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석 의장이 안 나오면 의미가 있을까요?” 최근 더불어민주당 한 의원과의 식사 자리에서 노동계가 주문하는 ‘쿠팡 청문회’에 관해 이야기하던 중 의원이 말했다. 미국 쿠팡Inc를 통해 그룹을 사실상 지배하는 김범석 쿠팡 의장이 4년째 총수 지정을 피해 간 상황에서 청문회가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노동 현안에 대한 해당 의원의 진의를 의심하는 바는 아니었지만, 어딘지 뒷맛이 썼다.
22대 국회 개원 후 쉴 새 없이 청문회 정국이 펼쳐졌다.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검사 2명에 대한 탄핵소추 조사 청문회가 열렸다. 탄핵소추 당사자인 검사를 비롯한 주요 증인들은 출석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검찰의 편파 수사, 진술 회유 등 의혹을 드러내 여론을 환기한 것만으로도 소기의 성과가 있다고 자평했다. 같은 논리라면 김범석 의장의 불출석이 예상되는 쿠팡 청문회는 왜 열리지 않는 것일까. 못하는 것일까, 안 하는 것일까. 민주당은 다른 검사 2명에 대한 청문회도 열지 검토 중인데, 정치의 사법화라는 비판이 이어진다.
지난 10월 1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가수 뉴진스의 멤버 하니가 출석한 것을 두고도 평가가 엇갈린다. 유명인의 국감 출석은 이전부터 이어져 온 일이다.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사회 문제들이 ‘반짝 조명’이라도 받는 것은 순기능이라 할 수 있겠다. 하니를 참고인으로 소환해 ‘직장 내 따돌림’ 문제의 심각성을 환기하고 근로자성 확대라는 화두를 던졌다는 호평도 있다. 하지만 당시 의원들의 질의가 대부분 기초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수준에 머물러 문제의 근본을 짚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비판이 크다.
무엇보다 당일 환노위 국감장에는 “과로사가 반복되고 있는 쿠팡 노동자, 불법 파견이 인정됐지만 여전히 싸워야 하는 현대제철 노동자”(10월 22일 경향신문 기사) 등도 증인으로 출석했다. 하지만 이들은 발언 기회를 얻지 못했다.
분투는 현재진행형이다. 국회 앞에는 ‘쿠팡 청문회’ 현수막을 내건 노동자들의 농성장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은 끊이지 않는 과로사 등 노동자 건강권 침해, 블랙리스트 운영, 노조 탄압 등 쿠팡의 고질적인 문제에 대한 관리·감독을 요구한다. 2020년부터 올해 8월까지 쿠팡 노동자 20여명이 일하다 사망했다. 쿠팡 청문회 개최에 관한 국회 국민동의 청원에는 올해 10월까지 2만6000여명이 동의했다.
야권이 주도해 최근 열린 몇몇 현안 관련 청문회는 ‘의혹’을 부각해 청문회 자체를 정치적 소재로 삼으려 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듣고 묻는다’는 것이 청문회의 본질인데 지금의 국회는 무엇을 듣고 있나. 의혹에 관해 들여다보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실재’하는 죽음, ‘실존’하는 폭력에 대해 국회와 정부가 응답했는지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먹사니즘(먹고사는 문제)’을 앞세운 제1야당이라면 우선순위를 점검해야 한다. 폭발력 있지만 휘발성도 큰 현안에만 주목하지 않고, 소외된 자들이 겪는 문제에 책임 있는 주체들이 어떻게 임하는지 감시하는 언론의 역할 역시 중요할 것이다.
소외된 이들의 말이 더 많이 들리기를 바란다. 세상은 더디지만 조금씩 나아질 것이다. 기꺼이 들으려는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박하얀 기자 whit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