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 가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잠시 후 테이블에 ‘아·아’가 놓인다. 다짐한다. ‘아·아’ 속 얼음이 다 녹을 때 마지막 모금을 마실 것이다. 그때 이 카페에서 일어서야지.
굳이 시간을 보고 싶지 않은 한가로운 시간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마침내 일어서면서 시계를 얼핏 보았더니 대략 한 시간이 흘렀다.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의 소설 중 ‘눈 한송이가 녹는 동안’이라는 단편을 떠올려 본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설화가 주요 모티브다. 소녀는 젊은 스님에게 ‘함께 있어 달라’고 애원하지만, 스님은 거부한다. 소녀는 머리 위의 눈을 가리키며 “제발, 눈송이가 녹는 동안만”이라고 애원한다. 소설 속 소설로 등장하는 설화에서 이 말은 단편의 제목이 됐다. 그런데 소녀가 “제발 한 시간만”이라고 말했으면 어떠했을까. 운치도, 절박함도 없어졌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는 2027년 5월 끝난다. 5년 임기도 이제는 반환점에 다다랐다. 오는 11월 11일이 정확하게 2년 반이다. 어떤 사람들은 ‘겨우 절반이냐’라고 여길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벌써 절반이냐’고 느낄 것이다. 물 반 컵을 놓고 서로 다른 해석을 하는 것과 똑같은 양상이다.
지난주 10·16 재보선 이후의 정치를 전망했다. 윤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힘겨루기를 할 것이고, 윤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에 대한 한 대표의 요구를 거부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정국은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고 있다. 그런데 권력의 모든 것을 차지했던 윤 대통령의 힘이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다. 올해 4월 총선에서 참패가 그러하고,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의 파장도 그러하다. 이제는 여당 대표가 그를 향해 칼을 겨누고 있다.
정치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그래서 더욱 아슬아슬하다. 윤 대통령에게 이미 눈송이는 거의 다 녹아버렸고, 아·아 속 얼음은 커피 속으로 대부분 사라져 버렸다. 윤석열 정부에 있어 지금은 5년의 시간이 문제가 아니다. 마지막 눈송이가 녹기 전에, 아·아 속의 마지막 얼음 조각이 사라지기 전에 이제라도 윤석열 정부가 올바른 ‘정치’의 길로 들어서길 간절히 바란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