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진 평생 이동권 대책, 화살은 노인을 향한다
고령 운전이 또 도마 위에 올랐다. 잇단 사고 때문이다. 지난 7월 1일에는 서울 시청역 인근에서 보행자 9명이 사망하고 7명이 다치는 자동차 역주행 사고가 발생했다. 운전자는 68세였다. 같은 달 3일에는 서울 국립중앙의료원 앞에서, 6일에는 서울역 인근 인도에서, 7일에는 서울 용산구 이촌동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운전자는 모두 70~80대였다. 확산한 불안감은 고령 운전에 정부가 개입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로 옮겨가고 있다.
한국이 고령화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율 7% 이상)로 진입한 2000년 이래 고령 운전자에 대한 면허 제한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잊을 만하면 대두됐다. 시민 안전과 고령자의 이동권이 대립했고, 때로는 노인 차별 논란으로도 번졌다.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 증가 통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도 하나의 논쟁거리였다. 고령자가 증가하니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 건수도 자연 증가했다는 주장부터 나이를 먹는다고 곧바로 운전능력이 하락하는 건 아니라는 주장까지 다양한 분석이 나왔다.
이 분야를 오래 들여다본 연구자들에게 각 주장의 타당성을 물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고령화 추세를 고려해도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가 통계상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도 사실이고, 운전능력 하락이 고령층에서 동일하게 나타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즉 고령층 운전이 사고 위험은 다소 크게 나타나지만, 같은 연령대라도 운전능력은 사람마다 차이를 보인다는 얘기다. 연구자들은 나이를 기준 삼은 일률적인 면허 제한에는 하나같이 반대했다. 대신 면허 갱신 절차의 강화, 차량에 각종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봤다.
교통사고 통계, 나이가 설명해주는 건 일부
실제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는 늘고 있다. 도로교통공단의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을 보면 전체 교통사고가 2019년 22만9600건에서 지난해 19만8300건으로 13.6% 감소하는 사이 65세 이상 운전자가 일으킨 교통사고는 3만3200건에서 3만9600건으로 19.2% 증가했다.
급속한 고령화로 고령인구가 증가해 나타난 통계 착시일까. 65세 이상 면허소지자 수는 2019년 330만명에서 지난해 470만명으로 매년 30만명가량씩 늘어난 게 사실이다. 정교한 방식은 아니지만 연령대별 사고 건수를 각 연령층의 면허소지자 수로 나눠 사고 비율을 계산해봤다. 이 경우에도 65세 이상의 사고 비율은 높게 나타났다. 2019년부터 5년간 연령대별 면허소지자 대비 사고 비율을 구했을 때, 사고를 일으킨 비율이 가장 낮은 연령층은 31~40세와 41~50세 연령층이었다. 사고 비율이 가장 높은 연령대는 면허소지자 수가 다른 연령대에 비해 현저히 적은 20세 이하였고, 그다음이 65세 이상이었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이런 통계가 고령자에 대한 면허 제한이 필요하다는 주장의 논거가 되지는 못한다고 본다. 교통사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연령 외의 변수들이 존재하고 고령 운전자의 사고 발생 비율도 심각한 수준은 아니기 때문이다. 손호성 중앙대학교 공공인재학부 부교수는 지난해 말 한국노인인력개발원 간행물 ‘고령사회의 삶과 일’에 게재한 ‘운전자가 고령일수록 교통사고를 더 일으킬까? Data에 기반한 판단의 중요성’에서 나이가 많을수록 교통사고 발생 비율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손 교수는 면허의 종류, 성별, 면허 발급지역 등의 변수를 통제한 상태에서 연령별 교통사고 발생 비율을 분석했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통안전·공학 연구실의 한상진 교수는 “고령 운전자가 사망이나 중상을 유발하는 교통사고를 더 많이 일으키는 경향은 있지만, 그와 비슷한 경향은 청년층에서도 나타난다. 통계적 경향성은 있지만 모든 고령 운전자를 고위험군으로 보고 정책 개입에 나설 만한 수준은 아니다”라고 했다.
