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우리가 급발진 운전석에 앉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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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급발진 주장이 빈발하고 있다.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다. 이미 SUA(Sudden Unintended Acceleration)라는 용어도 있다. 갑자기 엔진이 굉음을 내며 차가 내달리고 브레이크를 아무리 밟아도 소용이 없다는 이 이야기. 사람 아니면 차 둘 중 하나가 범인이다.

가속 페달을 브레이크라고 착각해 끝까지 밟는 페달 오조작은 흔하다. 2018년 일본 통계를 보면 교통사고 중 브레이크와 엑셀을 혼동해 밟은 비율이 75세 미만은 1.1%지만, 75세 이상은 5.4%로 5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고령 운전에 대한 걱정에는 근거가 있다.

하지만 내가 밟은 것이 브레이크라고 확신하는데 나이 좀 먹었다고 가속 페달이라며 몰아간다면 억울하다. 차의 잘못일 가능성은 없을까? 21세기 자동차들은 전자식 소프트웨어에 의해 가속 페달의 신호를 접수한 후 엔진 상태를 참작해 움직인다. 늘 소프트웨어에는 이론상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개발자들 사이에서는 ‘버그가 생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각오가 있다. 여기에 민간과 공공의 시험이 더해진다. 그래도 소프트웨어에 100% 안심이란 없다. 멀쩡한 드론을 장악하는 해킹 방법이 있다. 전자기 오류 주입(EMFI·Electromagnetic Fault Injection)은 전자기장으로 기판을 교란해 오류를 유발하고, 그 틈을 타 심지어 프로세스도 탈취할 수 있는 기법. 드론도 망가뜨린다면 자동차도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실제로 EMFI로 자동차의 컴퓨터 ECU에 오류를 일으켜 엔진을 오동작시키는 실험도 이뤄진 적이 있다. 악의적 공격이 아니더라도 여하간 노이즈, 혹은 조립 및 관리의 실수로도 전자기기는 망가지곤 한다.

급발진의 진짜 원인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당시로 돌아가 직접 운전해 보는 것뿐이라는 말이 있다.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는 페달 블랙박스 설치만이 해법이라는 의견마저 보이지만, 사고를 방지할 해법이 아닌 자위책일 뿐이다.

합리적인 해법은 오작동 여지를 기계적으로 막아버리는 일이다. 읍내든, 마트든 어르신이 다니는 동선에서는 제로백 급가속을 할 필요가 없다. 저속에서 힘껏 밟는 가속 페달은 무시하고 경고하면 그만이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제품을 블랙박스 달 듯 설치할 수 있고, 지자체에서 보조금이 나오기도 한다. 신차 순정 옵션으로도 있는데 각종 센서와 연동되기도 한다. 유엔 유럽경제위원회는 지난달 바로 이 일본식 시도를 토대로 규제 도입에 합의했다. 내년 6월부터 급발진 억제 기능과 경보장치 장착을 의무화했다.

수동 변속기 자동차는 급발진 사건이 없다. 왼발로 동력 분리가 가능하다는 점도 있지만, 설령 엔진이 폭주해도 저단 기어에서는 굉음과 함께 속도는 별로 나지 않으니 급히 발진하지 않는다.

오작동 방지 옵션이 의무화돼 정지상태나 저속에서 아무리 가속 페달을 밟아도 차가 급히 나가지 않게 된다면, 한 가지 가능성을 사건에서 배제할 수 있다. 그리고 그다음에야 비로소 전자적 폭주 사건, 흔히 이야기하는 제조사 결함에 의한 급발진의 실태를 헤아려 봄 직하다.

변치 않는 진실은 정신도, 소프트웨어도 갑자기 맛이 갈 수 있다는 점. 해법은 있다. 어느 쪽의 폭주든 발을 페달에서 완전히 떼었다가 두 발로 브레이크를 힘껏 밟는 것. 현대적 브레이크는 엔진 과부하를 무마한 채 정지시킬 수 있음이 2010년 7개사 차종 실험에서 증명됐다. 내가 밟고 있는 것이 브레이크라면 차는 멈춰야 한다. 발이 말을 듣지 않는다면 손을 써야 한다. 요즈음 차의 전자식 주차 브레이크는 이 용도로 위급 시 사용하도록 사용설명서에 기재돼 있다.

<김국현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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