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성공하면 특고, 실패하면 부당해고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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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고용복지플러스센터를 찾은 한 특수형태근로종사자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상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서울 중구 고용복지플러스센터를 찾은 한 특수형태근로종사자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상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판결을 선고합니다. ‘캡틴’과 골프장은 공동해 망인의 어머니에게 1억6000만원, 망인의 언니에게 1000만원과 각 지연이자를 지급하라. 원고 일부승소입니다.”

2019년 7월에 입사한 27세 골프장 캐디와 ‘캡틴’ 캐디 간에 발생한 일입니다. 연장자이자 경력이 많은 캡틴 캐디는 신입 캐디 A가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입니다. 다른 캐디들도 들을 수 있는 무전으로 공개적·반복적으로 A의 외모를 비하하고 질책했습니다.

“뚱뚱해서 못 뛰는 거 아니잖아. 뛰어.”, “오늘도 진행이 안 되잖아. 오늘도 또 너냐.”

캐디는 캡틴으로부터 질책을 받으면 “네” 또는 “죄송합니다”라고만 대답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추가로 질책 또는 벌칙을 받게 되므로 A가 캡틴에게 항의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A는 또 기숙사에서 룸메이트와 분쟁이 있었고, 캡틴으로부터 방을 옮기라는 지시를 받아 한동안 모텔에서 거주했습니다. 캐디 기숙사에서는 룸메이트 간 분쟁 시 방을 옮기는 사람이 잘못을 저지른 것으로 인식됐습니다.

A는 그 뒤로도 캡틴으로부터 심한 질책을 받았고, 평소 동료들에게 “죽고 싶다”고 했습니다. 캐디 인터넷 카페 게시판에 글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곧바로 글이 삭제되고 카페에서도 탈퇴돼 사실상 골프장에서 일할 수 없게 됐습니다. 카페에서 탈퇴는 사실상 해고를 뜻했습니다. A는 그후 자신의 짐을 찾아가면서 캡틴을 만나 사직원을 제출했고, 며칠 지나지 않아 자살했습니다. “캡틴은 나한테는 유독 심한 사람이었고, 내가 갈 곳 없는 거 알고 더 막 대하는 거로밖에 안 느껴질 정도로 사람을 쥐락펴락해온 사람이야. 평생 그 사람 못 잊을 거야 아마”라는 말을 남긴 채. 2020년 9월이었습니다.

특고도 괴롭힘은 매한가지

골프장 캐디는 한국표준직업분류에 등록된 1206개의 직업 중 하나이고, 고유번호 4만3292번입니다. 캐디는 이른바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입니다. 특고는 쉽게 말해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노동자입니다.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제67조)에는 보험설계사, 학습지 방문 강사, 택배원, 대출모집인, 대리운전사, 방문판매원, 대여 제품 방문점검원, 가전제품 설치 및 수리원, 화물차주, 소프트웨어기술자, 그리고 골프장 캐디가 특고로 정해져 있습니다.

이 사건은 특고직에 직장 내 괴롭힘 규정(근로기준법 제6장의2)이 적용되는가 여부가 문제였습니다. 노동청은 “골프장 캐디로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아니하여 직장 내 괴롭힘 관련 규정을 직접 적용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다만 시정지시는 했습니다).

법원은 달리 판단했습니다. ‘①골프장 캐디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는 아니다. 그렇지만 ②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는 반드시 근로자여야 할 필요는 없다. ③특히 특수고용직은 근로자와 자영인의 중간적 위치에 있는 노무 제공자이고, 직장 내 괴롭힘으로써 불법행위책임을 질 수 있다. ④사업주인 골프장은 골프장 캐디를 보호할 의무가 있어 사용자책임을 부담한다’는 논리를 구성했습니다(1심 고양지원 2022가합70004, 대법원 2024다207558 확정).

괴롭힘으로 인해 자살이 발생한 경우, 가해자로부터 손해배상을 받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특히 근로복지공단이 ‘자살이 업무와 관련이 있다’며 산재로 인정하는 것도 드문 일인데, 여기에 더해 회사가 사용자 책임을 지는 경우는 정말 이례적입니다. 게다가 이 사건은 근로자성 문제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터에서 괴롭힘을 받아 “죽고 싶다”는 고통을 인정받는 데에는 근로자인지 여부가 문제의 본질이 아니었습니다. 이를 간과한 캡틴과 골프장 회사는 거액의 배상 책임이 생겼습니다.

플랫폼 프리랜서를 부당해고 할 수 있나요?

