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9일 해군 창설 79주년 기념 ‘2024 네이비 위크’ 행사가 열리는 제주 해군기지를 찾았다. 전국 7개 해군부대에서 열린 행사 중 하필 제주와 동해 기지에서만 민간인 대상 부대 개방·함정 공개 프로그램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딸과 부랴부랴 피켓을 만들고 시동을 걸었다. 기지 앞에 도착하니 아침부터 자리를 지킨 강정마을의 평화 활동가들이 반겨준다. 예상대로 부대 개방 행사를 찾는 주된 방문자는 어린이·청소년을 동반한 가족들이다. 단란한 주말 한때를 보내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특별한 추억을 쌓기 위해 그들은 제주 해군기지가 있는 강정마을을 방문했다. 그 산뜻한 발걸음 앞에 피켓을 들이대는 것이 피차 무안한 일인 걸 알지만 나는 방문자들을 위해, 해군 장병들을 위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위해, 그 모두를 아우르는 ‘우리’를 위해 목소리를 낸다.
“저도 아홉 살 난 어린이를 키우는 엄마입니다. 군부대는 어린이들의 놀이터가 돼서는 안 됩니다. 부대 체험은 전쟁문화를 친숙하게 만듭니다. 어린이들에게 평화를 가르쳐 주세요. 전쟁은 나쁜 것이라고 말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저도 아홉 살 난 어린이를 키우는 엄마입니다. 군부대는 어린이들의 놀이터가 돼서는 안 됩니다. 부대 체험은 전쟁문화를 친숙하게 만듭니다. 어린이들에게 평화를 가르쳐 주세요. 전쟁은 나쁜 것이라고 말해 주세요. ‘힘에 의한 평화’는 허구입니다. 무기 장사의 상술입니다.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의 희생자 4만5000명 가운데 70%가 어린이와 여성입니다. 힘에 의한 평화는 힘없는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가짜 평화입니다. 어린이와 여성들이 이기는 전쟁은 없습니다. 군부대 체험을 하지 말아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물론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부대 앞에서 발길을 되돌리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에게 시비를 건 몇몇 사람을 제외하면 대부분 어른은 우리를 못 본 척, 못 들은 척했다. 하지만 어린이·청소년들은 우리들의 피켓을 곁눈질 대신 똑바로 응시하며 읽어 주었고, 우리가 말할 때 우리를 바라보았다. ‘전쟁에 반대하고, 군부대 체험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구나’ 어린이·청소년들에게 우리의 존재를 알린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새로운 어린이들이 입장할 때마다, 어린이들이 관람을 마치고 기지를 나설 때도 나는 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2007년 5월 18일에 시작된 제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반대 투쟁은 6400여 일이 지난 오늘까지 현재진행형이다. 반대 투쟁이 3200일 이어진 무렵 해군기지가 준공됐고, 그 이후 3200일이 지나는 동안에도 강정은 끊임없이 평화를 부르짖는다. 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아침 7시 기지 정문에서 ‘평화 100배’를 하고, 오전 11시 평화 미사, 낮 12시 인간띠잇기 문화제를 마치면 강정의 평화 활동가들은 삼거리 식당에 모여 점심을 먹는다. 2022년 10년 만에 강정에 돌아왔을 때 나는 삼거리 식당과 망루가 그대로 있는 걸 보고 기적이라 느꼈다. 우리가 지키려던 모든 게 사라졌으나, 지키는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우리가 지키려던 건 구럼비 바위와 중덕 바다와 연산호 군락만이 아니었기에, 그것은 처음부터 평화였기에 우리는 지지 않았고 포기할 수 없다.
<장하나 ‘정치하는 엄마들’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