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클럽-세월이 흐르니 눈에 들어오는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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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 다시 보니 캐릭터 각자가 폭주하는 이유, 흔들리는 미묘한 감정선에 따라 각각 다른 방향으로 치달아가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영화는 풋풋하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10대 중반 소년·소녀들의 불안과 감성을 잘 포착해 놓았다. 여러모로 짙은 울림이 남는 영화다.

/ 엠엔엠인터내셔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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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마침내 한국에서 개봉한다니, 이상야릇한 느낌이다. <태풍클럽>. 이제는 세상을 떠난 소마이 신지 감독의 1985년작 영화다. 주인공은 중학교 3학년 소년·소녀들.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한 9월 초 목요일 밤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아이들이 ‘폭주’하는 이야기다. 사실 태풍클럽은 존재하지 않았다. 여러 이유로 집에 가기 싫은 아이들, 그리고 문득 평생 시골 여자로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도쿄로 가출한 소녀까지 묶어 표현한 것이다.

39년 만에 한국 개봉하는 감독의 대표작

처음 이 영화를 본 것은 1990년대 중반이다. 서울 홍익대 앞 거리, 엘리베이터가 없어 가파른 나무계단을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작은 시네마테크였다. 한국에서는 독립영화로 번역되는 일본 자주영화의 대표 감독 중 한 명인 소마이 신지 감독의 이 영화가 재일교포 감독 최양일이나 오시마 나기사, 쓰카모토 신야, 수오 마사유키 등의 영화들과 함께 꽂혀 있었다. 아쉽게도 영화엔 자막도 없었는데 이 영화를 필자에게 추천해준 인사(그는 나중에 유명 영화감독이 됐다) 역시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 영화가 담고 있는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한 것 같진 않았다. 대충 이런 말로 기억한다. “소마이 신지의 연출은 독특해. 오즈 야스지로의 다다미 쇼트(위에 내려다보는 위치에서 찍는 부감 쇼트나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앙각 쇼트, 또는 가슴 부위께에 초점을 맞추는 체스트 쇼트와 달리 다다미에 앉아 있는 사람의 눈높이에 카메라를 고정하는 쇼트)의 창조적 계승이라고나 할까. 화면 중앙에서 주요 사건이 전개되고 청소년들의 감정의 흔들림은 핸드헬드 롱 쇼트로 찍었지.” 그러니까 우리가 소마이 신지 작품에서 본받을 것은 구도와 카메라 기술이라는 식의 설명이었다. 뭐,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한국에서 개봉되는 작품은 지난해 일본에서 4K로 복원돼 재개봉된 판이다.

‘태풍과 함께 찾아온 10대들의 호르몬 대폭발 사건!’이라고 영화사에서는 선전 문구를 잡았던데 얼핏 봐서는 난해한 영화다. 이건 독립영화의 숙명과 같은 것일지 모르겠다. 4K 리마스터 개봉 후 일본 쪽 관객들의 리뷰를 살펴봤는데, 조롱 대상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들이 말하는 “다시는 못 나올 영화”라는 의미는 걸작이라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의 ‘폭주’라는 것이 남녀 학생을 가릴 것 없이 담배를 돌려 피우거나, 지금이라면 성적 가해 행위자로 조리돌림당할 만한 짓을 저지른 남학생과 피해 여학생이 마치 아무 일이 없었던 듯 태풍이 몰아치는 한밤의 중학교 강당과 운동장에서 이어지는 광란의 홀딱쇼 파티를 함께한다는 이야기, 엄마 방에 들어가 자위하는 여중생이나 중학생 레즈비언 커플들의 묘사 같은 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이렇게 써놓으면 마치 파졸리니 감독의 <살로 소돔의 120일>(1975)처럼 끝 간데없는 등급외 영화를 떠올릴지 모르는데 <태풍클럽>은 풋풋하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10대 중반 소년·소녀들의 불안과 감성을 잘 포착해 놓았다.

