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기후위기는 공평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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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아나 중서부 열대우림에 있는 카이어투어 폭포 / pixabay

가이아나 중서부 열대우림에 있는 카이어투어 폭포 / pixabay

넷플릭스의 드라마 <수리남>이 나오기 전까지 남미대륙 북동쪽, 브라질 위에 수리남이라는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한국사람이 얼마나 됐을까. 또한 수리남 양옆에 가이아나와 프랑스령 기아나가 3형제처럼 쪼르르 국경을 맞대고 있는 것은 세계지도에서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스페인어를 주로 쓰는 중남미에서 특이하게 가이아나는 영어를, 수리남은 네덜란드어를, 프랑스령 기아나는 프랑스어를 쓴다. 각기 다른 언어만큼이나 이들 세 나라는 15세기부터 시작된 대항해 시대와 제국주의 시대의 흔적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가이아나의 석유는 축복인가 저주인가

조용하고 알려지지 않은 가이아나를 주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탕수수와 쌀농사, 광업이 전부인 가이아나 해안에서 유전이 발견됐다. 2019년부터 원유 생산을 시작했다. 올해 초 원유 생산량이 65만4000배럴로 카타르와 맞먹는 수준이고, 2027년 말이면 130만배럴로 남미에서 브라질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원유생산국으로 올라선다고 전망한다. 열대우림 이외에 특별한 것이 없던 나라가 1인당 석유 매장량 기준 사우디아라비아를 능가하는 세계 1위로 올라섰다. 오일머니가 밀려오면서 국내총생산(GDP)은 급성장 중이다. 2018년 6100달러였던 가이아나의 1인당 GDP는 2022년 1만8000달러로 치솟았다. 가이아나 수도 조지타운은 새 주택과 호텔, 쇼핑몰, 체육관, 사무실이 들어서며 공사판으로 변하고 있다. 2023년 조지타운에 가이아나 첫 번째 스타벅스 매장이 문을 열었다. 개업식에 모하메드 이르판 알리 가이아나 대통령과 주가이아나 미국 대사가 참석해 이목을 끌었다.

‘유전 로또’로 주목을 받은 가이아나는 최근 알리 대통령이 영국 BBC 대담 프로그램 <하드 토크>(HARDtalk)에 출연해 나눈 인터뷰로 또다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BBC 진행자는 가이아나 해저유전 개발을 통해 20억t의 탄소가 배출돼 기후변화 문제에 위협이 된다는 염려를 전했다. 최근 영국 대법원이 석유 시추와 같은 화석 연료 프로젝트를 승인할 때 온실가스 배출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판결하는 등 영국 사회에 고조된 친환경 분위기를 보여주는 질문이었다.

알리 대통령은 발끈했다. 알리 대통령은 “가이아나에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면적을 합친 크기의 숲이 있고, 195억t의 탄소를 저장할 수 있는 걸 아느냐”고 대응했다. 진행자가 “그렇지만 탄소를 배출할 권리가 있느냐”고 되묻자, 알리 대통령은 “당신이 기후변화에 대해 우리를 가르칠 권리가 있느냐”며 격분했다. 선진국들이 가이아나와 같은 ‘후발주자’를 두고 기후변화를 우려하는 것은 위선이라며 분노했다. 선진국들이 산업혁명으로 환경을 파괴해놓고 이제 와서 우리를 가르치려 드냐고 진행자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농도는 산업혁명 이후 급증했고, 그 산업혁명의 열매는 선진국들이 차지했다. 특히 영국은 산업혁명의 본고장이고, 알리 대통령은 그 점을 꼬집은 것이다. 진행자와 거칠게 논쟁한 알리 대통령을 비난할 수 있을까? 열대우림 속에 살고 있으니 가이아나 국민은 유전개발 같은 환경파괴는 하지 말고 농사나 계속 지으며 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산화탄소 배출을 하지 말고 혹독한 환경 속에서 원래 있던 대로 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들도 서구 선진국처럼 삶이 향상되기를 바란다. 산업혁명으로 산업과 경제를 부흥시킨 서구 선진국처럼 가이아나도 유전개발로 자국의 산업과 경제를 발전시키고 싶다. 그들도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며 삶의 질을 높이고 싶은 욕구가 있다. 이 거친 논쟁은 숨어있던 기후위기의 불평등과 모순점을 수면 위로 드러냈다.

