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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성의 날인 지난 3월 8일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제39회 한국여성대회의 참가자가 장미꽃을 들고 있다. 장미꽃은 참정권을 의미하며, 세계 여성의 날을 상징한다. 정효진 기자

세계 여성의 날인 지난 3월 8일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제39회 한국여성대회의 참가자가 장미꽃을 들고 있다. 장미꽃은 참정권을 의미하며, 세계 여성의 날을 상징한다. 정효진 기자

유튜버 쯔양의 교제폭력 피해를 빌미로 공갈을 일삼은 혐의를 받는 사이버 레커(온라인의 부정적 이슈에 관한 영상을 제작해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이 화제에 오른 것은 역시 사이버 레커인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 때문이다. 가세연은 유튜브 방송에서 해당 유튜버들 간의 녹취록을 공개하며 의혹을 나열했다. 당사자인 쯔양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일방적 ‘폭로’였다. 쯔양은 애초 피해 사실을 공개할 생각이 없었지만, 가세연을 통해 사건이 공개되면서 오해나 억측을 방지하려 피해에 대해 말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처럼 사이버 레커들의 방송은 당사자의 동의를 거치지 않은 경우가 상당하다. 지난 6월 1일 ‘밀양 성폭력 사건’ 가해자들의 신상을 공개한 유튜버도 마찬가지다. 유튜버 나락보관소는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의 동의를 구했다고 주장했지만, 피해자를 지원해온 한국성폭력상담소는 “피해자들의 의사와 전혀 상관없이 벌어진 일”이라고 비판했다. 나 역시 사이버 레커의 표적이 된 적 있다. 그들은 사실관계 확인 없이 허위 정보를 사실인 양 방송했다.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당사자를 멋대로 재단하며 명예를 훼손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일련의 사건에서 당사자의 침해된 ‘권리’를 가늠해본다. 스스로 택한 방식대로 사건에 대응하며 회복해가고 있었을 누군가의 모습이 그려진다. 원하는 때에, 자신의 언어로 말할 당사자의 권리는 사이버 레커와 2차 가해자들의 폭력과 유튜브, 관리 당국의 방관으로 흔들린다. 사이버 레커들은 ‘가해자 응징’ 등을 내세우곤 하지만, 실상은 조회수, 후원금 등 이익만을 계산해 움직인다. 정보가 자극적일수록 높은 조회수로 이어지고 수퍼챗 등 후원금이 불어난다. ‘아니면 말고’식 폭로를 이어가는 이유다. 사건의 당사자는 사이버 레커들에게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이번 사태의 반향이 커지자 이원석 검찰총장은 논란이 된 사이버 레커에 대한 구속수사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범죄수익을 철저히 환수하라고 지시했다. 유튜브는 해당 유튜버들에 대해 수익화 중지 조치를 했다. 모두 이례적인 일이다.

유튜브는 그간 사이버 레커들이 유통하는 명예훼손 및 허위 정보에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고 방치해왔다. 오히려 이들이 벌어들이는 수익을 빨아들이며 한국에서 몸집을 키웠다. 관리·감독의 주체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유튜브가 해외 기업이란 이유로 소극적으로 일관했다. 사이버 명예훼손 혐의자들은 재판에 넘겨져도 벌금형이나 집행유예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벌금보다 방송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더 많으니 브레이크를 밟을 줄 모른다.

법·제도의 공백을 메워야 할 정치권은 소극적이다. 거대 양당 모두 ‘정치 유튜버’ 등으로 불리는 이들과 접촉면을 넓히며 관계를 심화하고 있다. 사이버 레커로 분류될 수 있는 유튜버도 예외는 아니다. 기성 매체는 자신들에게 ‘비판적’이니, 이야기를 ‘들어주는’ 유튜버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유튜버에 대한 정치권의 이런 시선은 사이버 레커들이 커진 영향력에 비해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 현실과 무관치 않다. 사이버 레커의 폐해를 돌아보고 유튜브 생태계를 관리·감독하기 위한 법·제도를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이른바 ‘렉카(레커) 연합’ 사태에서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몇몇 유튜버만이 아니라 평범해져 버린 불행들이다.

<박하얀 기자 whit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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