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과 장례식, 우린 뭘 떠나보내는가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대구대 사회학과 내년 신입생 모집 중지…기초학문 위기 고조

대구대 사회학과 졸업생이자 사회학과 전일제 조교인 김은서씨가 지난 10월 29일 ‘사회학과 메모리얼 파티’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린 대구대 교정을 걷고 있다. 김씨는 “메모리얼 파티는 사회학과 1학년 때부터 줄기차게 들었던 사회학적 상상력으로 기획된 행사다. 사회학과를 떠나보내고 슬퍼하는 게 아니라 제단에 전공 책들을 올리고 사회학과 함께한 기억을 추모할 계획이다”라고 했다. 이효상 기자

대구대 사회학과 졸업생이자 사회학과 전일제 조교인 김은서씨가 지난 10월 29일 ‘사회학과 메모리얼 파티’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린 대구대 교정을 걷고 있다. 김씨는 “메모리얼 파티는 사회학과 1학년 때부터 줄기차게 들었던 사회학적 상상력으로 기획된 행사다. 사회학과를 떠나보내고 슬퍼하는 게 아니라 제단에 전공 책들을 올리고 사회학과 함께한 기억을 추모할 계획이다”라고 했다. 이효상 기자

사회학자 오찬호 박사가 2015년 내놓은 책 <진격의 대학교>는 2045년 청와대에서 긴급회의가 열리는 가상의 상황을 그리면서 시작한다. 회의 안건은 자살이다. 이 가상 세계에서 국제연합(UN)은 한국 정부에 자살률 감소를 위해 사회적 책임을 다할 것을 강력히 권고하는데, 기업가·펀드매니저 출신인 대통령과 장관들, 청와대 수석들은 ‘자살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말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자살은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가 아니냐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게 이 세계관에는 개인의 행위를 사회와 연관 지어 해석하는 사회학과가 없다. 2022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끝으로 전국 대학의 사회학과가 모두 폐지됐다. 취업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로, 학령인구가 감소했다는 이유로, 더 나아가 사회학도는 사사건건 트집이나 잡는 몽상가들이라는 이유로 한국에서 사회학은 멸종했다. 그 결과 최고위 정책결정권자들도 어떤 현상의 사회구조적 원인을 유추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한국사회의 오늘은 이 비관적인 전망에 현실성을 부여한다. 대구대 사회학과는 오는 11월 7일부터 이틀간 메모리얼 파티(장례식)를 연다. 내년부터 신입생 모집이 중단되면서 사실상 폐과 수순을 밟게 된 학과를 애도하는 행사다. 대학에서 사회학과의 폐과는 이제 더는 놀랄 일도 아니다. 너무나도 익숙한 일이 된 나머지 이렇다 할 저항도 없이 이미 많은 대학에서 사회학과는 자취를 감췄다. 대구대 사회학과를 주목하는 것은 애도라는 형식으로 ‘사회학 멸종’이라는 시대의 거대한 흐름에 저항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렇게 사라지지만, 지금이라도 사회학의 위기 신호를 듣지 않으면 더 큰 절망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대 사회학과는 왜 사회학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지를 다시 묻고 있다.

사회학이 자취를 감추는 시대, 사회학도들에게 사회학은 무엇인지를 물었다. “야생적 기질을 지닌 학문”, “성찰하는 학문”, “위로의 학문”이라는 저마다의 답변에는 취업률 등 지표로 단순화할 수 없는 사회학의 쓸모, 가치가 담겨 있다. 이는 지역과 대학이, 정부와 사회가 더는 기초학문의 죽음을 방치해선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회학과 없는 사회과학대학

지난 10월 29일 대구대 사회과학대학을 찾았다. 첫눈에 들어온 건 건물 복도 게시판에 붙어 있는 각 학과의 이름이었다. 청소년상담복지학과, 아동가정복지학과, 지역사회개발·복지학과(2025학년도부터는 평생교육실버복지학과로 이름을 바꾼다), 문헌정보학과, 사회복지학과,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사회학과, 심리학과. 상당수 학과가 취업 가능한 직업과 취득 가능한 자격증을 직관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구체적인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지난 몇 년 사이 학과들의 ‘특성화’가 진행됐기 때문이다. 2022학년도에 산업복지학과는 청소년상담복지학과로, 가정복지학과는 아동가정복지학과로 이름을 바꿨다. 2021년 지방대 입학 정원 미달 사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해 대구대는 신입생 최종 등록률이 80.8%에 그치는 심각한 사태를 겪었고, 그 여파로 총장이 사퇴했다. 직후 신입생 정원을 줄이고 학과를 통폐합하는 한편, 실용적인 학과로 특성화하는 구조조정에 나섰다.

대구대 사회학과 학생회장 김민정씨는 “대학이 직업양성소, 직업사관학교가 된 걸 느낀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방에 있는 사회학과로서는 버틸 만큼 버텼다는 생각도 든다”라고 했다.

대학 학과 특성화의 시대, 응용학문과 실용학문의 기반이 되는 기초학문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2024학년도 사회학과 신입생 정원이 크게 미달하자, 학교 측은 2025학년도부터 사회학과의 신입생 모집을 중단하기로 했다. 지금의 사회학과 재학생들이 전과나 졸업 등으로 모두 학과를 떠나게 되면 대구대 사회과학대학은 ‘사회학과가 없는 사회과학대’가 된다.

