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처리장 증설에 맞서 고령의 해녀들 2018년부터 투쟁
해녀들 환경권 인정…1심에서 의미 있는 승소로 공사 중지
제주도 동쪽, 제주시 구좌읍엔 맑고 예쁜 에메랄드 색깔 바닷물로 유명한 월정리 해수욕장이 있다. 지난 9월 26일 찾은 월정리 해수욕장에선 아름다운 해변을 걷거나 파도를 타며 서핑을 즐기는 관광객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2㎞가량 떨어진 곳엔 제주시의 오·폐수를 처리하는 하수처리장이 있다. 월정리 해녀들은 하수처리장 증설에 반대하며 2018년부터 맞서 싸웠다. 해녀가 소멸하는 시대, 60~80대 고령 해녀들은 “바다를 지키는 게 우리를 지키는 것”이라고 나섰다.
바다 살릴 수 있다는 희망으로
월정리의 동부하수처리장이 가동된 것은 2007년이다. 2014년 처리용량을 한 차례 증설한 제주도는 2017년 하루 1만2000㎥에서 2만4000㎥로 또다시 처리용량을 증설하기로 하고 고시했다. 관광인구가 증가하고 주택건축 급증으로 하수발생량이 많이 늘어 증설이 필요하다는 게 이유였다. 월정리엔 국가지정 문화재인 용천동굴과 당처물동굴이 있고, 해녀들은 하수처리장 인근에서 ‘물질’(해녀가 바다에 들어가 해산물을 채취하는 일)로 생계를 이어간다. 신도시 개발로 생긴 폐기물을 월정리가 떠맡게 된 불평등 문제도 끼어 있다.
월정리 한 카페에서 만난 해녀 김은아씨(49)는 “월정리 바다는 유독 한해 한해 달라지는 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바로 옆 마을에는 소라도, 해초류도 많이 난대요. 6~7년 전 처음 이곳에 왔을 때도 우뭇가사리가 많았거든요. 그런데 최근 3~4년은 물질이 없어요. 바다에 물건이 없으니까 수확을 아예 못 해요. 성게 조업일수도 월정리가 제일 적죠. 성게가 줄기도 했지만, 오염된 바다에선 성게의 질이 나빠져요. 번식은 많이 하고 먹잇감이 없으니까 성게알만 있지 내용이 빈 거예요.” 김씨는 또 “바다에 들어가서 이제는 할 게 없다”라며 “해녀를 그만둘까 생각할 정도”라고 했다. 그는 “출산장려로 돈을 얼마 준다고 해서 출산율이 높아지지 않는 것처럼, 해녀가 없어지는 것은 근본적으로 바다 환경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결국 해녀들이 ‘바다 지키기’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기자회견이나 집회를 열어본 적 없던 해녀들은 “제주도지사가 해녀들과 대화하라”고 요구하며 제주도청, 하수처리장 앞에서 기자회견과 집회를 열었다. 지난해 5월 30일 해녀들이 연 기자회견 제목은 “월정 해녀들의 말 좀 들어줍써”였다. 해녀들은 제주도청에 찾아가 노숙 농성도 했다. 고령의 해녀들이 쌀쌀한 날씨에 찬 바닥에 이불을 깔고 밤을 새웠다. 공사장 앞 컨테이너엔 순번을 정해 보초를 섰다. 시민사회단체들도 해녀들의 투쟁에 합류했다. 제주도와 공사업체 측은 공사 방해로 법적 책임을 묻겠다며 해녀들을 압박하기도 했다.
