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가 죽으면 누구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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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9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 항공편 안내 기기 모니터에 뜬 ‘블루 스크린’ / AP연합뉴스

지난 7월 19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 항공편 안내 기기 모니터에 뜬 ‘블루 스크린’ / AP연합뉴스

컴퓨터 사용자라면 누구나 몇 번쯤은 컴퓨터가 먹통이 돼서 곤란한 일을 겪는다. 그렇게 작업을 날리던 이가 많으니 오죽하면 ‘Ctrl-S’ 단축키를 수시로 누르는 건 몸이 외우고 있어야 한다는 잠언이 전래할 정도다. 하지만 포토샵이나 워드와 같은 애플리케이션은 그렇게 종종 뻗어서 사용자를 속상하게 해도 운영체제는 좀처럼 죽지 않는다. 응용프로그램이 아무리 말썽을 부려도 굳건히 버텨주도록 설계되고, 그렇게 수십 년간 업그레이드로 단련돼서다.

아니 최근 전 세계적으로 벌어진 블루스크린 대소동을 두고 무슨 말이냐는 생각이 들 것이다. 윈도는 죽을 때 블루스크린을 비명처럼 내뱉는다. 운영체제로서 나름 어떤 말썽에도 버티도록 노력해왔으나 이제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뜻이다.

‘MS발 전산 대란’이라고 불려버린 이 사건은 전 세계의 수많은 윈도 컴퓨터를 블루스크린으로 마비시켰다. 그러나 사실 블루스크린은 마이크로소프트로서는 억울한 일이다. 블루스크린의 모든 원인을 분석해 보면 70%는 제3자가 작성한 드라이버 코드, 10%는 하드웨어 문제 그리고 15%가 분석할 흔적이 제대로 남지 않은 경우였다. 실제 마이크로소프트 코드의 문제는 5%에 불과했다.

운영체제는 응용프로그램을 위해 CPU(중앙처리장치)나 메모리와 같은 하드웨어를 대신 조작해준다. 하지만 그 수많은 종류의 하드웨어가 지닌 다양성의 폭을 운영체제를 만드는 이가 홀로 도맡을 수 없기에, 하드웨어마다 드라이버라는 특수한 소프트웨어를 만들도록 의뢰하고 이들에게는 운영체제의 은밀한 부분과 소통할 수 있는 특권을 허락한다. 문제는 드라이버도 소프트웨어라 완벽하게 만들어지지 못한다는 점이고, 그렇게 운영체제의 은밀한 부분도 건드릴 줄 아는 드라이버는 죽을 때 운영체제의 발목을 잡고 가라앉는다.

운영체제의 은밀한 부분과의 소통을 허락받은 드라이버란 존재는 이처럼 위험천만하거늘 하드웨어 이외에도 허락될 때가 있다. 바로 보안업체들이다. 운영체제를 지키기 위해서는 운영체제가 보고 겪는 걸 함께 봐야 해서다. 안전의 외주화에는 으레 위험이 따른다. 이번 대란은 ‘크라우드스트라이크’라는 보안업체가 갱신한 드라이버 업데이트에 버그가 있어서 벌어진 일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억울함에 자신들 탓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을 열어주고 뒤엉켜 의존한 채 공생할 수밖에 없는 거대 플랫폼이기에 겪는 답답한 누명이 없을 리 없다.

보안업체발 블루스크린 대란이 70%짜리 억울함에 해당하는 것이었다면 이 사건이 수습되자 10%에 해당하는 뉴스도 들리기 시작했다. 인텔의 13세대, 14세대 최신 CPU 사용자들이 블루스크린을 포함한 오류를 겪기 시작한 것. 블루스크린은 그나마 다잉 메시지라도 내뱉지만, 갑자기 푹 꺼진다거나 리부팅이 돼버리니 난감한 일이었다. 그 원인은 과전압이 CPU로 흘러 들어가 칩이 손상되는 오류였다. 인텔은 이러한 손상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긴급 패치를 올해 8월에 배포하기로 했다. 컴퓨터와 그 부품의 종류만큼이나 바람 잘 날 없다.

70%의 드라이버 문제도, 10%의 하드웨어 문제도 어디까지 남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 그 모든 걸 알고도 사용자와 가장 가까운 곳에 서기로 했고, 그 대가로 대중적 인기를 취해왔던 길. 그 업보일지도 모른다. 6000편 이상의 항공편이 취소되고 수십만명의 발이 묶여 미국 교통부의 조사까지 받게 된 델타항공은 보안업체 크라우드스트라이크는 물론 마이크로소프트에도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시작했다.

<김국현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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