이는 대구대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지역 대학부터 사회학은 빠르게 자취를 감추고 있다. 대구가톨릭대 사회학과는 2022학년도부터, 경남대 사회학과는 2023학년도부터 신입생 모집을 중지했다. 지역에만 국한된 문제도 아니다. 이희영 대구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학과가 문을 닫으면 이제는 체념하는, ‘해봤자 소용없다’는 분위기 속에서 메모리얼 파티를 알리는 목소리를 냈다. 예상외로 이미 폐과를 경험한 대학과 당사자들, 위험에 처한 연구자와 학교들이 전국에서 연락해 왔다. 한 스카이 대학(서울대·고려대·연세대)의 교수님은 ‘서울에 있고 소위 메이저 대학이라 하지만 사회학 교수는 충원을 안 한다’고 했다. 대구대에서 먼저 나타난 문제이지, 전국의 사회학과가 닥친 공통의 문제다”라고 했다.

사회학과 장례식, 우린 뭘 떠나보내는가

사회학과를 잃으면, 동료시민을 잃는다

신입생 모집 중지 통보에 대구대 사회학과 졸업생들과 재학생들의 대응은 메모리얼 파티였다. 추모와 애도를 하는 자리지만, 어렵게 찾아온 조문객들이 돌아갈 때는 즐거움과 뿌듯함을 안고 가길 바라며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대구대 사회학과는 퇴장하더라도 사회학은 어떤 식으로든 이어져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회학은 이들에게 세상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오목렌즈이자, 삶의 방향을 일러주는 나침반이었다.

재학생 이동현씨(2020학번)는 사회학과에서의 지난 3년을 “재밌게 공부한 시간”으로 기억한다. 고교 시절 궁금해하던 것들, 예컨대 ‘공부는 왜 해야 하나’, ‘한국의 교육제도는 왜 이런가’ 같은 질문에 사회학은 답변을 줬다. 그는 “사회학은 일상생활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측면에서 판단한다. 저는 한쪽으로만 생각하고 살던 사람인데 사회학을 배우면서 다양하게 배우고 바라볼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전장연(전국장애인철폐연대) 시위에 대해서도 ‘출근길에 뭐 하는 거냐’ 이렇게만 생각했는데 그들의 이동권이 오랫동안 실현되지 않은 현실을 배우면서 입장을 이해하게 됐다. 학과가 이렇게 된 상황에서도 더 배우고 싶다”고 했다.

메모리얼 파티를 기획 중인 졸업생 권민조씨(2015학번)는 사회학이 “다음 세대를 위해 존재해야 할 학문”이라고 했다. 그는 졸업 후 교육회사에서 일하며 많은 지역의 학교들을 방문했는데, 사회학도인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학교별로 불평등한 교육현실과 지역격차였다.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현재는 성공회대 사회과학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대구대 사회학과처럼 살아 있는 따끈따끈한 사회학을 공부하는 데가 별로 없다. 교수님들이 교과서 위주의 공부가 아니고 눈높이에 맞춰 현장 실습이나 토론 방식으로 강의를 이끌어 왔다. (사회학과 폐과는) 지방대가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라지만 대학 입장에서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철학과나 역사학과가 없는 대구대에서 사회학과는 인문학적 소양을 키울 수 있는 강의를 도맡아 하던 학과였다. 그런 과를 없애는 것”이라고 했다.

함께 이번 행사를 기획 중인 대구대 사회학과 졸업생 박재범씨(13학번)는 점수 맞춰 들어간 사회학과에서 “인생이 크게 바뀌었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대학교 3학년 때 사회적기업을 창업해 10년간 일했고, 학부 때의 관심이 이어져 여성학 석사과정을 마쳤으며, 지금은 다른 분야의 직장인이 됐다. 그는 “학부 때 사회학적 상상력, 비판적 사고, 토론, 글을 쓰는 힘, 논문을 찾아보는 습관을 배웠다. 저는 사회학이 취업에 불리하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기업들이 예전보다 조직이나 문화에 대한 소양을 더 많이 요구하고 있다. 모든 수업을 토론과 팀을 만들어서 했던 사회학도들은 현장에 더 적응된 인재들”이라고 했다.

사회학과는 직업인 이전에 동료시민을 길러냈다. 사회학과가 사라진 뒤에야 우리 사회는 사회학의 쓸모와 가치를 과소평가했음을 깨닫게 될지 모른다.

메모리얼 파티 온라인 페이지에 메시지를 남긴 한 졸업생은 이희영 교수가 한 강의에서 했던 말이라며 “사회학은 야생적 기질을 지닌 학문”이라고 했다. 이희영 교수에게 무슨 뜻인지를 물었다. 이 교수는 “사회학은 공동체에 의미 있는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서 무엇을 반성해야 하는지 돌아보는 학문이다. 성찰성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야생이라는 말을 썼다. 이런 흐름이 계속되면 사회학과는 서울의 일부 대학에만 남게 될 것이다. 권력과 문화가 집중된 곳에서 개인들은 사회를 구조적으로 바라보는 역량을 키울 수 있는 반면, 지역에 사는 개인들은 그 기회를 잃게 된다. 기능적이고 부수적인 역할로 떨어질 가능성이 커진다”고 했다.

2022학년도부터 신입생 모집이 중단되면서 사회학과에서 문화콘텐츠학과로 소속이 바뀐 김동일 가톨릭대 교수는 “사회학이 사라지면 사회가 올바르다, 잘못됐다 조망할 수 있는 시각 자체가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젊은 학생들에게 ‘성찰하지 말고 살아라’, ‘궁금해하지 말아라’, ‘그냥 살아라’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