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곱씹어볼 스웨덴의 ‘인구정책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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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26일 서울의 한 공공산후조리원 신생아실 일부 요람이 비어 있다. / 연합뉴스

2023년 12월 26일 서울의 한 공공산후조리원 신생아실 일부 요람이 비어 있다. / 연합뉴스

정부가 지난 7월 1일 인구전략기획부를 신설하는 정부조직 개편방안을 발표했다. 신설되는 인구전략기획부는 저출생뿐 아니라 고령사회 대응과 인력, 이민 등 인구정책 전반을 포괄한다. 또 강력한 컨트롤타워로서 ‘전략·기획·조정’ 기능에 집중할 수 있도록 경제기획원과 유사한 모델로 설계했다고 한다.

인구문제를 전담하는 부총리급 부서를 신설할 정도로 인구문제는 국가적 과제가 됐다. 한국의 총인구는 이미 정점을 지나 감소세로 돌아섰다. 현재같이 낮은 출생률이라면, 2100년 한국 인구는 현 수준의 절반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신설되는 인구전략기획부의 책무가 막중하다. 인구문제는 정책을 지금 실행해도 효과는 한 세대 이상의 지체가 발생한다.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목표와 수단으로 일관되게 추진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다. 이 점에서 한 세기에 걸친 스웨덴의 인구정책 실험은 좋은 참고가 될 수 있다.

“인구 감소 극복, 사회정책 전환 필요”

1934년 알바 뮈르달과 군나르 뮈르달 부부는 <인구문제의 위기>라는 책을 스웨덴어로 발간했다. 30대 중반의 이들 부부는 훗날 노벨평화상(1982년 알바 뮈르달)과 노벨경제학상(1974년 군나르 뮈르달)을 수상했다. 책은 발간 즉시 스웨덴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책에서 제안한 내용은 사회민주당 정부의 핵심강령으로 채택돼 복지국가로 불리는 스웨덴 국가발전 의제의 핵심을 차지하게 된다. 이 책은 영어로 번역되지 않았다. 대신 1940년 군나르 뮈르달은 <인구: 민주주의의 문제>를, 알바 뮈르달은 1941년 <국가와 가족: 민주적 가족 및 인구정책에 대한 스웨덴의 실험>을 영어로 발간했다. 두 책은 외부 독자들에게 스웨덴의 정책실험을 상세히 설명해 준다.

1930년대 스웨덴은 큰 전환의 시기였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전환하면서 출산율이 4명에서 2명으로 떨어졌다. 1930년대에 합계출산율은 1.77을 기록했다. 인구가 현상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합계출산율 2.1에 크게 미치지 못한 수준이었다. 과거에는 인구과잉이 문제였는데 이제는 인구 감소가 닥쳤고, 국가소멸의 위기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완전한 사회적 전환”이라고 뮈르달 부부는 주장했다. 알바 뮈르달은 1941년 발간한 저서 <국가와 가족>에서 “인구정책은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에 작용해야 하며 사회변화의 다른 모든 영역과 상호작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뮈르달 부부의 인구정책 관련 제안은 피임에서부터 양육비용의 사회화에 이르기까지 당시에는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중에는 오늘날 관점에서 시대착오적인 것도 있다. 인구는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구의 질이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사회적 부적격자에 대한 불임 정책을 지지한 것이 그러하다. 해당 불임 정책은 1975년에 폐지됐다. 이런 한계를 감안해도 인구 감소 극복을 위해 사회정책의 전환이 필요하고,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복지국가 비전을 제시하고 실행한 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곱씹어볼 만한 교훈을 제공한다.

뮈르달 부부가 제창한 내용 중 오늘날에도 교훈을 주는 몇 가지를 정리해 보자. 첫 번째는 어떠한 출생률 제고 정책이라도 성공하려면 “기혼 여성이 경력을 쌓는 동시에 자녀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이 부분은 선견지명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자녀가 가족에게 경제적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짚은 것이다. 군나르 뮈르달은 1940년 발간한 저서 <인구>에서 “문제는 오늘날 자녀는 노년기의 소득원이거나 부양수단이기보다는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점이다”라고 서술했다. 이어 출생률을 높이려면 “자녀를 양육하는 데 드는 경제적 부담의 상당 부분이 개별 가족에서 사회 전체로 전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실현하려면 부의 재분배가 부자와 빈자 사이뿐 아니라 자녀가 적거나 없는 사람과 많은 사람 사이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세 번째는 인구정책 프로그램이 소득 수준에 따라 차별적인 것이 아니라 모든 가정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지적한 것이다. 따라서 현금 보조금보다는 필요한 서비스를 직접 제공해야 한다. 이는 가족 지원에 관한 스웨덴 정책의 기본 원칙이 됐다.

네 번째는 제안한 과제들을 실현하고, 이를 위해 요구되는 사회개혁을 장기적으로 지속해서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분간 인구문제에 관한 관심은 어느 정도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다시 전면에 등장할 것이고, 더 확실한 방식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때에야 전혀 다른 규모의 분배 개혁이 가능해질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사회구조 전반의 급진적인 변화를 수반하는 이러한 개혁조차 자녀 양육의 비용 격차를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군나르 뮈르달은 <인구>를 통해 이같이 지적했다.

“모든 가정이 대상인 보편적 지원해야”

특히 마지막 부분이 크게 울린다. 사회 구조 전반의 급진적 변화를 수반하는 개혁조차 자녀 양육에 따른 추가적 비용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스웨덴 통계청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2023년 스웨덴의 합계출산율은 1.45이다. 역사상 가장 낮은 수준이다. 한 세기에 걸친 지대한 노력에도 출산율은 반전되지 않았다.

뮈르달 부부의 주장은 곧바로 사회민주당 정부에 채택됐다. 1935년 사회민주당 정부는 국가인구위원회를 설치했는데, 위원회에서 군나르 뮈르달은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다. 이후 스웨덴은 가족과 인구정책을 핵심으로 이른바 복지국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현실적인 어려움은 이들 인구 관련 프로그램들이 효과가 있는 만큼 돈이 많이 드는 정책이라는 점이다.

스웨덴을 포함한 북유럽 복지국가들이 재정위기를 경험하고 일부 복지정책이 후퇴하게 된 가장 큰 요인은 재정 부담이었다. 새롭게 출범하는 인구전략기획부가 한 세대 이상을 내다보는 장기적 관점에서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국가적 의제를 설정하고 사회개혁에 버금가는 근본적인 정책을 추진하기를 기대한다.

<서중해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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