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온라인에서 관계의 지경을 넓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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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plash, John Schnobrich

ⓒUnsplash, John Schnobrich

2001년 여름, 고도원 당시 청와대 연설비서관이 내게 물었다.

“책에서 읽은 글귀에 내 생각과 느낌을 붙여 사람들에게 e메일을 보내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e메일 받는 사람은 돈을 얼마나 내야 하죠?”

“돈은 받지 않을 생각입니다.”

나는 그런 일을 왜 하려고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즈음 영상 메시지를 촬영하는 자리에서 고 비서관이 김대중 대통령께 e메일 보내는 일을 하려 한다고 보고하자, 대통령은 ‘잘해보라’며 따뜻하게 격려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는 이렇게 시작했다. 그로부터 23년이 흐른 지금 아침편지 독자는 400만명을 넘어섰다. 돈은 받지 않았지만, 400만명과의 관계가 만들어졌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에는 ‘노사모’로 대표되는 네티즌의 역할이 컸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이 돼서도 인터넷으로 국민과 소통하는 걸 즐겼다. 취임 후 가장 먼저 회견한 언론도 인터넷 매체였고, ‘국민께 드리는 글’을 직접 써서 수시로 인터넷에 올렸을 뿐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국민과 대화했다. 청와대에도 ‘이지원’이란 온라인 시스템을 구축해 공직자들과 직접 소통했다. 오프라인에서는 불가능하던 많은 관계와 만남이 온라인에서 이루어졌다.

2013년 초, 나도 페이스북을 시작하며 온라인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나이 쉰 살에 출판사 사원으로 들어갔을 당시, 회사 대표가 ‘편집자 생활하려면 페이스북을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처음에는 ‘지하철 단상’이란 제목으로 출퇴근길에 겪은 일화와 상념을 올렸지만, 관심조차 끌지 못했다. 아내에게 구박받는 얘기로 테마를 바꿨다. 술로 인사불성이 된 다음 날 아침, 아내 호통을 피해 급하게 집을 나섰다가 짝짝이 신발을 신고 출근한 사건 등 소재는 무궁무진했다. 반응이 뜨거웠다. 금세 친구 5000명이 훌쩍 넘었다.

2014년 첫 책 <대통령의 글쓰기>를 냈을 때, 페이스북 친구들의 성원이 결정적으로 도움이 됐다. 책을 사줬을 뿐 아니라 페북을 통해 열렬히 홍보해줬다. 페이스북이 시들해질 무렵 나는 다시 블로그에 뛰어들었다. 블로그 이웃 역시 나의 든든한 응원군이 돼주었다.

온라인 관계의 가능성 일찍 보고 배워

직장을 그만두면서 오프라인 관계는 더 이상 확장이 어려웠다. 하지만 더 살아가야 했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관계가 필요했다. 직장에서는 좁고 깊은 관계 위주로 생활하지만, 직장을 나와 여러 활동을 하려니 얇고 넓은 관계가 필요했다. 그 필요한 관계가 온라인에 있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매개로 관계를 형성하고 강화해 나가는 온라인 플랫폼이다. 내가 발 담그고 있는 SNS는 한 손으로 다 꼽기 어려울 만큼 여럿이다. 나는 온라인에서 나를 알리고, 기고와 강의 요청을 온라인을 통해 받는다. 내 책을 사고 강의를 듣는 대다수는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온라인 관계 덕분에 먹고산다. 나는 이런 가능성을 일찌감치 보고 배웠다. ‘고도원의 아침편지’와 노무현 대통령의 인터넷 정치를 보면서 말이다.

나는 낯을 가린다. 따라서 나를 알아보는 이가 있을까봐 단골집도 따로 만들지 않는다. 어디를 가든 그저 무심한 듯 놔두는 게 좋다. 이런 내게 온라인 공간은 관계하되 관계하지 않는, 편한 관계를 선사한다. 나는 이런 온라인 공간에서 누구의 시선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를 만끽한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과도한 관계 중독 상태에 있었다. 늘 관계에 연연하며 살았다. 이런 관계의 독(毒)을 온라인을 통해 디톡스할 수 있었다. 온라인은 자칫 너무 가까워서 상처받고, 너무 멀어져서 외로운 사람들에게 탈출구 역할을 한다. 온라인 관계는 리셋이 어렵지 않다. 관계가 부담스럽거나 싫으면 언제든 헤어지고 떠날 수 있다. 조용히 친구 관계를 끊거나 단체방을 나가면 되는 것이다.

