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심사위원 안성재 ‘모수’ 셰프의 평가 방식이었다. 그는 1차전 심사 전 경연 참가자들에게 자주 이런 취지의 질문을 던진다. “이 요리의 의도가 뭡니까?” 그의 음식 평가는 이 답을 토대로 이뤄진다. 의도에 맞게 요리를 해냈는지 보는 것이다.
이 기준은 까다롭다. 의도라는 게 먼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맛있으면 좋겠다’ 같은 느슨한 설정으로는 어림없다. 만들려는 요리가 뭔지, 보통은 어떻게 만드는지, 본인은 뭘 다르게 할 생각인지 브레인스토밍이 필요하다. 요리 이론, 지식과 철학이 없다면 여기부터 막히는데, 수행 능력도 요구된다. 소금간, “채소의 익힘 정도” 같은 건 ‘기본기’다. ‘훈연향이 나는 방어 세비체’라고 설명을 했다면 훈연향이 나야 한다는 것이다. “고기가 이븐(even·일정한)하게 익지 않았다”는 혹평과 “음식은 무궁무진하다. 생각을 열라”는 충고가 함께 나온 배경이다.
이는 열린 기준이기도 하다. 안성재는 ‘급식대가’가 내놓은 첫 요리를 먹을 때 반찬 하나하나를 콕 집어 평가하지 않는다. 대신 식판 위 음식을 진짜 급식 먹듯 번갈아 맛본다. 요리사가 ‘급식 식판’에 내놨으니, 그 의도에 맞춰 평가하겠다는 마음이 느껴진다. 맛에 이르는 다양한 길을 두루 인정하려는 넉넉함이 엿보인 장면이다.
그러면서도 안성재는 공정했다. 제자 격인 모수 출신 요리사 ‘원투쓰리’를 평가할 때 그는 개인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한다. “프랑스에서 수도 없이 먹었던 오리 디시(dish·요리)를 생각하면서 ‘그것보다 맛있나’를 생각했다.” 불공정 의혹을 일단 차단하는 접근이지만,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안성재는 “요리 실력이 많이 늘었다”며 원투쓰리에게 생존을 통보한다. 본인이 세운 기준을 넘었으니 합격이 맞다는 것이다. 겉보기에 공정하려고 불공정해지고 마는 세상에 용기 있는 태도라 생각했다. 덕분에 그가 에드워드 리를 평가하며 ‘콘셉트가 비빔밥이면 비볐어야 한다’는 등 나름대로 생각을 관철해 논란이 일었을 때도 고개 끄덕일 수 있었다.
어린 날, 안성재 같은 평가자를 기다렸던 것 같다. 탈락이 훨씬 많은 경쟁의 본질 때문만은 아니었다. 떨어질 때는 물론 관문을 넘어설 때도 납득가는 설명을 듣고 싶었는데 좀처럼 그런 일은 없었다. 대놓고 불공정한 사람이 차라리 보기 쉬웠다. ‘채용 비리’ 기사나 불합리한 면접 사례는 잠깐만 검색해도 우르르 쏟아진다. 누구에게나 나쁜 심판에 대한 기억이 있다.
반면 어떤 심판이 좋은 심판인지는 말하기 어렵다. 평가자는 구조상 잊히기 쉬운 존재다. 뭔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은 플레이어이고, 스포트라이트는 그들에게 쏠린다. 실제로는 수많은 행위자 중 누가 주인공이 될지 정하는 막대한 권능을 지녔지만, 심판에게 요구되는 덕목이 논의의 중심에 오르는 일은 드물다. 심사위원이 ‘튀는’ 순간은 멘트가 재치 있거나, 평가가 너무 이상해 지켜보는 이들의 공감을 얻지 못할 때 정도다.
팀 내 투표로 탈락자를 정하게 하는 등 프로그램 후반부가 불공정 논란에 시달린 것을 모르지 않는다. 구조적 불공정하에서는 심사자 개인의 공정성이 힘을 발휘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하지만 이렇게는 말해도 좋지 않을까. 안성재 덕분에 좋은 심판 모델을 하나 알게 됐다고.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