1920년대 미국 재즈 공연에서는 연주자를 그때그때 섭외해 단기 공연을 했는데, 그 공연을 긱(Gig)이라고 했습니다. 그 긱을 따서 디지털 플랫폼에서 초단기 노동을 제공하는 근로자를 긱워커(Gig Worker)라고 합니다. 플랫폼 노동은 프리랜서로서 앱(App)이나 SNS 디지털 플랫폼에서 일자리를 구해 일하는 것입니다.

차량 서비스 ‘플랫폼’ 회사인 타다에서 일하던 드라이버 B는 카톡 단톡방에서 인원 감축을 한다는 공지를 보았습니다. B는 타다의 근로자라며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했습니다. 반면 타다는 B를 프리랜서로 일한 독립 계약자라 주장했습니다.

지노위(정당해고)→중노위(부당해고)→1심(정당해고)→2심(부당해고)으로 가면서 50장에서 100장 가까이 되는 장문의 판결문이 쏟아지고 ‘역대급’ 대혼전이 있었습니다. 결국 대법원이 근로자의 주장을 인정해 부당해고로 결론 내렸습니다. 대법원은 B가 실질적으로 회사의 근로자이고, 타다가 B의 사용자임을 인정했습니다(대법원 2024. 7. 25. 선고 2024두32973 판결). 판결 내용을 조금 쉬운 용어로 바꾸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회사 지시 아래 일했다: B는 회사가 정한 규칙에 따라 운전했습니다. 회사는 B에게 어떤 방식으로 운전해야 하는지, 어떤 복장을 해야 하는지(예를 들어 착용은 지양 바랍니다), 차량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까지 자세히 지시했습니다. 회사는 B의 운전 기록을 앱으로 모니터링했습니다.

②근무시간과 장소를 회사가 정했다: B는 정해진 근무일과 출근시간에 차고지에 도착하고 배차받은 차량에 탑승해 ‘출근하기’ 버튼을 누른 후 운전업무를 수행해야 할 뿐 자신의 근무시간과 장소를 마음대로 정할 수 없었습니다. B는 회사가 앱을 통해 보내는 배차를 받아야만 일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③업무에 대한 선택권이 없었다: B는 회사가 제공한 차량과 도구를 사용해야 했고, 승객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도 없었습니다. 회사가 지정한 ‘응대어’를 필수로 써야 했고, ‘응대어를 제외하고는 먼저 말을 걸지 않음을 원칙으로’ 합니다.

④일한 만큼 돈을 받았다: B는 고정된 월급 대신, 일한 시간에 따라 돈을 받았습니다. 일한 시간만큼 보수를 받았고, 일한 대가로 인정됐습니다. 기본급을 받지 않고 근로소득세도 떼지 않기는 했지만,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일하는 특성 때문일 뿐으로 인정됐습니다. 근로시간이 짧았을 뿐이지, 회사의 일 외에는 다른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⑤회사의 제재와 평가를 받았다: 드라이버 별점과 드라이버 어뷰징(배차를 피하기 위한 수시 조작, 근무지 이탈, 거짓 출근, 조기 퇴근, 배차 취소 유도 어뷰징)을 평가받았습니다. 배차를 거부하거나 평가가 좋지 않으면, 회사는 이를 기록해 불이익을 줄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근로자성 확대 판결에 대해 ⑴‘그동안 확장돼온 플랫폼 경제 생태계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는 반대 의견도 있습니다. ⑵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고 주장해 승소한 경우 근로소득세를 소급 과세해야 한다는 실무례도 존재하기도 합니다. ⑶‘지난달 다른 일로 인해 너무 적게 일하셨나요? 눈치 보지 마세요. 우리는 근로자 혜택을 포기하고 그들이 필요로 해서 채용된 당당한 프리랜서입니다’라고 단톡방에 올린 사람이 다름 아닌 B라는 점을 사측은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대법원판결은 혁신이라 불리던 플랫폼 사업에 대해 근로자성을 확대했습니다. 플랫폼 기업은 앞으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압력에 고용형태를 재검토할 것입니다. 올해 8월이 되자마자 쿠팡은 자회사를 통해 택배 물품 분류 전담 인력 6500여명을 완전 직고용하기로 했습니다.

달리 보면, 노동자 처지에선 프리랜서의 장점(유연한 근무, 다양한 기회, 낮은 보험료와 세금, 수익의 극대화)과 근로자의 장점(고용 안정성과 노동법적 보호, 퇴직금)을 동시에 가져가려는 전략도 슬슬 막을 내릴지도 모릅니다.

<한용현 법률사무소 해내 대표변호사 lawyer_h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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