어디 이뿐인가. 온라인 관계는 오프라인에 비해 더 수평적이고 덜 일방적이다. 나이나 직업, 경제적 수준 차이로 인해 차별받는다는 느낌이 오프라인보다 훨씬 덜하다. 시공간적 제약에서도 벗어날 수 있어 보다 폭넓고 새로운 관계 형성이 가능하다. 관계에 목마른 사람이 있다면 누구나 그 갈증을 해소할 수 있다. 산술적으로는 무한 확장도 가능하다. 비용도 들지 않는다. 감정 소모도 적다. 각종 정보를 무료로, 빠르게 받아볼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가성비 최고다.

그렇다고 나는 온라인 관계 예찬론자는 아니다. 온라인 관계는 드리워진 그늘도 짙다. 무엇보다 ‘일회용 관계’, ‘티슈 인맥’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만큼 관계가 깊지 않다. 직접 만나 눈빛과 체온을 나누는 오프라인에 비해 빈도는 높되 강도가 현저히 낮다. 정작 관계를 맺지만 특별한 교류 없이 지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온라인에서는 마음속 고민까지 털어놓기가 쉽지 않다. 24시간 연결 상태에 있지만 여전히 외롭다. 군중 속의 고독이다. 잠시라도 타인과 연결되지 않으면 도리어 불안감을 느낀다. 외로움을 견디는 힘이 더 약해졌다.

생길 수 있는 문제들 하나씩 풀어가야

온라인 관계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영국의 진화심리학자 던바 교수에 따르면 개인이 유의미하게 유지할 수 있는 관계는 150명 안팎이라고 한다. 그런 점에서 구체적인 교류가 없는 온라인 관계는 무의미할 뿐 아니라 도리어 피로감을 줄 수 있다. 피로감을 주는 대표적 예는 남과의 비교다. 온라인에서의 모습은 실제보다 과장되고 치장된다. 그러므로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은 퇴고를 거듭한 남의 글과 나의 초고를 비교하는 것과 같다. 결과적으로 시기나 열등감을 낳게 된다.

이 밖에도 과도한 온라인 관계로 인해 친밀해야 할 가족관계가 손상되기도 하고, 온라인 플랫폼의 알고리즘으로 인해 비슷한 성향의 사람끼리만 모이는 ‘필터버블 현상’도 야기하고 있다. 디지털 문맹자의 소외와 소통 능력 저하 문제도 있다. 특히 온라인을 통한 만남이 폭력과 범죄로 이어지고, 개인정보 유출, 악성 댓글과 거짓 소문 유포 등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일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그럼에도 이제 온라인 관계를 벗어나서는 살 수 없는 세상이 됐다. 갈수록 오프라인 관계는 축소되고, 그 빈자리를 온라인 관계로 채워갈 수밖에 없다. 관계를 맺는 세 가지 방식, 직접 만남과 전화 통화, 메신저나 SNS를 통한 접촉 가운데, 향후 소통방식은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젊은 세대는 회식과 같은 직접 만남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전화 통화에 대한 거부감은 더 크다. ‘콜 포비아(call phobia)’란 용어가 생길 만큼 전화 통화를 두려워하기까지 한다. 남은 건 메신저나 SNS를 통한 온라인 관계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가는 것이다.

2014년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영화 <그녀(Her)>. 극 중에서 대필 작가인 남자 주인공 ‘테오도르’는 아내와의 관계에 염증을 느껴 결국 이혼하고, 자기 말을 잘 들어주는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를 영화적 상상력으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이런 가상현실이 조만간 현실이 됐을 때 우리의 관계는 어떠해야 할까. 온라인을 넘어 언젠가 가상현실이 가져올 새로운 사회적 네트워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적응해가야 하는지 고민하는 일까지 우리의 과제가 됐다.

<강원국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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