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육군 12사단 신병교육대에서 군기훈련을 받다 쓰러져 숨진 훈련병의 영결식이 지난 5월 30일 전남 나주시의 한 장례식장에서 열렸다. 연합뉴스

육군 12사단 신병교육대에서 군기훈련을 받다 쓰러져 숨진 훈련병의 영결식이 지난 5월 30일 전남 나주시의 한 장례식장에서 열렸다. 연합뉴스

나는 10여 년 전 경기 포천시의 한 육군 부대에서 병사로 복무했다. 우리 부대는 대대와 떨어져 간부와 병사 60~70명만이 생활하는 독립중대였다. 간부 중에 ‘악마’라고 불리던 A중사가 있었다. 병사들이 모두 두려워하는 존재였다. A중사가 민간인 시절에 ‘해결사’(채권자 대신 악성 채무를 수금하는 일)를 하다가 군인이 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병사들은 2인 1조로 하루에 1회 이상 경계초소 근무를 섰다. A중사는 적군처럼 어둠을 틈타 은밀하게 초소에 접근해 병사들을 ‘습격’했다. A중사를 발견하지 못하면 ‘경계 실패’를 이유로 얼차려를 받아야 했다. 부대 주변을 폐쇄회로(CC)TV로 감시하는 ‘CCTV병’은 특히 가혹한 근무였다. A중사가 당직사관인 날 CCTV병 근무에 걸린 병사는 초주검이 됐다.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9시간 동안 꼼짝 않고 CCTV 화면만 뚫어지게 쳐다봐야 했기 때문이다. 깜빡 졸다가 A중사에게 들키면 역시 얼차려였다.

누군가는 A중사의 엄격한 병사 관리를 ‘참군인’의 모습이라고 칭찬할 수 있다. 하지만 A중사의 권위는 군기 확립을 빙자한 폭력에서 나왔다. A중사에게 한번 ‘찍힌’ 병사는 온갖 트집이 잡혀 신체의 극한까지 몰아가는 얼차려를 받았다. 영상 35도가 넘는 한여름에 달아오른 자갈밭 위에서 3~4시간 동안 엎드려뻗쳐 자세를 했다. 영하 20도 아래로 떨어진 한겨울에 얼어붙은 땅을 파서 참호를 만들어야 했다. 신음하는 병사들 귀에 남성성을 조롱하는 모욕과 욕설이 날아왔다.

얼차려란 ‘정신(얼)을 차리라’는 의미다. 현재는 ‘군기훈련’이 군의 공식 용어다. 군기훈련이 “인권침해 소지가 없어야 한다”라고 규정한 군인복무기본법과 시행령은 2016년에야 제정됐다. 시행령이 규정한 군기훈련은 1회 20번 이내의 팔굽혀펴기와 앉았다 일어서기, 1회 1㎞ 이내의 완전군장 보행 등이다. 법을 제정하기 전에도 ‘육군규정 120’(얼차려 규정)이 있었다. 병사들은 이런 규정이 있는지도 몰랐다. A중사도 규정의 존재를 알았는지 의문이다.

지난 5월 23일 육군 12사단 신병교육대에서 군기훈련을 받던 훈련병이 사망했다. 훈련병은 24㎏ 무게의 완전군장 상태로 구보, 팔굽혀펴기, 선착순 달리기 등을 반복했다. 이상 증상을 보여 병원으로 후송됐고 이틀 뒤 숨졌다. 일부 누리꾼은 기사에 “군대는 군대다워야 한다”, “군대가 캠프냐”, “요즘 애들 약해 빠졌다” 등의 댓글을 달았다. 이 댓글들은 대한민국 국방을 위협하는 이적행위다. 부조리의 정당화는 군대를 약하게 만든다.

강한 군대가 인권을 보장하는 합리적 훈련과 복무환경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은 이미 수많은 연구가 증명했다. 얼차려 명목의 군내 폭력 사건은 과거부터 끊이지 않았다. 언제든 사적 감정이 개입돼 가혹행위로 변질하기 쉬운 군기훈련 제도가 합당한지부터 다시 논의해야 한다. 병사를 소모품 취급하는 지휘관이 군인의 자부심을 파괴하고, 맹목적 복종을 강요하는 부조리가 군의 사기를 떨어뜨린다. 내부에서부터 무너진 군대는 아무리 첨단무기로 무장해도 오합지졸이다. 국가와 사회가 병사를 ‘제복 입은 시민’으로 대우할 의지와 능력이 없다면 강군(强軍)은 어림없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이미지
대한민국 최정예 겁쟁이들
오늘을 생각한다
대한민국 최정예 겁쟁이들
제2차 세계대전 전범의 아들 노다 마사아키가 쓴 <전쟁과 죄책>에는 포로의 목을 베라는 상관의 명령을 거부한 병사의 이야기가 나온다. 일본 관동군 중대장으로 근무했던 도미나가 쇼조의 증언에 따르면 중국 후베이성에서 포로를 베는 ‘담력’ 교육 도중 한 초년 병사가 “불교도로서 할 수 없습니다”라며 명령을 거부했다. 불교도로서 ‘살생하지 말라’는 계율을 지키려 했던 이 병사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홀로코스트 연구자 크리스토퍼 R. 브라우닝이 쓴 <아주 평범한 사람들>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학살 임무를 거부하고 총기를 반납한 나치 대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독일 101예비경찰대대 빌헬름 프라프 대대장은 유대인 학살 임무에 투입되기 직전 병사들에게 “임무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면 앞으로 나오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10명 남짓 병사가 앞으로 나왔고, 그들은 소총을 반납하고 대기했다. 그 병사들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각 부대에서 학살 임무를 거부한 병사와 장교들이 속출했지만, 나치 독일의 가혹했던 군형법은 이들에게 명령불복종죄를 비롯한 어떠한 형사처벌이나 징계도 내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