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르파는 에베레스트 고원지대에 살면서 등반가들을 돕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물품 운반부터 루트 개설, 밧줄 고정, 요리, 캠프 설치 등의 일을 하는데 등반가의 목숨을 구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죽는 일도 있다. 어떤 등반가가 히말라야의 산을 정복했다는 이야기에는 항상 (셰르파 ○○와 함께)라는 말이 생략된 셈이다.
“셰프와 이모님들이 관계 맺는 방식은 마치 등반가와 셰르파의 비대칭적인 관계를 연상케 한다. 자신들은 녹초가 돼 있는데도 웃음을 잃지 않고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해내는 셰르파와 치열한 요리전쟁 속에서도 묵묵히 채소를 써는 이모님들은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지난달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방영 후 출연자들의 호칭과 관련한 논란이 있었다. 다른 출연자들은 셰프로, 중년 여성 출연자들은 이모님으로 불리는 것이 옳으냐는 비판이 나왔고, 한편에서는 우리 음식 문화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었다. 방송에서 사용된 ‘이모님’이라는 말은 멸칭보다는 존칭에 가깝다는 것이다. 한 여성 출연자는 ‘이모카세’라는 별명을 사용하며 ‘이모’를 본인의 브랜드로 삼기도 했다. 직업인으로서 동등한 존중이 담겨 있다면 호칭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러니까 문제의 관건은 호칭 자체보다는 그 호명에 충분한 존중이 담겨 있는가이다. 방송에서 이모님이라는 호칭은 대체로 칭찬의 의도로 사용됐다. 팀전 미션에서는 중년 여성 출연자 급식대가와 이모카세1호가 능숙하게 채소를 써는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줬다. 그러면서 남성 요리사들이 이를 보고 감탄하는 장면을 여러 차례 교차해서 보여줬다. 한 남성 출연자는 중년 여성 출연자에게 “그분은 손에 MSG가 장착되어 있으시잖아요”라고 칭찬했다. ‘역시 이모님들’이란 칭찬의 성격을 생각해보자. 다른 출연자들의 능력 묘사가 개인적인 데 반해 ‘이모님’들의 능력 묘사는 관습적이다. 여기에는 능력 습득 과정에 대한 상반된 이해가 깔려 있다. 남성 셰프들의 능력은 개인의 특별한 노력과 재능이 빚어낸 능력으로 이해되지만 ‘이모님’들의 능력은 그저 세월이, 역할이, 성별이 만들어낸 패시브 스킬(기본 기술)로 이해되는 것이다. 언제나 등반가들의 업적은 진취적으로 묘사되지만, 셰르파의 능력은 집단적 관습적 특징으로만 묘사되는 것처럼.
셰르파들을 연구한 인류학자 셰리 오트너는 등반가와 셰르파의 관계가 은유적으로 성별 코드화돼 있다고 말한다. 셰프와 이모님들이 관계 맺는 방식은 마치 등반가와 셰르파의 비대칭적인 관계를 연상케 한다. 이모님들을 향한 묵묵함, 책임감, 성실함에 관한 칭찬은 서구 등반가들이 셰르파를 묘사하는 공통적인 특징들이다. 자신들은 녹초가 돼 있는데도 웃음을 잃지 않고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해내는 셰르파와 치열한 요리전쟁 속에서도 묵묵히 채소를 써는 이모님들.
이제야 ‘이모님’ 호칭이 지닌 성격이 드러난다. 의도와 의미는 다르다. 고유한 능력을 집단화시키고, 특별한 능력을 관습화시키는 호칭을 어떻게 존칭이라 할 수 있을까. 한강의 소설을 ‘이모님 문학’이라고 부르면서 어떻게 그 특별함을 인식할 수 있을까.
<정주식 ‘토론의 즐거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