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7일 오후 방문한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거리는 적막했다. 중고물품을 구경하는 사람도, 사려는 사람도 없었다. 흥정 없는 거리엔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았고 철거 용품을 실어나르는 용달차만 들락거렸다. 황학동 주방거리는 폐업한 점포의 물건을 싼값에 매입해 창업자들에게 되파는 시장으로 자영업자의 체감경기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골목 곳곳에는 업소형 냉장고부터 횟집 수족관, 고깃집 불판, 스테인리스 냄비, 의자 등이 먼지와 함께 산처럼 쌓여 있었다.
“물건이 언제 나갈지 몰라 최상급인 중고만 선별해 받아요. 창업하려는 사람이 없어 물건을 들여다 놓을 공간조차 없어요. 창업과 폐업이 순환되지 않다 보니 여기도 불황입니다.” 황학동에서 15년째 주방용품을 팔고 있는 A씨(56)는 “정부에서는 1분기 깜짝 성장했다고 좋아하는데 골목 상권은 코로나19 때보다 체감 경기가 더 바닥을 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시절 배달 장사를 위해 대거 팔렸던 튀김기와 오븐 등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며 “그때는 젊은 사장들이 문을 닫았는데, 지금은 긴 업력으로 코로나19를 버틴 50~60대 노장들이 불황에 문을 닫는데 (그들이) 어디로 갈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저녁 방문한 서울 관악구 전통시장인 신사시장에는 ‘임대 문의’ 스티커를 붙인 공실이 곳곳에 즐비했다. ‘우수 점포’라는 인증 마크가 걸린 공실 인근에는 당일 대출과 간편 대출을 내건 사업자 대출 전단이 곳곳에 뿌려져 있었다. 노래방 간판은 불이 꺼져 있었고, 골목에는 폐업을 앞둔 의류 매장의 ‘땡처리 세일’을 알리는 전단이 붙어 있었다. 부동산 공인중개사 심재익씨(59)는 “서민들이 쓸 돈이 없다 보니 분식집 같은 곳만 찾고, 점포들이 버는 수익은 임대료 등의 고정비를 따라가지 못해 폐업이 늘고 있다”며 “목 좋은 자리인데도 점포를 보러 오는 사람조차 없는 걸 보면 2008년 겪은 글로벌 금융위기 시절처럼 장기 불황 초입에 들어간 것 같다”고 말했다.
시장에는 동행축제 행사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곳곳에 휘날렸다. 하지만 장을 보는 이들은 가격표를 보자 선뜻 물건을 담지 못했다. 동행축제는 중소기업·소상공인의 제품을 알리고 내수 활성화를 위해 중소벤처기업부와 지자체 등이 함께하는 행사로 매년 5월 한 달간 열린다. 식당을 운영하는 B씨(58)는 “올해는 가정의달 특수조차 없다. 코로나19가 끝나자 진짜 지옥문이 열렸다”며 “빚을 생각하면 가게를 접고 싶지만, (빚을) 일시 상환할 수가 없어 버티고 있다. 코로나19 때 받은 대출이 족쇄가 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 코로나 끝나자 지옥 시작, 폐업 위해 퇴직금 깨
골목 상권이 곪아가고 있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영업을 접고 손실을 감수했던 자영업자들이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 이후에도 허덕이고 있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 등 ‘3고’ 위기 속 경기 침체로 자영업자들이 폐업으로 내몰리고 있다.
지난해 최다 규모를 기록한 소상공인 폐업에 따른 ‘노란우산’ 공제금 지급 규모는 올해도 20%가량 급증했다. 노란우산은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생활 안정과 노후 보장을 위한 공적 공제 제도다. 자영업자에게는 퇴직금 성격의 자금으로 은행 대출 연체나 국세 체납 시에도 압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폐업 사유 공제 규모가 커진 것은 경제 여건 악화로 한계 상황에 몰리는 소상공인이 그만큼 늘고 있다는 의미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실이 중소벤처기업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올해 1∼4월 노란우산 폐업 사유 공제금 지급액은 544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9.9% 늘었다. 폐업 사유 공제금 지급액이 지난해 1조2600억원으로 역대 최고 수준을 찍은 후 올해도 증가 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외식업체 폐업률이 코로나19 때보다 더 높다는 분석 결과도 나왔다. 핀테크 기업 핀다의 상권분석 플랫폼 ‘오픈업’에 따르면 지난해 외식업체 81만8867개 중 폐업한 곳은 17만6258개로 폐업률이 21.5%에 달했다. 5곳 중 1곳 이상 문을 닫은 것으로, 코로나19가 가장 심했던 2020년(9만6530개)보다 82.6% 늘었다. 핀다 측은 “코로나19 시절보다 지금이 더 힘든 시기라는 사실이 데이터로도 확인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영업자들은 엔데믹 이후 내수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매출이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않는다고 토로한다. 실제 지난해 소비는 20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뒷걸음치며 2년 연속 줄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소비 동향을 보여주는 소매판매가 1년 전보다 1.4% 감소했다. 2003년(-3.2%) 이후 가장 큰 감소 폭으로, 2022년에 이어 2년째 마이너스 성장세다.
