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9일 윤석열 대통령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했다. 2004년 합계출산율 최하위 국가로 자리매김한 지 20년 만의 일이다.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합계출산율이 1명 이하로 떨어진 유일한 국가다. 2018년 합계출산율 0.98명을 기록한 이후 한국은 전인미답의 길을 걷고 있다. 새삼스레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했으면 비상한 대책이라도 발표할 것을…. 일·가정 양립, 양육(돌봄), 주거 등 3대 핵심 분야 지원에 역량을 집중하겠단다. 제자리걸음이나 제자리높이뛰기나 결국 제자리일 뿐이다. 본질을 모르는 것인지 알면서 외면하는 것인지, 정권이 바뀌어도 저출생 대책은 여전히 헛발질이다.
첫째, 문제의 핵심은 돈이 아니라 시간이다. 윤 대통령 스스로 “백약이 무효였던 원인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6년간 280조원을 써도 실패했으면 발상의 전환을 했어야지, 비상사태라면서 왜 재탕 삼탕인가? 주 40시간(연장근로까지 52시간) 근무제로는 외벌이 모델에서 맞벌이 모델로, 남성 생계부양 사회에서 보편적 생계부양 사회로 전환할 수 없다. 12시간 동안 집이 비는데 돌봄과 살림을 누가 언제 한단 말인가? 노동시간 단축 없는 저출생 대책은 가짜다. 주 35시간, 주 30시간으로 가는 청사진이 있어야 한다. 주 69시간 노동유연화를 주창했던 윤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해결하겠다니 말이 되나? 주 69시간 일하면 나 자신도 못 돌볼 텐데 출산은 무슨!
주 69시간 노동유연화를 주창했던 윤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해결하겠다니 말이 되나? 주 69시간 일하면 나 자신도 못 돌볼 텐데 출산은 무슨! 주 35시간, 주 30시간으로 가는 청사진이 있어야 한다.
둘째, 여성 고용단절 문제를 해결하라. 윤 대통령은 “현재 6.8%인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을 임기 내에 50% 수준으로 대폭 높이고, 현재 70% 수준인 여성 육아휴직 사용률도 80%까지 끌어올리겠다. 첫 3개월 육아휴직 급여 상한액을 월 250만원(현행 150만원)으로 인상하겠다”라고 밝혔다. ‘여성 육아휴직 사용률 70%’라니 현실 인식부터 글러 먹었다. 육아휴직은 안 잘려야 쓰는 것이고, 육아휴직 급여도 안 잘려야 받는 것이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22년 경력단절여성 등의 경제활동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만 25~54세 여성 중 42.6%가 결혼·임신·출산·육아·돌봄의 이유로 고용단절을 경험했다. 응답자의 76%가 혼인을 경험했고, 69.5%가 유자녀라고 답했으므로 자녀 돌봄으로 고용단절을 경험한 비율은 어림잡아 60%가 훌쩍 넘는다. 2005년 이후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남성을 앞서고 있는데 취업률·평균임금은 여전히 남성보다 낮고, 고용단절이라는 결정타가 도사리는 사회다. 여성 노동자의 관점에서 육아휴직·돌봄·주거정책으로 출생률을 제고할 수 없는 이유다.
이 밖에도 저출생 대책이 실패할 이유는 많다. 미래의 동료시민을 대상화하고 도구화하는 발상이라는 것부터 문제다. 그들은 우리 산 자들을 위해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태어나서도 안 된다. 이제 출산율에서 눈을 떼고 2018년부터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는 자살률에 주목하자. 염치가 있다면 살 만한 사회를 만들어 놓고 누군가 태어나길 바라자.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