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패스트푸드 업체 맥도날드가 홈페이지에 심상치 않은 공지를 하나 올렸다. 당분간 상황에 따라 햄버거에서 토마토를 뺄 수도 있다는 것이 요지였다. 올해 폭염 때문에 농사가 잘 안 돼서 토마토 수급이 불안정하다는 이유였다. 비슷한 시기 서울 중구 경향신문 본사 근처에 있는 패스트푸드 업체 써브웨이에도 샌드위치와 샐러드에 넣는 토마토 양을 제한한다는 공지가 붙었다.
‘토마토 실종 사태’를 다룬 온라인 기사들의 댓글도 읽어봤다. “토마토 없는 베토디(맥도날드 베이컨 토마토 디럭스)는 베토디가 아니라”며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었고, “이번엔 토마토냐”며 체념한 듯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덜컥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형 프랜차이즈 맥도날드도 토마토 수급이 어렵다는 게 충격적이었다. 전 세계 어디서나 균일한 맛과 품질을 제공한다고 자부하던 그 맥도날드 아닌가? 성큼 다가온 기후위기에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올해 3월에 사과값이 많이 올랐을 때 경남 함양에 있는 사과농장에 취재를 다녀왔다. 사과 농사를 짓기 전에는 서울에서 환경운동가로 일했다는 마용운씨를 인터뷰했다. 마씨는 올해로 14년째 사과 농사를 짓고 있는데 해가 갈수록 농사짓기가 어려워지고 있다고 한탄했다. 봄에는 꽃샘추위, 여름에는 폭염, 가을에는 가을장마, 점점 더 널뛰는 날씨가 사과를 괴롭힌다고 했다.
“북극곰이랑 남극의 펭귄이 아니라 당장 내가 문제”라는 마씨의 말이 아직 뇌리에 남아 있다. 마씨는 서울에서 환경운동가로 일했을 때보다 사과 농사를 지으면서 더 뼛속 깊이 기후변화를 체감하고 있다고 했다. 10년, 20년 후에도 고향인 경남 함양에서 계속 사과농장을 할 수 있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누구나 제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나서게 마련이라 기후위기를 걱정하면서도 내심 나에게 닥친 지금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젠 사과밭이 아니라 식탁에 앉아서도 기후위기가 다가온 것을 쉽게 느낀다. 연초에는 1개당 8000원까지 오른 사과값 때문에 충격받고, 싸고 잘 상하지도 않아서 늘 만만하던 양배추값이 뛴 것을 보고 놀라기도 했다. 여름이 그렇게 덥다 싶더니 이번엔 토마토다.
이런 일이 점점 더 잦아질 것이라는 경고는 세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엘니뇨 때문에 전 세계가 유난히 더웠던 올해 아프리카에서는 코코아 생산량이 줄었고, 스페인에서는 가뭄 때문에 올리브 농사가 잘 안 돼서 정부가 판매세를 일시적으로 면제해줬다고 한다. 해외 농산물 수입이나 스마트팜 같은 대책이 나오고 있지만, 누군가는 기후플레이션 때문에 농산물값이 점점 더 널뛰는 상황에 인간이 적응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암울한 미래를 말한다.
‘토마토 실종 사건’이 무섭기도 하지만 마지막 기회로 보이기도 한다. 지구가 사과로, 배추로, 토마토로 ‘제발 뭐라도 좀 하라’고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냄비 속 개구리’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있는 것보다 이런 신호들이 나타나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언젠가 인류가 기후위기로 존립을 위협받게 되는 때가 온다면, 베토디에서 토마토가 사라졌던 올해가 중요한 계시를 받은 해로 기록될지도 모를 일이다. 적어도 나한테는 올해가 그렇게 기억될 것 같다.
<박채영 기자 c0c0@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