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 코리아 디스카운트 바꾸는 시작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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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준범 와이즈포레스트 대표 인터뷰

상법에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면 무엇이 달라질까.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논의하는 민간단체인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천준범 부회장(47)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시대를 바꾸는 시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형 로펌과 기업을 오가며 인수합병이나 경영권 분쟁 같은 정통 기업법부터 공정거래법 등과 관련된 소송을 주로 담당했다. 당시 경험을 바탕으로 <법은 어떻게 부자의 무기가 되는가> 등의 책을 펴낸 변호사이자 경영자문을 해주는 와이즈포레스트 대표이기도 하다. 주간경향은 지난 7월 30일 강남 사무실에서 천 대표를 만나 상법 개정의 의미를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천준범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이 지난 7월 30일 서울 강남구 아셈타워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천준범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이 지난 7월 30일 서울 강남구 아셈타워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최근 기업들이 대주주에게 유리한 구조개편을 하면서 일반 주주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기업 활동을 하면서 돈을 더 많이 벌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다. ‘합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데 안 할 이유가 없다. 사회적 비난을 잠깐 감수하면 내 돈 한 푼 안 들이고도 수조원에 달하는 경제적 이익을 취할 수 있다. 한도 없는 회사의 복지카드를 받은 직원과 20만원 한도가 있는 복지카드를 받은 직원의 행동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한 개인이나, 기업의 ‘도덕성’을 비난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 (대주주가) 사익을 취해도 된다고 허용한 법의 잘못된 구조를 직시해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제대로 일을 하도록 하는데 에너지가 모였으면 한다.”

-기업 간 합병 비율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자본시장법 시행령을 고쳐 합병 비율에 대한 평가 기준을 바꾼다고 해도, 상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대주주에게 유리한 수십 가지의 옵션이 생겨난다.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주식으로 돈을 벌거나 지배력을 높일 방법은 셀 수 없이 많다. 또 주주 사이의 거래인 합병에선 비율에 따라 주주 간 유불리가 갈려, 이사가 총주주를 위해 행동해야 한다는 원칙을 넣어야 주주의 재산권을 지킬 수 있다. 이사가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총주주의 이익과 회사를 위해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도록 강제하지 않는 한, (이사는) 일반 주주에게 불리해도 (자신을 뽑아준) 지배 주주에 유리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아울러 선진국 중 이사회가 주주에 대한 의무를 갖지 않은 나라는 거의 없다. 한국이 밸류업을 위해 벤치마킹한 일본도 이사회가 주주에 대한 이익을 위해 책임을 지도록 명시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 중인 밸류업에 대한 중간평가를 해달라.

“세제 개편 같은 지엽적인 대책보다 중장기적인 계획이 있었으면 좋겠다. 중장기적인 계획이 정확히 나와야 정부에 대한 신뢰가 생길 것 같다. 일반 주주들이 가장 바라던 금투세는 폐지를 못하고 재계가 원하는 상속세부터 인하했는데, 순서가 바뀐 것 같다. 일반 주주 권리 보호가 먼저 돼야 하는 데 가장 중요한 건 하지 못하고 연관성이 낮은 부분부터 개선에 나서는 것 같다. 정부 처지에서 생각하면, 전면 리모델링에 나서기 전 벽지 교체 등 작은 부분부터 시도하고 있는 것 같다.”

-일하면서 만난 외국 투자자들의 한국 시장 평가는 어떤가. 기업거버넌스포럼이 지난 7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에서 개최한 두산밥캣 합병 세미나에서 미국계 펀드 테톤캐피탈의 션 브라운 이사는 ‘한국 시장에서는 이런 날강도 같은 짓도 생길 수 있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해 화제가 됐다.

“한국은 정책의 지속가능성이 없는, 언제든 뒤통수를 맞을 수 있는 나라라고 얘기한다. 그러다 보니 장기 투자를 하는 펀드는 대부분 빠져나가고, 워낙 주가가 저평가돼 있다 보니 단기 투자를 하는 이들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제3자인 외국인이 보기에는 중국 공산당과 한국의 대주주가 큰 차이가 없다. 불투명하고 원칙이 없어 불확실성이 높은 시장이다. 그러다 보니 엔화가 낮아진 것과 맞물리면서 일본으로 외인이 대거 들어갔다.”

“상법 개정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만병을 막을 수 있는 기본이 된다. 상법 개정 없이는 어떤 법을 만들어도 해결이 안 된다. 반드시 빠져나갈 구멍이 생긴다. 그걸 사전에 막자는 거다.”

-상법이 개정되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라지나.

“우선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 한국 기업들이 사업을 못하는 것이라 오해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건 아니다. 한국 기업이 사업은 잘하는데 주주들한테 잘못하기 때문에 주식이 싸게 거래되는 거다. 지금은 지배 주주와 이사회가 한팀으로 움직인다. 회사에 이익인지 손해인지 모르면 지배 주주에게 이익이 가도록 결정한 것이 이사회에서 통과된다. 미국은 그런 거래를 하려면 이 거래가 공평하고 절차적으로 실질적인 조건으로 공정하다는 걸 이사회가 증명해야 한다. (일반 주주의 손해로) 지배 주주에게 과도한 이익이 취해지는 거래가 법으로 어렵게 되면 사업에 재투자해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 또 주주 환원으로 배당이 늘고 장기적으로는 주가 상승의 원동력이 된다.”

-재계에서는 인수합병(M&A) 추진 등 경영에 혼란을 줄 것이라고 우려한다.

“만약에 지배 주주가 합병하려는 회사의 지분이 있거나 이해관계가 있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일반적인 인수합병은 아무 상관이 없다. 지배 주주하고 일반 주주가 이해관계가 다른 경우에만 이사에게 충실 의무 이슈가 생긴다. 인수합병이 성공하면 지배 주주와 일반 주주 다 좋고 실패하면 둘 다 망하는 거다. 이런 경우는 이해관계가 같아 충실 의무 사안이 아니다. 소송 분쟁 증가 우려도 기우다. 증권 관련 집단소송법 제정 후 20년이 지났지만 집단소송은 12건에 불과하다.”

-재계에서는 상법 개정 시 부담을 느낀 기업이 상장하지 않아 활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상장은 기업들이(회사 이익을 위해) 이자를 내지 않으면서 투자를 받기 위해 하는 거다. 상장해 달라고 기다리는 일반 주주는 없다(웃음). 실제로 기업 자문이나 CEO 교육을 하러 가면 상장 후 투자받은 돈을 언제든 내줄 수 있는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퍼블릭 시장에 상장해 투자를 받았다면 목적이 제각각인 다수의 투자자와 소통하고, 주가 상승과 배당으로 돌려줄 책임과 의무가 있다.”

-반발이 거센 상법 개정 외에 현행법을 천천히 바꿔나가는 방법은 없나.

“법은 작은 시행령 하나라도 바꾸고 만드는 데 큰 노력과 시간이 들어간다. 그 사이에 대주주의 이익을 늘릴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 계속 나오고, 법은 또 뒤늦게 규제에 나설 거다. 이왕 바꾸는 거 기본법을 개정해 수많은 사례에 적용될 수 있는 일반법으로 만들자는 거다. 상법 개정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만병을 막을 수 있는 기본이 된다. 상법 개정 없이는 어떤 법을 만들어도 해결이 안 된다. 반드시 빠져나갈 구멍이 생긴다. 그걸 사전에 막자는 거다. 규제에 실패한 법의 구멍을 막기 위해 총주주에 대한 충실의무가 도입되면 코리아 디스카운드 시대를 바꾸는 첫 시작점이 될 것이다.”

<김은성 기자 k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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