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절 논쟁, 제대로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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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수 편집장

홍진수 편집장

“먹고살기 힘든 국민에게 건국절 논쟁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지난 8월 13일 대통령실 관계자가 전한 윤석열 대통령의 말입니다.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에 비판 여론이 들끓자 참모들에게 한 이야기라고 합니다. 건국절 논란이 국민의 삶과는 동떨어진 불필요한 이념 논쟁이라는 취지라고 이 관계자는 설명했습니다.

윤 대통령의 말을 듣고 기가 막혔습니다. 최근 다시 불거진 ‘건국절 논란’은 현 정부의 역사·교육 기관장 인사에서 시작했는데 대통령은 마치 남의 일인 듯 말합니다. 논란을 빚은 인사는 김 관장만이 아닙니다. 지난 7월 임명된 김낙년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은 ‘친일 식민사관’이란 비판을 받은 책 <반일 종족주의>의 공저자입니다. 이배용 국가교육위원장과 김광동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장도 식민지 근대화론을 펴는 뉴라이트 단체에 참여한 경력이 있습니다. 지난 1월 취임한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은 지난 3월 기자간담회에서 “일본이 과거에 대해 사죄하지 않는다는 기성세대 인식을 젊은 세대에게 강요해선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실은 올해 광복절을 앞두고 논란이 커지자 “정부나 대통령실에서 건국절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고, 추진하려고 한 적도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나 논란이 되는 인물을 줄줄이 임명해놓고 뒤늦게 설명을 붙여봤자 설득력이 생기지 않습니다.

윤 대통령은 이제 와서 건국절 논쟁은 의미가 없으니 그만하자고 하지만, 그게 무 자르듯이 될까요. 역사를 전공한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정치인들도 논쟁에 뛰어들었고,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도 인사 청문회에서 ‘역사관’에 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학문적으로’ 대한민국의 건국 시점을 어디로 볼 것인지는 얼만든지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입니다. 헌법에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한 것을 따라 1919년으로 볼지, 정식으로 국민투표를 거쳐 정부를 구성한 1948년으로 볼지 의견이 갈립니다.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까지, 체제는 바뀌었지만 국가는 계속되었다는 것이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다”(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 교수·‘시사인’ 인터뷰)라는 의견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편향된 인사를 줄줄이 요직에 앉히는 정부입니다.

주간경향 이번 호는 표지 이야기에서 ‘누가 역사를 이용하고 있는지’ 짚어봅니다. 이른바 뉴라이트는 기존 역사를 비이성·비과학적 민족주의로 폄훼하고, 자신들의 연구만 이성적·과학적 역사로 포장합니다. 일부 정치 세력은 여러 이유로 이를 활용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저열하게 군다고 똑같이 맞설 필요는 없습니다. 정치보다 학문적 접근이 필요한 때입니다.

<홍진수 편집장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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