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찬호 기자
‘사적 제재’를 적었다, 지우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현상을 멀리서 보는 것과 가까이서 하나하나 뜯어볼 때 생기는 괴리감이 문제였습니다. 사회적 분노가 들끓고 있는 상황에서 가장 쉬운 방법은 ‘동조’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적 제재가 괜히 나오겠나. 가해자 처벌하라’는 논리에 편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선 눈 감아야 하는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유튜버의 폭로에 불안한 ‘피해자의 목소리’였습니다.
사회적 ‘분노’의 힘은 대단했습니다. 수십 년 전 사건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데 이어 직·간접적으로 엮인 사건 주체들이 속속 사과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 결과를 자꾸만 돌아보게 되는 것은 ‘이 분노가 누굴 위한 것인지, 그 결과는 무엇을 파괴하고 만든 것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유튜버의 가해자 공개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과거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 과정에서 피해 사실이 나오게 됩니다. 사람들의 호기심은 선의로만 작동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사건을 찾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를 돈벌이 기회로 여깁니다. 그렇게 50만 유튜버, 300만~400만 조회수의 영상이 탄생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의 의견’은 끼어들 자리가 없었습니다.
가해자가 모두 공개되고, 관계자들이 대국민 사과를 하면 속이 시원한 것이 사건을 까맣게 잊고 살아온 ‘나’인지, 긴 시간을 고통 속에 산 ‘피해자’인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전문가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는 유명 사건 피해자의 ‘일상’에 관해 설명하며 “긴 시간 동안 조금씩 조금씩 봉합돼 가던 상처가 이런 일 한 번으로 다시 터져버린다. 그리고 피해자는 ‘그때 그 사건 걔’로 사람들 기억 속에 남는 것에 괴로워한다”고 말했습니다. 감히 ‘사적 제재’의 기화가 된 사건이 무엇인지 정확히 지칭하지 못하겠다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기사에 쓴 문장 한 줄, 사용한 단어 하나가 혹시라도 피해자를 괴롭히지 않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