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늑장 수사에 하늘도 울었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렌즈로 본 세상] 검찰 늑장 수사에 하늘도 울었다

억수같이 내리는 빗속에서도 엄마의 눈물은 섞이지 않고 선명했다. 이내 엄마의 볼에 닿은 빗물과 눈물은 이제 더는 볼 수 없는 아들의 사진 위로 쉴 새 없이 내려앉았다.

고 강보경씨 산재 사망 1주기를 나흘 앞둔 지난 8월 7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1주기 추모 및 검찰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강씨는 지난해 8월 DL이앤씨의 하도급업체 소속 일용직으로 부산 신축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근무하다 작업 중 추락해 사망했다.

먹구름 가득하던 흐린 하늘은 기자회견이 시작되자 천둥 번개와 비를 뿜어냈다. 참석자들은 천둥소리는 하늘에서 외치는 소리이고 쏟아진 소나기는 원통한 눈물 같다고 했다.

이날 강씨의 어머니 이숙련씨와 누나 강지선씨는 강씨의 영정을 들었다. 어머니는 “제사를 앞두고 아들이 좋아하던 파인애플도 사고 체리도 샀다”며 “(과일을) 깎아서 먹여주고 싶은데 냉장고에 넣어두려니 마음이 찌르는 듯 아팠다”고 했다.

부산 연제경찰서와 부산지방고용노동청은 지난 4월 기소의견으로 부산지검에 사건을 송치했지만 검찰은 보강 수사를 지시했다. 이씨는 “도대체 몇십명의 사망자가 채워져야 조사를 할 거냐”며 “검찰은 노동자 목소리를 하찮게 여기지 말라”고 했다.

우산 쓰고 영정을 든 채 기소 촉구서를 전달하러 안으로 들어가던 가족들은 사진과 손팻말은 들어갈 수 없다는 관계자 안내를 받고 잠시 멈춰섰다가 이내 아들의 사진을 내려놓았다. 강씨의 사진 위로 빗방울은 계속 떨어졌다.

<정효진 기자 hoho@kyunghyang.com>

이미지
대한민국 최정예 겁쟁이들
오늘을 생각한다
대한민국 최정예 겁쟁이들
제2차 세계대전 전범의 아들 노다 마사아키가 쓴 <전쟁과 죄책>에는 포로의 목을 베라는 상관의 명령을 거부한 병사의 이야기가 나온다. 일본 관동군 중대장으로 근무했던 도미나가 쇼조의 증언에 따르면 중국 후베이성에서 포로를 베는 ‘담력’ 교육 도중 한 초년 병사가 “불교도로서 할 수 없습니다”라며 명령을 거부했다. 불교도로서 ‘살생하지 말라’는 계율을 지키려 했던 이 병사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홀로코스트 연구자 크리스토퍼 R. 브라우닝이 쓴 <아주 평범한 사람들>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학살 임무를 거부하고 총기를 반납한 나치 대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독일 101예비경찰대대 빌헬름 프라프 대대장은 유대인 학살 임무에 투입되기 직전 병사들에게 “임무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면 앞으로 나오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10명 남짓 병사가 앞으로 나왔고, 그들은 소총을 반납하고 대기했다. 그 병사들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각 부대에서 학살 임무를 거부한 병사와 장교들이 속출했지만, 나치 독일의 가혹했던 군형법은 이들에게 명령불복종죄를 비롯한 어떠한 형사처벌이나 징계도 내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