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해군의 최대 숙원 사업은 핵(원자력)추진잠수함과 항공모함 도입이다. 이 두 전략무기를 도입하기 위한 사업은 공통점이 있다. 출발점이 같다는 것이다. 이 두 사업 추진에 깊숙이 관여했던 정홍용 (사)국방과사람들 대표(전 국방과학연구소장·육사 33기) 등 핵심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 출발점은 1차 북핵 위기다. 1차 북핵 위기는 북한이 팀스피리트 한·미 연합군사훈련 재개에 반발해 1993년 3월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을 하면서 일어났다. 한·미는 1994년 10월 제네바 합의를 통해 1차 북핵 위기를 마무리했다.
당시 김영삼 정부의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는 제네바 합의와는 별도로 북핵 대응을 위한 효과적인 군사 수단이 무엇인지를 검토한 끝에 두 가지 사업 추진을 계획했다. 핵추진잠수함과 경항모 사업이 그것이다. 청와대 지시에 따라 핵추진잠수함은 ‘비닉(비밀로 감춤)’, 경항모는 ‘2급 비밀’로 연구가 진행됐다.
■‘362 사업’의 좌절
1차 북핵 위기로 군 전력증강 사업은 수정됐다. 청와대 의지에 따라 국방부와 원자력연구소 전문가들은 러시아 전문가들과 접촉해 핵추진잠수함 도면과 잠수함용 소형 원자로 기술 확보에 나섰다. 비닉사업인 핵추진잠수함 사업은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본격화됐다. 2003년 6월 2일, 조영길 국방부 장관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핵추진잠수함 3척을 2020년 전에 실전 배치한다는 계획을 보고했다. 핵추진잠수함 개발 사업의 명칭은 이날 노 대통령에게 보고한 날짜를 따서 ‘362 사업’이라고 명명됐다.
앞서 김영삼 정부에서 핵추진잠수함 사업의 기안자였고, 김대중 정부에서 합참의장을 지낸 조 전 장관은 국방과학연구소(ADD) 고문으로 있으면서 ADD 과학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기술적 문제들을 해결할 방안 등을 연구했다. 평화적 목적의 북극해 쇄빙선에 시험용 소형 원자로를 장착해보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고 한다. 당시 조 전 장관은 나를 포함한 국방부 출입기자 2명에게 핵추진잠수함 사업의 중요성을 얘기하면서 철저한 비밀유지를 당부했다.
그러나 이 사업은 조선일보 보도로 외부에 노출되면서 1년여 만에 중단됐다. 미국은 한·미 원자력협정 위반이라며 조사에 착수했고, 국방부는 핵추진잠수함 사업을 추진한 바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 수밖에 없었다. 당시 기무사는 4000t급 핵추진잠수함을 추진할 경우 1800t급(214급) 잠수함 2차 사업을 건너뛰게 돼 불이익을 받을 걸 우려한 방산업체가 조선일보 국방부 출입기자에게 기밀을 흘린 것으로 의심했다. 해군 내부적으로도 당장 전력화할 수 있는 214급 잠수함 사업에 관심이 더 컸다. 결국 노 대통령의 부산상고 선배인 윤광웅 국방부 장관이 취임하면서 이 사업은 폐기됐다. 방산업체 고문 출신인 윤 전 장관 역시 214급 잠수함을 배치-Ⅱ·Ⅲ로 확대해 추가 건조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는 핵추진잠수함 사업에 부정적이었다. 김영한 당시 기무사령관은 “핵추진잠수함 3척이면 한반도 전쟁 억지력을 두 배로 늘릴 수 있다”라며 사업 좌절에 대한 아쉬움을 나에게 토로했다.