기후 불평등

세계 곳곳에서 폭염, 폭우, 폭설, 태풍, 가뭄, 홍수, 한파, 대형 화재 등과 같은 이상기후가 일상화되고 있다. 기후변화가 주요 원인인 이러한 현상은 인류 모두의 생존을 위협한다. 하지만 기후변화의 원인과 영향이 모든 국가의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부자나라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고 기후재난에 대응할 경제적 능력이 있어 피해를 덜 받지만, 기후변화의 책임이 없거나 적은 가난한 나라는 오히려 너무나 큰 피해를 받는다. 예를 들어 방글라데시의 인구는 미국 인구의 절반이지만 1인당 탄소 기여도는 미국의 4% 미만이고 1인당 소득은 미국의 3% 미만이다. 지난 5월 인도양 북동부 벵골만에서만 발생한 사이클론으로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를 비롯한 많은 지역이 물에 잠겼고, 약 300만명에게 전기공급이 중단됐다. 이 과정에서 익사, 감전사 등으로 최소 17명이 목숨을 잃었다. 게다가 저지대에 위치한 방글라데시는 해수면 상승의 타격이 크다. 2050년이면 방글라데시인 1800만명이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 방글라데시인들은 자신들이 배출하지 않은 온실가스로 기후재난에 직격탄을 맞고 있다.

기후위기는 국가 간의 불평등뿐만 아니라 국가 내 부자와 가난한 자에게도 적용된다. 세계 불평등연구소의 ‘기후 불평등보고서 2023’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2019년 소득 상위 10% 그룹은 70.3t, 하위 50%는 10.5t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했다. 1인당 탄소배출량은 소득 상위 10% 그룹이 하위 50% 그룹보다 7배 많다. 중국의 경우 이 격차가 13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소수의 부자가 다수의 가난한 사람보다 훨씬 많은 탄소를 배출하지만, 기후위기의 피해는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이 받는다. 가난한 사람들은 가정에 비축된 자원이 적어 자연재해가 식량, 물, 건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또한 가난한 지역은 상하수도와 홍수 관리 등 도시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열악한 경우가 많고, 해발고도가 낮은 저지대에 있다. 2022년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서울에서 반지하 주택에 살던 발달장애인 가족이 참변을 당한 것은 단적인 예다.

기후위기는 개인 간의 차이를 넘어 세대 간에도 불평등을 초래한다. 온실가스는 배출 후 바로 사라지지 않고 수백 년 동안 대기 중에 누적되는데, 미래세대는 자기들이 배출하지 않은 온실가스의 피해를 보는 것이다. 2021년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게재된 ‘극한 기후 노출로 인한 세대 간 불평등에 관한 연구’는 2021년생이 60년 전에 태어난 사람들보다 7배 더 많은 폭염, 2배 더 많은 산불 등을 마주할 것으로 전망했다. 더구나 미래세대는 기후위기 대응의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없다. 현재 의사결정자의 무책임이 미래 위험을 발생시키는데도 말이다.

기후위기 책임을 인류 전체의 책임이라고 ‘퉁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마치 선진국, 부자 그리고 현세대가 비싼 음식을 잔뜩 먹고 난 후 음식을 먹어보지도 못한 가난한 나라, 가난한 자, 사회적 약자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음식값을 같이 내자고 하는 것과 같다. 기후변화의 비용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는 중요하다. 남에게 피해를 주면 사과하고 비용을 보상하는 것이 공정이다.

<정봉석 JBS 수환경 R&C 대표·부산대학교 환경공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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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정예 겁쟁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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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전범의 아들 노다 마사아키가 쓴 <전쟁과 죄책>에는 포로의 목을 베라는 상관의 명령을 거부한 병사의 이야기가 나온다. 일본 관동군 중대장으로 근무했던 도미나가 쇼조의 증언에 따르면 중국 후베이성에서 포로를 베는 ‘담력’ 교육 도중 한 초년 병사가 “불교도로서 할 수 없습니다”라며 명령을 거부했다. 불교도로서 ‘살생하지 말라’는 계율을 지키려 했던 이 병사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홀로코스트 연구자 크리스토퍼 R. 브라우닝이 쓴 <아주 평범한 사람들>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학살 임무를 거부하고 총기를 반납한 나치 대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독일 101예비경찰대대 빌헬름 프라프 대대장은 유대인 학살 임무에 투입되기 직전 병사들에게 “임무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면 앞으로 나오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10명 남짓 병사가 앞으로 나왔고, 그들은 소총을 반납하고 대기했다. 그 병사들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각 부대에서 학살 임무를 거부한 병사와 장교들이 속출했지만, 나치 독일의 가혹했던 군형법은 이들에게 명령불복종죄를 비롯한 어떠한 형사처벌이나 징계도 내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