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액션물’인 이 영화가 ‘정의란 명목하에 행해지는 폭력이란 정당한가’ 스스로 되묻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진실과 정의의 가치와 기준이 모호해지는 이때 이런 담론은 더욱 유효하고 가치 있어 보인다.
제목: 베테랑 2(I, The Executioner)
제작연도: 2024
제작국: 한국
상영시간: 118분
장르: 액션, 범죄
감독: 류승완
출연: 황정민, 정해인, 오달수, 정만식, 장윤주, 진경
개봉: 2024년 9월 13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 <베테랑 2>는 9년 만의 속편이다. 시간의 흐름만큼 영화 속 인물들뿐 아니라 소재, 주제 면에서도 성숙한 변화가 포착된다. 다행히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전편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새로운 시대의 요구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는 데 이견이 없어 보인다.
과거 제자를 농락하고도 법정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교수가 끔찍하게 살해당하자, 인터넷상에는 사적 정의를 구현하는 일명 ‘해치’의 응징이라며 지지하는 분위기가 넘쳐난다. 형사 서도철(황정민 분)은 이 사건이 앞서 벌어진 의문의 살인들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직감하지만 이를 증명할 길은 묘연하다.
형기를 마치고 갓 출소한 희대의 파렴치범 전석우(정만식 분)가 해치의 다음 표적으로 지목되자 서도철과 팀원들은 그를 보호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이를 계기로 명석하고 강인한 신입 경찰 박선우(정해인 분)도 서도철의 팀에 합류한다.
일단 액션 영화의 관점에서만 평가했을 때도 기대에 부응하는 다양한 요소가 충분히 제공된다. 주부도박단을 검거하는 오프닝부터 화려하게 펼쳐지는 소동과 액션은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하다. 참고로 주부도박단 사건은 전편 <베테랑>(2015)에서 농담처럼 언급되며 끝내 미제로 방치된 사건이었다.
이후 서울 남산 N타워의 화려한 크리스마스 축제를 배경으로 한 추격 장면이나, 마약 소굴 안에서의 섬세한 격투기, 피날레를 장식하는 폐쇄된 터널 안에서의 자동차 액션까지 매번 독특한 분위기와 설계를 통해 구현된 대결 장면들은 이제껏 한국 영화에서 봤던 액션 장면과는 확실히 차별화된 볼거리들이다.
류승완 연출 세계의 뚜렷한 도약
이번 작품에서는 감독 류승완의 이전 작품 세계와 궤를 달리하는 뚜렷한 ‘도약’을 엿볼 수 있다.
이제껏 그의 작품들은 최대한 높이 평가한다 해도 ‘잘 만든 액션 영화’였다. <군함도>(2017)나 <모가디슈>(2021) 등에서 외연 확장을 시도해 현실적인 역사의식과 사회적 문제를 담고자 했지만, 그것을 풀어내는 직설적이고 단선적인 이야기는 장르 영화 이상의 가치와 평가까지 끌어내는 데는 무리가 있었다.
이번 <베테랑 2>는 비로소 그 한계를 뛰어넘는 다층적 드라마로서의 깊이까지 성취했다.
표면적으로 주인공 서도철이 해결해야 하는 범죄는 일명 해치로 불리는 연쇄살인범을 잡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는 최근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무분별한 인터넷 정보와 마약 문제가 차례로 대두된다. 그리고 별개의 양상으로 보이던 개별의 사건들은 ‘중독’이라는 하나의 대명제 안에 모여든다. 여기에 학원폭력 문제까지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영화는 전편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방향으로 거침없이 달리지만, 이번에는 그 주변에 얽힌 문제들까지 폭넓게 포착해 놓치지 않는다.
스스로 질문하는 성숙한 자기성찰
<베테랑>은 다소 독특한 범죄 수사물이었다. 강력계 형사 서도철은 매사 믿음직한 팀원들과 함께하지만, 막상 영화의 중심에 등장하는 중요 사건을 뒤쫓는 상황에서는 늘 혼자다. 마치 필름 느와르 시절의 탐정이나, 무협 영화의 복수자처럼 스스로 난관의 과정을 극복하며 어둠의 중심으로 다가간다. 최후 심판의 순간에야 비로소 뒤늦게 합류하는 동료들의 팀플레이로 마무리된다.
결국 <베테랑>은 서도철이라는 개인이 주인공인 영화라 봐도 무방할 텐데, 이번 <베테랑 2>에서는 한 인간으로서의 서도철의 면모를 깊이 있게 파고든다.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공복이지만, 그에 앞서 한 가정의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고민하는 인간적 모습은 전편에서 부족했던 인물의 서사를 풍성하게 보완한다.
무엇보다 ‘범죄 액션물’이라는 장르로 구분되는 이 영화가 ‘정의란 명목하에 행해지는 폭력이 정당한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되묻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고 영특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나날이 진실과 정의의 가치와 기준이 모호해지는 작금이기에 영화가 던지는 이런 쉽지 않은 담론은 더욱 유효하고 가치 있어 보인다.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간 후 짧지만, 인상적인 쿠키 영상이 있다.
류승완·강혜정 부부의 영화사 ‘외유내강’
과거와 달리 한국을 대표하는 굵직한 제작사의 계보가 사라진 지 오래다. 대신 각양각색의 중소 제작사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어느 정도 명성을 얻은 감독이라면 자신의 제작사를 만드는 것이 당연시되는 분위기다. 한편의 완성작도 없이 기획만 반복하고 있는 회사까지 포함한다면 그 수는 더 늘어날 것이다.
그 와중에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특징과 꾸준한 개봉작을 선보이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회사들이 있다. 회사 이름처럼 범죄물이나 누아르처럼 선 굵은 작품들을 주로 만드는 ‘사나이픽처스’라든가 이번 <베테랑 2>를 내놓은 ‘외유내강’ 같은 회사가 대표적이다.
영화제작사 ‘외유내강’은 2005년 영화감독 류승완과 그의 부인인 영화제작자 강혜정이 세운 회사다.
이미 많이 알려졌지만 ‘외유내강’은 중의적 의미로 선택됐다고 한다. 일단 ‘속은 부드러우나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굳세다’란 사자성어 그대로의 의미가 있다. 더불어 부부의 성씨를 딴 작명이기도 하다. 사업적으로 바깥에서 영화를 찍는 ‘류’씨와 안에서 제작사를 운영하는 ‘강’씨란 뜻이기도 하단다.
지금의 ‘외유내강’이라는 회사는 단순히 많은 영화제작사 중 하나라기보다는 사실상 류승완 감독의 작품 세계의 일부라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처음에는 류승완 감독의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설립됐지만, 이후 사세가 확장되면서 다른 감독들의 작품까지 제작하고 있다.
권혁재 감독의 <해결사>(2010), 김태용 감독의 <여교사>(2017), 장재현 감독의 <사바하>(2019), 이상근 감독의 <엑시트>(2019), 김성식 감독의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2023) 등이 있었고, 오는 10월 개봉을 앞둔 이상근 감독의 <악마가 이사왔다>도 외유내강이 제작했다.
<최원균 무비가이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