핵추진잠수함은 잠항 기간과 추진력 등을 고려할 때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잠수함을 저지하는 ‘헌터 킬러’ 역할에 최적이다. 또 유사시 북 수뇌부에 일격을 가할 수 있는 기습공격 능력에도 탁월하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핵을 연료로 사용하는 ‘차세대 잠수함’ 사업에 대한 정책 의지를 분명히 했다. 앞서 박근혜 정부에서도 핵추진잠수함에 필요한 소형 모듈 원자로(SMR) 연구개발에 적극적이었다. 문제는 잠수함용 원자로의 핵연료 조달이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과의 외교적 조율이 필수적이다. 이 문제에 관해 미국과의 합의가 도출된다면, 핵추진잠수함 사업은 급물살을 탈 수 있게 된다.
■중·일의 방해
김영삼 정부가 경항모 사업을 계획했던 것은 ‘움직이는 군사기지’인 항모가 갖는 강력한 현시 효과 때문이다. 정부는 항모를 언제든지 북한 지역에 근접 이동시켜 북한을 강하게 압박할 수 있는 상징 전력으로 활용하려 했다. 북한과의 분쟁이 터졌을 때 항모는 바다에서 북이 예측하지 못한 경로로 항공세력을 침투시킬 수 있다.
군 당국은 1994년 무역업체 영유통이 수입한 러시아의 키예프급 항공모함 2척 중 2번함인 민스크에 주목했다. 민스크는 만재 배수량 4만1380t의 디젤 추진 항모였다. 러시아는 어려운 경제 사정으로 민스크를 조기 퇴역시킨 후 매각했다. 해군은 민스크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항공모함 기술력을 얻으려 했다. 그러자 일본이 훼방에 나섰다. 일본은 NHK 등 자국 언론을 통해 ‘러시아 퇴역 항모는 사실상 현역 함정’, ‘한국의 군사용 전용 우려’ 등 부정적 보도를 내보냈다. 한국의 민스크 매입이 동북아 군사 지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처럼 해서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을 자극하려는 의도였다.
일본의 시도는 성공했다. 중국은 주한 중국대사관 무관을 국방부에 보내 민스크의 군사적 활용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러시아도 애초 계약 내용과 다르게 민스크의 핵심 설비인 무장, 전자장비, 기관까지 모두 뜯어낸 뒤 예인선으로 끌어 한국에 보냈다.
이후 외환위기 등으로 항모에 대한 논의는 수면 아래로 들어갔다. 해군은 당장 경항모 사업으로 직행하는 대신 과도기로 독도급 강습상륙함 사업을 선택했다. 국내 조선업체가 독도급 상륙함을 설계할 때 민스키 조사 결과를 참고했다고 당시 군 관계자들은 전했다.
경항모 사업은 시간이 흐르면서 북한보다는 오히려 중국과 일본 등의 주변국 항모 건조 움직임과 맞물린 ‘대응 전력’ 성격이 더 강해졌다. 문재인 정부 들어 경항모 사업은 공식 추진됐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서 항모 무용론이 등장하고, 지금은 사업이 수면 아래로 다시 잠겼다.
현재 한반도를 둘러싸고 해양 관할권과 자원을 차지하려는 주변국들의 위협이 심상치 않다. 당장 중국 해군은 서해 124도 E선을 군사활동 경계선으로 굳히려 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서해 대부분은 중국 바다가 되면서 한국의 ‘해양권익’은 ‘패싱’당할 수밖에 없다. 2030년이면 중국 항모는 5~6척으로 늘어난다. 중국은 남중국해 문제가 어느 정도 정리되면 유엔 해양법을 무시하고 이어도를 영토 분쟁화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 독도 해역과 대화퇴 어장, 남해 7광구에서도 일본과 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해군의 항모 사업을 정상 추진해야 하는 이유다.
주변국과는 해상 전면전보다는 군사적 대치 상황과 같은 저강도나 회색지대 분쟁일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항모는 ‘어깨싸움’이라도 할 수 있는 억지력이다. ‘우리를 건드리면 설사 너희가 이긴다 해도 심하게 다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해 상대의 전략적 의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최소한의 억지력이라는 의미다.
핵추진잠수함과 항모 사업은 30년째 도돌이표를 찍고 있다. 이제는 성공적인 사업 추진으로 하루빨리 마침표를 찍어야 할 시점이다.
<박성진 ‘안보22’ 대표·전 경향신문 안보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