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승태 작가의 <퀴닝>을 뒤늦게 읽었습니다. <퀴닝>은 한 작가가 2013년 1월에 냈던 <인간의 조건> 개정판입니다. 지난 6월 개정판을 내면서 제목도 <퀴닝>이란 생소한 단어로 바꿨습니다.
‘퀴닝’은 서양 장기인 체스에서 쓰는 규칙이라고 합니다. 장기로 치면 졸에 해당하는 폰이 죽지 않고 상대 진영 끝에 도달하면 잡힌 말 가운데 어떤 말로도 변신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이 가장 강력한 말인 여왕(퀸)을 선택하기에 ‘퀴닝’이라고 합니다. 일종의 계층 상승인 셈입니다.
한 작가는 <퀴닝>에서 꽃게잡이 배와 편의점·주유소, 돼지농장, 비닐하우스 농가, 자동차 부품 공장 등 이른바 ‘밑바닥 노동’ 경험담을 풀어냅니다. 그리고 말미에 ‘희망의 부재로 인한 두려움’을 이야기합니다. 책 전체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라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왜냐하면 다수의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은 의지의 결핍이 아니라 희망의 결핍이기 때문이다. 노력한 만큼 삶이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 말이다. 우리는 그런 희망을 체스 게임에서 감지할 수 있다. 체스의 졸은 한 번에 한 칸씩 전진하는 것밖에 못 하는 가장 약한 말이지만, 그런 졸이라 해도 상대편 진영 끝에 도달하면 여왕으로도 변신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이 남의 돈을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이 세상에선, 졸이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평생 졸로 머무르는 게 아닐까 생각하면 나는 조금 두려워진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대졸 이상(전문대 포함) 학력을 가진 비경제활동인구는 월평균 405만8000명입니다. 전체 비경제활동인구의 4분의 1쯤 됩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만2000명 늘었습니다. 비경제활동인구는 일을 할 능력이 없거나 일을 할 의사가 없어 더 이상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구직시장을 떠난 사유는 다양한데, 이중에는 ‘그냥 쉰다’도 들어가 있습니다. 그냥 쉬는 이유에는 ‘희망이 없다’도 포함돼 있지 않을까 짐작해 봅니다.
<퀴닝>을 읽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지난 7월 진행된 이숙연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이르렀습니다. 이 후보자의 딸과 아들은 부모의 도움을 받아 어릴 때부터 ‘재테크’에 성공했습니다. 이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이것을 편법 증여나 이렇게 폄훼한다면 자녀들에게 주식을 사서 주는 부모들 마음은 다 비난받아야 하는지 묻고 싶다. 요즘은 백일 때 금반지를 안 사주고 주식을 사준다”고 했습니다.
청년들, 다른 말로 이 시대 ‘졸’들의 꿈과 희망은 이런 무책임한 말 때문에 또 줄어듭니다.
<홍진수 편집장 soo43@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