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유럽은 어디로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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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6월 9일(현지시간) 끝난 유럽의회 선거에서 승리가 확정되자 로마에 있는 이탈리아형제들(FdI)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로마 EPA 연합뉴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6월 9일(현지시간) 끝난 유럽의회 선거에서 승리가 확정되자 로마에 있는 이탈리아형제들(FdI)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로마 EPA 연합뉴스.

지난 6월 6일부터 9일까지 나흘 동안 유럽연합 의회 선거가 있었다. 약 3억700만명의 유권자 중에서 1억8500만이 투표를 해 5년 임기 720석의 의원을 선출했다. 이번 선거는 사전 조사부터 우파의 승리가 예상됐다. 7개 정치 그룹 중 우파는 모두 의석을 늘렸고, 좌파는 의석을 잃었다. 중도우파의 유럽국민당이 이전보다 8석 늘어난 184석을 확보해 원내 제1당이 됐고, 그 뒤를 이어 중도좌파인 사회민주당은 이전과 같은 139석을 확보했다.

중도우파의 의석이 늘면서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위원장의 연임이 가능하게 됐다. 가장 큰 변화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지하는 ‘리뉴 유럽’과 ‘녹색’ 그룹에서 나왔다. 이 두 그룹은 진보정치를 지향하는데, 리뉴 유럽은 22석을 잃었고 녹색은 19석을 잃었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독일·프랑스 유럽연합 의회 선거 후폭풍

유럽연합의 양대 축 역할을 하는 독일과 프랑스는 이번 선거의 후폭풍을 겪고 있다. 독일 여당 연합은 올라프 숄츠 총리가 이끄는 사회민주당이 100여 년 만에 전국 투표에서 최악의 결과를 기록하면서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녹색당에 대한 지지가 절반가량 감소했다. 사회민주당과 녹색당, 자유민주당이 포함된 독일 여당 연합은 경제 침체와 난민 문제 등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독일 연방의회 선거는 내년이어서 연정이 지속할 수는 있겠지만, 정치적 리더십에서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프랑스는 더 극적이다. 마린 르펜의 극우 국민연합이 전국 투표에서 역대 최고 득표율인 31.5%로 대중투표에서 승리하자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 의회를 해산시켰다. 프랑스에서 의회 해산과 조기 선거는 대통령의 권한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르펜의 극우 정당이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이런 극약처방을 택했다. 프랑스는 올여름 파리올림픽 전에 의원 선거를 다시 할 것이다.

유럽 정치지형의 우경화에는 경제성장 부진과 저출산 및 고령화 등 인구구조의 변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안보 강화 움직임 등이 작용했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 진행된 여론조사에서는 이른바 MZ세대인 20~30대가 보수 또는 극우 정당을 더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유럽의 현대 정치사에서 매우 이례적이지만 유럽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경제성장의 부진과 안보 위협으로 유럽의 젊은 세대가 정치적 연대보다는 경제적 안정을 선호하고 있다는 것을 이번 선거 결과는 보여주었다.

유럽 경제의 저조한 성장은 장기간에 걸쳐 진행 중이다. 세계 경제에서 유럽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대 초 20%로 정점을 기록한 후 감소해 2022년에는 12%로 크게 떨어졌다. 같은 기간 미국 경제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5%로 줄었다. 유럽연합과 미국의 비중이 줄어든 부분은 중국 등 신흥국과 아시아가 차지했다.

유럽연합 경제가 중국 등 신흥국 경제에 비하면 성장이 매우 저조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미국과 비교하면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모습이 달라진다. 실제로는 성적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명목상의 경제 규모로 보면 분명히 유럽 경제는 미국보다 뒤처져 있다. 1995년 당시 유럽연합의 경제 규모는 미국과 비교해 9% 더 큰 규모였다. 30년 가까이 지난 2022년 통계를 보면 유럽연합의 경제 규모는 미국의 66%에 불과하다. 이는 명목 국내총생산(GDP)으로 비교했을 경우다. 여기에는 환율이 크게 작용했다. 2008년 이래로 달러 대비 유로의 평가절하가 시작됐다. 2008년 6월 1유로는 1.58달러였고, 2022년 6월에는 1.05달러로 달러 대비 유로화 가치가 33% 하락했다. 환율 효과를 반영한 유럽연합과 미국의 GDP를 비교하면 2022년에도 두 지역의 경제 규모는 대체로 비슷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럽연합의 경제는 대략 네 지역으로 구분해서 볼 수 있다. 북유럽(스웨덴·핀란드·덴마크)은 높은 소득과 탄탄한 사회보장제도를 기반으로 환경과 삶의 질을 중시하는 진보적 성향을 보인다. 서유럽(독일· 프랑스·네덜란드·오스트리아·벨기에)은 강한 제조업 기반으로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사회적 연대를 중시하는 전통이 강하다. 동유럽(폴란드·헝가리·체코·루마니아 등)은 구공산주의 체제에서 자본주의 체제로 전환하면서 유럽연합에 가입해 경제성장률도 다른 세 지역보다 높다. 통합 이후 유럽 성장을 견인하는 역할을 했다. 남유럽(이탈리아·포르투갈·스페인)은 다른 지역에 비해 성장률이 낮고 소비는 높으며, 사회보장제도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젊은 세대, 연대보다 경제적 안정 선호

경제성장의 부진과 지정학적 요인이 겹치면서 이번 선거에서는 지역별로 선거 결과가 다르게 나타났다. 북유럽에서는 여전히 좌파가 우세를 보였다. 핀란드와 스웨덴, 덴마크에서는 녹색당 등 진보그룹이 과반수를 확보했다. 반면 이탈리아와 스페인, 포르투갈은 보수 그룹이 과반수를 차지했다. 가장 큰 반전은 앞서 언급한 독일과 프랑스다. 두 국가는 진보그룹이 우위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유럽연합 경제의 가장 큰 과제 중 하나는 유럽연합을 결성한 취지를 실현할 만큼 경제 통합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통합 당시에는 단일 시장 실현을 위해 4개의 자유를 지향했고, 이는 어느 정도 실현됐다. 4개의 자유란 재화와 자본, 서비스 및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이다. 그런데 금융과 통신, 에너지 등 세 부문은 유럽연합 결성 당시 하나의 시장을 지향하지 않았다. 그 결과 개별 국가로 구분된 시장으로 인해 이들 부문의 성장이 정체되고 새로운 시장과 산업 발전에서 뒤지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유럽 정치지형의 우경화는 그간 유럽이 선도하면서 취해온 주요 의제에서 진보적 태도가 후퇴할 것임을 시사한다.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이민을 수용하며 다양성과 연대에 기반을 둔 민주주의 이념이 지금까지 유럽이 내세운 가치다. 반면 유럽 경제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인식돼온 분열된 국별 자본시장 통합, 산업정책을 통한 역내 기업 육성, 반이민 정서 확대 등이 예상된다. 디지털 전환에는 속도를 내겠지만 그린 전환에는 감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는 더 혼란스러워지고 개인의 삶은 더 팍팍해질 것이다.

<서중해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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