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려서 손흥민이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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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식 ‘토론의 즐거움’ 대표

정주식 ‘토론의 즐거움’ 대표

지난해 3월 BTS 리더 RM은 “케이팝 시스템이 비인간적인가?”라는 스페인 매체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한국 아티스트는 굉장히 어린 나이에 그룹의 한 멤버로서 커리어를 시작해 개인으로 살 시간은 거의 없죠. 하지만 그런 삶이 케이팝을 빛나게 합니다.” 기자는 한국사회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 나라에서는 대부분 청소년이 그런 삶을 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기자의 질문은 순진했지만 RM의 답변에는 어두운 진실이 담겨 있다. 한국인은 현재의 행복을 미래로 유보하는 데 특화된 사람들이다.

언젠가 박세리는 방송에서 어릴 적 훈련 중에 실수를 하자 아빠가 다가와 사람들 앞에서 귀싸대기를 때렸다는 일화를 말했다. 아버지의 가혹한 훈육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게 됐다는 회고와 함께. 최근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이 운영하는 ‘SON 아카데미’가 체벌 논란에 휩싸였다. 진위는 법정에서 가려지겠지만 체벌에 관한 손웅정의 지론은 과거 언론 인터뷰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아들을 많이 때렸다”는 사실을 종종 밝혔던 손웅정은 한 방송에서 아동학대로 의심받아 교육청과 경찰에 수차례 신고당했던 경험을 무용담처럼 이야기하기도 했다. 맞고 자란 아들은 아빠의 ‘사랑의 매’가 없었다면 이 자리에 없었을 거라고 말했다. 당당한 가해자와 고마워하는 피해자를 보라. ‘성공한 체벌’은 그렇게 이데올로기가 된다.

“때려서 손흥민이 될 수 있다면 때려도 좋다는 부모가 있다. 그런 걸 못 하게 하는 것이 사회의 역할이다. 억압적인 부모가 다스리는 가정, 비인간적 훈육이 허용되는 스포츠 아카데미, 연습생들의 오늘을 체계적으로 갈아 넣는 기획사. 이 장소들은 미래의 유토피아를 위해 폭력이 방치되는 사적 영토라는 공통점이 있다.”

두 월드스타의 아버지는 같은 생각을 공유한다. 체벌에는 효용이 있다는 것이다. 체벌 금지와 관련한 논쟁은 대개 이 지점에서 일어난다. ‘손흥민은 정말 맞아서 손흥민이 됐나?’ 저런 논쟁을 벌이는 사람들은 결국 같은 생각을 품고 있다. 효용이 있다면 때려도 된다는 생각이다. 한국인들은 왜 그렇게 열심히 체벌의 효과를 따질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래의 행복이기 때문이다. 오늘이 고통스러울수록 미래는 더 밝게 빛날 거라는 믿음. 니체의 말을 빌리자면 천국을 미래의 유토피아로 옮겨 놓은 어리석은 신앙이다. 이러한 보편적 삶의 양식을 외면하고 체벌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세계에서 사람들이 체벌의 비인간성보다 효과에 관심을 두는 것은 자연스럽다. 젊음이란 고통의 터널일 뿐이다. 때려서 손흥민이 될 수 있다면 때려도 좋다는 부모가 있다. 그런 걸 못 하게 하는 것이 사회의 역할이다. 억압적인 부모가 다스리는 가정, 비인간적 훈육이 허용되는 스포츠 아카데미, 연습생들의 오늘을 체계적으로 갈아 넣는 기획사. 이 장소들은 미래의 유토피아를 위해 폭력이 방치되는 사적 영토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 장소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고통 없이 즐거움만이 존재하는 미래는 과연 존재하는가. 인생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은 청춘이 지나갈 즈음에야 온다. 그렇게 젊음을 흘려보낸 뒤 도달하는 것은 고통 없는 천국이 아니라 젊음의 끝자락이라도 붙잡고 싶은 ‘영포티’, ‘영피프티’의 회한이다.

<정주식 ‘토론의 즐거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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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정예 겁쟁이들
오늘을 생각한다
대한민국 최정예 겁쟁이들
제2차 세계대전 전범의 아들 노다 마사아키가 쓴 <전쟁과 죄책>에는 포로의 목을 베라는 상관의 명령을 거부한 병사의 이야기가 나온다. 일본 관동군 중대장으로 근무했던 도미나가 쇼조의 증언에 따르면 중국 후베이성에서 포로를 베는 ‘담력’ 교육 도중 한 초년 병사가 “불교도로서 할 수 없습니다”라며 명령을 거부했다. 불교도로서 ‘살생하지 말라’는 계율을 지키려 했던 이 병사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홀로코스트 연구자 크리스토퍼 R. 브라우닝이 쓴 <아주 평범한 사람들>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학살 임무를 거부하고 총기를 반납한 나치 대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독일 101예비경찰대대 빌헬름 프라프 대대장은 유대인 학살 임무에 투입되기 직전 병사들에게 “임무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면 앞으로 나오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10명 남짓 병사가 앞으로 나왔고, 그들은 소총을 반납하고 대기했다. 그 병사들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각 부대에서 학살 임무를 거부한 병사와 장교들이 속출했지만, 나치 독일의 가혹했던 군형법은 이들에게 명령불복종죄를 비롯한 어떠한 형사처벌이나 징계도 내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