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공녀 연대기, 1931~2011
남화숙 지음·남관숙 옮김·후마니타스·2만원
1931년 5월 29일 평양 평원고무농장 노동자 강주룡은 임금 삭감에 항의해 파업을 주도하다 일제 경찰이 파업 노동자들을 해산시키자 12m 을밀대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인다. ‘체공(滯空)’. 공중에 머물러 있음을 뜻하는 단어가 강주룡이란 이름 앞에 붙은 까닭이다. 2011년 부산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항의하며 영도조선소 내 크레인 위에서 309일간 고공농성을 벌인 김진숙 전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모습과 겹친다. 그사이 1970년대엔 수많은 공장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었다.
한국의 노동사·여성사를 오래 연구해온 저자가 한 세기에 걸쳐 공장 여성 노동자들의 끈질긴 투쟁사를 쓴다. 여성 노동자들을 노동운동의 주체로서 소환한다. ‘온순한 존재’인 여성 공장 노동자들이 전투적 행동에 나서게 되는 것이 그들의 순진함과 무지를 이용한 외부세력의 조정 때문이라는, 바로 그 ‘통념’을 깨려는 시도다. 고정관념에 가려졌던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 서사와 그들의 투쟁이 한국의 근현대사 속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풀어낸다.
영원의 전쟁
벤저민 R. 타이텔바움 지음·김정은 옮김·글항아리·1만9800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이민자를 배척하고 세계화에 등 돌린, 두 지도자 뒤엔 ‘책사’라 불리는 두 사람이 있다. 트럼프 선거 캠프의 스티브 배넌과 러시아의 사상가 알렉산드르 두긴이다. 민족음악·우익운동 연구자인 저자는 두 사람을 인터뷰해 글을 썼다. 그는 민족음악을 연구하다 전통주의자들을 만났고 그들이 우익운동, 제도 권력과도 연결돼 있음을 알아챈다. 저자는 두 사람이 각자의 인생에서 전통주의를 어떻게 체계화했는지, 국가의 영원성을 어떻게 획득하려 했는지 인터뷰에서 끌어낸다. 이들을 아는 것이 현재 미국·러시아, 일부 유럽국의 극우 포퓰리즘의 실체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본다.
몽골제국 연대기
라시드 앗 딘 지음·김호동 옮김·사계절·2만7000원
중앙유라시아 연구 권위자인 김호동 서울대 명예교수가 20년에 걸쳐 번역한 <라시드 앗 딘의 집사>(5권)를 한 권으로 축약했다. <집사>는 13~14세기 몽골제국은 물론 이란, 중국, 유럽의 다양한 사료와 전승을 수집해 쓴, ‘최초의 세계사’로 불린다.
동물의 감정은 왜 중요한가
마크 베코프 지음·김민경 옮김·두시의나무·2만4000원
동물행동학자인 마크 베코프는 동물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감정이 있다고 말한다. 동물의 감정을 이해하도록 돕는 다양한 일화와 연구를 소개한다. 동물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 변화와 책임을 촉구한다. 2007년 나온 초판에 새로운 내용을 더해 전면 개정했다.
판토미나
마거릿 캐번디시 외 지음·민은경, 최유정 옮김·문학동네·1만6000원
17~18세기 영국의 정치적 격변기에 여러 영역에서 활동한 여성 작가 3명의 다섯 작품을 실었다. 연애와 결혼, 정절의 문제, 사회적 관습과의 갈등 등을 다룬다. 여성이 적극적 욕망의 주체로 등장, 기존 로맨스의 문법을 깼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