김씨는 월정리 해녀들의 투쟁이 단순히 혐오시설을 반대하는 님비현상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하수처리장 바로 앞이 우리가 조업하는 바다예요. 방류관이 있는 곳이 해녀들이 물질하는 곳이죠. 바다에 들어가면 역겨운 냄새가 나요. 물질을 들어가면 물을 2ℓ는 마시게 되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불안감이 항상 있어요. 처음 하수처리장을 만들 때 2차 증설 계획까지 있었다는데, 아무도 월정리 바다가 이렇게 변하리라 생각을 못 했던 거죠. 해녀들의 싸움에는 미래의 후손들, 내 손자들에게 좋은 바다를 물려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미가 있어요. ‘더는 바다를 빼앗길 수 없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고요. 그분들이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래도 바당(바다)은 살아난다’고요. 바다를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어요.”
법원은 해녀들의 환경권 인정
해녀는 오랫동안 하나의 직업으로 존중받지 못했지만, 제주 해녀들은 1930년대 일제강점기 때 주체적으로 대규모 항쟁에 나선 역사를 갖고 있다. 해녀조합이 해녀들이 캐낸 감태와 전복의 가격을 싸게 매기려고 하자 해녀들이 강력히 항의하면서 투쟁에 나섰다. 해녀들은 호미와 빗창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일제의 식민지 수탈 정책에 저항한 항일 운동으로 평가된다. 월정리 투쟁에서도 이런 해녀들의 주체성이 드러난다. 여전히 농·어촌의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것은 남성 가부장이지만, 해녀사회에서의 의사결정자는 해녀이고, ‘바다 지키기’에 공동의 목소리를 내는 것도 해녀였다. 김씨는 “모든 농사활동은 남성이 결정하지만 해녀들은 바다에 들어가야 할 조업 날짜를 스스로 결정하고, 자신이 번 돈으로 자식들을 키우며 자부심을 느낀다”며 “해녀는 여성에게 주체성 있는 삶을 느끼게 해주는 일”이라고 했다.
투쟁이 장기화하면서 주민들 사이에 의견은 엇갈렸다. 제주도는 지난해 6월 “5년 8개월 만에 갈등을 해소했다”며 주민들과 하수처리장 증설을 정상 추진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법적 싸움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 해녀 4명을 포함한 월정리 주민들이 제주도를 상대로 낸 ‘공공하수도 설치변경 고시 무효확인 소송’ 1심에서 제주지법 재판부가 지난 1월 30일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비자림로 확장 공사 등 제주도에서 발생한 여러 개발사업과 환경파괴를 두고 벌인 법적 다툼에서 주민들은 번번이 패소했다. 그러니 이번 월정리 판결은 이례적이고 의미 있는 것이다.
제주지법 재판부는 월정리 하수처리장 증설 절차가 위법하게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법이 개발사업을 진행할 때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시행하도록 규정한 것은 자연환경을 해치지 않는 것뿐 아니라 직접적이고 중대한 환경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되는 주민들의 개별적 이익까지도 보호하려는 취지라고 봤다. 이에 따라 월정리 건에서도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해야 했지만, 제주도가 제대로 하지 않아 문제라고 했다. 법원은 주민들이 낸 고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도 인용했다. 공사는 중지됐다. 본안 1심 판결에 제주도가 항소해 2심 판단이 남아 있다.
제주 해녀문화는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지만 해녀 수는 점점 줄고 있다. 해녀 소멸을 막겠다며 여러 지원정책을 내놓는 제주도는 다른 한편으론 하수처리장 건으로 해녀들과 대치하고 있다. 김씨가 말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돈, 수당이 아니고 지속할 수 있는 바다 환경을 만드는 것인데 오히려 공동체는 깨지고 있고 바다 환경은 파괴되고 있어요. 무슨 정책을 어떻게 내놓을 것인가요? 해녀는 제주도의 관광 콘텐츠밖에 안 되는 수준이에요. 물론 해녀들은 내 삶의 터전인 바다를 지켜야 하지만, 죽어가는 바다를 조금이라도 빨리 회복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투쟁을 시작한 것이었어요. 싸웠기 때문에 법원 판결도 나왔고, 다른 대안을 찾아낼 수 있죠. 시민들이 한 번쯤 같이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