 여름이면 폭염을 다루는 기획기사와 방송 리포트가 쏟아진다. 쪽방촌의 더위와 폭염에도 쉴 수 없는 이들의 노동이 매년 보도되고, 정부는 잘 감독하고 있다고 매년 똑같이 해명한다. ‘몇 년 만의 폭염’ 기록 그래프는 비트코인처럼 치솟고, 해외 어느 나라가 기온 사십몇 도를 찍었다는 뉴스가 착실히 배달된다. 하지만 찬 바람이 불면 기사가 확 줄어든다. 당연히 기사를 쓸 때 시의성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매년 뜨거워지는 지구에서 폭염이란 1년 내내 시의적절한 이슈여도 되지 않을까.

사시사철 돌아가는 정치권의 관심도 사계절을 지나치게 충실히 따라가는 것 같다. 여름마다 취약계층 냉방비 감면법, 폭염 작업 중지 의무화법 같은 법이 우수수 쏟아지지만 그때뿐이다. 한 언론 집계를 보면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폭염 관련 법 29건은 모두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고 한다. 폭염이 지나간 뒤까지 끈질기게 법안을 밀어붙이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뜻이다.

사회팀과 노동팀에서 3년 넘게 일한 나도 이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매년 똑같은 폭염 기사를 숫자만 높여서 쓰는 게 이상하게 느껴질 때쯤 뒤늦은 반성이 떠올랐다. 우리가 찬 바람 불 때부터 폭염을 이야기하면 좋겠다. 모두가 힘을 모아서, 계절과 상관없이. 이제는 정말 필요한 일 같다. 몇 달 전의 끔찍한 폭염은 무엇이었는지. 손꼽아 기다리던 가을은 왜 그리 짧게 스쳐 갔는지. 이 모든 일이 왜 매년 더 심각해지고 있는지.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지.

얼마 전에도 ‘따뜻한 수능’이었다. 이러다 정말 몇 년 안에 수능 시험장에 모기향을 피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수능 듣기평가 시간엔 비행기도 멈춰버리는 입시공화국이지만, 자연은 그런 식으로 막을 수 없다. 이미 우리는 11월에 입어선 안 될 옷을 입고 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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