20대 당시 영화 볼 때는 놓쳤던 것들

앞서 이상야릇한 느낌이라는 건 야하다거나 그런 게 아니다. 영화를 처음 만났던 30여 년 전엔 영화 속 주인공들의 설정이 나와 동년배라는 걸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나 역시 1985년 중3이었다. 비록 영화 속 캐릭터지만, 이제는 모두 50대 장년층이 됐을 텐데 자신의 중3 시절을 돌이켜 본다면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지금 다시 영화를 보니 영화의 화자로 “아마도 그 비를 처음으로 본 사람은 나일 것이다”라고 회상하는 주인공은 아키라다. 영화에 등장하는 10대 대부분이 ‘어른도 아니고 애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서’ 흔들리는데 그중 가장 성장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던 캐릭터다. 이야기의 중심축은 “개(個)가 먼저냐, 종(種)이 먼저냐”를 놓고 철학적 고민에 빠진 미카미와 그를 좋아하는 리에, 그리고 역시 미카미에 마음을 품고 있는 미치코가 겪는 삼각관계다. 나이 들어 다시 보니 캐릭터 각자가 폭주하는 이유, 흔들리는 미묘한 감정선에 따라 각각 다른 방향으로 치달아가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20대 때 영화를 볼 때는 영화 크레딧에도 없어서 몰랐던 리에가 밤중에 홀로 쓸쓸히 불렀던 게 마츠다 세이코의 노래라는 것과 태풍 속에 운동장에 뛰쳐나와 아이들이 속옷만 입고 부르던, 그리고 도쿄로 가출한 리에가 울면서 부르던 노래가 와라베의 ‘만약 내일이…’라는 걸 알아차린 건 덤이다. 여러모로 짙은 울림이 남는 영화다.

제목: 태풍 클럽(台風クラブ)

제작연도: 1985

제작국: 일본

상영시간: 114분

장르: 드라마, 로맨스

감독: 소마이 신지

출연: 쿠도 유키, 미카미 유이치, 미우라 토모카즈

개봉: 2024년 6월 26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수입/배급: 엠엔엠인터내셔널㈜

소마이 신지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세일러복과 기관총>

/ei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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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마이 신지 감독이 타계한 것이 2001년이니 벌써 23년이 흘렀다. 소마이 감독에게 명성을 안겨준 작품이 <태풍클럽>인 것은 틀림없지만, 개인적으로 감독의 진짜 대표작은 두 번째 장편인 <세일러복과 기관총>(1981·사진)이라고 생각한다. 장편 데뷔작 <꿈꾸는 열다섯>(1980)에 이어 이 작품 역시 풋풋한 젊은 시절의 야쿠시마루 히로코를 여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인데, 조폭 아버지가 사망한 뒤 폭력단을 이끌게 된 여고생 이야기다. 영화는 개봉 당시 일본에서 흥행 1위를 했고, 21년이 지난 2002년에는 드라마화가 됐다. 나카타 히데오 감독의 <금지된 장난> 영화의 여주인공이었던 하시모토 칸나가 35년 만의 속편 <세일러복과 기관총-졸업>(2016)의 주연을 맡았지만 아무래도 원작의 여주인공 야쿠시마루가 보여줬던 어딘가 모르게 애잔하면서도 풋풋한, 다시는 못 돌아올 소녀 시절의 ‘아우라’에는 못 미치는 듯 보였다.

야쿠시마루는 1980년대를 대표하는 아이돌이다. 영화 주제가인 ‘세일러복과 기관총’을 불러 가수로도 데뷔했다. 역시 주연을 맡은 영화 <W의 비극>(1984)에서도 동명의 주제곡을 불렀다. 지난해 말 NHK 홍백가합전에 특별손님으로 야쿠시마루가 나와 자신의 대표곡 ‘세일러복과 기관총’을 불렀다. 1964년생이니 올해 환갑이다. 영화 <W의 비극>을 보면-유튜브에 영어 자막판 영화가 올라와 있다-어디선가 익숙한 스토리라고 느끼기 쉽다. 원작은 한국에도 번역되어 꽤 많이 팔린 일본 추리소설이다.

<W의 비극>은 한국에서도 영화화됐는데 일본 소설 원작이 아니라 야쿠시마루 주연 영화를 등장 인물명만 한국식으로 바꿨다. 강수연과 대학가요제 사회자로 유명한 이택림이 주연을 맡았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1995) 이전까지 일본 영화는 한국 극장에 걸릴 수 없었고, 노래와 마찬가지로 할리우드 영화라도 소위 ‘왜색’이 들어 있으면 수입되지 않았다. 196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제작된 한국 영화 중 알고 보면 중요 아이디어나 플롯, 연출 장면을 표절한 작품들이 꽤 된다. 한국 영화의 흑역사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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