동일한 연령대라도 사람마다 운전능력에서 차이를 보인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2019년 연구 ‘운전자 연령에 따른 운전능력 분석(정미경 ·정민예)’은 고령 운전자 운전능력 평가시스템을 통해 연령이 각기 다른 운전자 580명의 운전능력을 분석했는데, 연령이 증가할수록 평균 반응시간도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눈여겨볼 점은 60세부터는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평균 반응시간의 개인별 편차가 크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더구나 고령층의 이동권을 제한하면 사회가 얻을 것보다 잃을 것이 많다. 고령층이 운전을 중단하면 사회활동의 감소로 우울감이 증가하고 신체건강도 저하된다는 해외 연구 결과도 있다.
정미경 도로교통공단 책임연구원은 “운전 재활 등을 담당하는 작업치료학 전문가들도 연령이 증가할수록 신체기능과 인지기능에서 개인차가 심화된다고 본다. 해외 사례를 봐도 연령에 기반해 일률적으로 면허를 제한하는 국가는 거의 없다”고 했다.
개개인 운전능력 적기에 평가해야
대안은 고령 운전자 개개인의 운전능력 저하를 적기에 평가해 그에 따라 면허에 제한을 두는 것이다. 정부는 2019년부터 75세 이상의 면허 갱신 주기를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했다. 또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경찰청이 중심이 돼 조건부 면허제도 도입 등을 검토하기로 했다. 조건부 면허제는 운전능력이 떨어진 정도에 따라 야간 운행을 제한하거나, 고속도로 운행을 제한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제도를 설계할 수 있다. 해외의 경우에는 생활권 반경으로 주행 가능한 거리에 제한을 두기도 한다. 한국은 이제 막 연구개발이 진행 중으로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정책이 시행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급속한 고령화 진행은 이미 예견됐음에도 정부의 대비가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가입국의 베이비부머세대가 고령화될 것을 내다보고 노인 이동권을 위한 적극적인 예산 확보와 정책 마련을 주문한 것이 2001년이다. 당시 보고서에는 의사의 진단을 통해 고령 운전자의 운전능력 저하를 1차로 파악하고 이를 면허 갱신 절차에 연계하는 방안 등 구체적인 정책 제안이 담겼다. 현재 미국과 호주 등에서는 의사의 진단에 따라 고령층의 운전능력을 평가하고, 문제가 있는 경우 도로주행 평가를 받도록 하는 한편 조건부 면허제도를 통해 개별적인 제한을 둔다. 반면 한국은 인력과 예산의 한계 등으로 면허 갱신 주기만 단축했을 뿐 도로주행 평가 등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OECD는 당시 각국의 정책 목표 중 하나로 고령 운전자에 대한 대중의 오해 불식을 제시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비하지 않으면 고령 운전자가 일으키는 교통사고로 인한 대중의 불안이 고령층에 대한 편견과 혐오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 것이다. 한국의 현 상황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연구자들은 차량의 급발진을 막고 제동을 보조하는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방안이 현 상황에서는 현실성 있는 대안이라고 본다. 차량이 가까운 거리의 사람이나 사물을 인지할 경우 자동정지하는 비상자동제동장치, 비정상적으로 가속 페달을 밟으면 연료 공급을 차단하는 급발진 억제 장치, 주행 도로의 제한 속도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하는 지능형 속도 적응 장치 등이 거론된다.
최재원 도로교통공단 부산지부 교수는 “헌법에 따라 국민의 이동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안으로 나아가야 한다. 유럽과 일본에서는 신차에 비상자동제동장치를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 기존의 차량이 문제가 될 수 있는데 정부가 예산이 허용하는 안의 범위에서 우선순위를 설정해 장치 설치 비용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