■ 1분기 깜짝성장에도 소비심리 올해 첫 비관전환
지난해 상용근로자 임금이 2.8% 오를 동안 물가는 3.6% 상승했다. 소비자들은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는 처지다. 부진한 소비는 올해도 계속될 전망이다. 지난 5월 23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1분기 가계동향 조사 결과’를 보면 1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512만2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 오르는 데 그쳤다. 여기에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실질 소득은 오히려 1.6% 줄었다. 특히 일해서 버는 돈, 실질 근로소득만 보면 3.9% 줄어 1분기 기준으로 통계 작성 이후 최대폭으로 감소했다.
한국은행이 지난 5월 21일 발표한 ‘소비자동향 조사 결과’에서도 5월 소비자심리지수는 98.4로 전월 대비 2.3포인트 하락했다. 소비자심리지수는 소비지출·수입 등 경제 상황에 대한 심리를 종합해 보여주는 지표로 기준선인 100보다 낮으면 소비 심리가 부정적인 것으로 해석한다. 이 지수는 작년 12월(99.7) 이후 5개월 만에 기준선인 100 아래로 떨어지고, 지수 하락폭도 지난해 9월(3.5포인트) 이후 가장 컸다.
내수 시장이 위축되는 가운데 코로나19 유행 때 자영업자들이 생존을 위해 받은 대출이 이제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다. 금융당국은 코로나19 시기 자영업자에게 대출을 늘리며 대출 만기와 원리금 상환 유예 등을 지원했는데, 지난해 9월 원리금 상환 유예 혜택이 끝났다. 만기 연장 지원도 내년 9월까지다.
대출 규모가 불어난 상황에서 금리 상승 부담에 원리금 상환 시기까지 돌아오면서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자영업자들이 늘고 있다. 서울의 중심 상권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C씨(52)는 빚부터 갚기 위해 폐업을 준비 중이다. 코로나19 때 빌린 대출의 이자가 2.3%대에서 5.9%대로 오른 가운데, 원리금 상환 시기가 닥쳤다. 그는 “가게를 내놓고 새 임차인에게 받을 권리금으로 대출을 갚으려고 했는데 가게를 보러 오는 사람이 없다”며 “남은 임대 기간 내 임차인을 못 찾으면 5000만원에 달하는 권리금을 날리는 것은 물론 800만원을 웃도는 원상 복구 비용까지 내야 해 자칫하면 빚만 더 늘어날 수 있어 고민”이라고 했다. 그는 “폐업을 하면 금리 등 각종 혜택이 끝나 점포를 비워둔 채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개점휴업’으로 연명하는 이들이 많다”며 “(우리가) 스스로 채무를 해결할 수 있도록 대출상품의 거치 상환 기간을 장기간 늘려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자영업자 대출 상품은 ‘2년 거치 3년 상환’이 대부분인데 해당 기간을 연장해 달라는 주문이다.
자영업자들의 부담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높은 금리와 소비 부진 등을 빚으로 버텨온 자영업자들의 금융기관 대출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4년여간 50% 이상 늘었다. 연체로 상환에 한계를 드러낸 자영업자의 대출 규모도 2배로 커지는 등 부실 위험 징후도 뚜렷해지고 있다.
신용평가기관 나이스 평가정보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자영업자의 금융기관 대출은 1112조7400억원에 달했다. 코로나19 유행 직전 2019년 말과 비교해 대출금액이 51% 늘었다. 특히 3개월 이상 연체가 발생한 ‘상환 위험 차주’의 대출 규모는 같은 기간 15조6200억원에서 약 2배인 31조3000억원으로 뛰었다. 3개 이상의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려 추가 대출이나 돌려막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자영업 ‘다중채무자’의 상황은 더 좋지 않았다. 다중채무 개인사업자는 172만명으로 전체 대출자 중 절반 이상(51%)을 차지했다. 이들의 대출잔액은 689조로 전체 개인사업자 대출잔액의 62%에 달했다.
■ 자영업자 3명 중 1명 이상 환갑, 퇴로가 없다
빚 돌려막기로 연명해온 자영업자들이 한계 상황에 직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은행은 작년 12월 금융안정보고서에서 “높은 대출금리 부담이 지속하는 가운데 자영업자의 소득 여건 개선이 지연되고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 취약 차주를 중심으로 부실 규모가 확대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은 전체 취업자 중 23%가 자영업자다. 규모만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8위다. 미국(6.6%)의 3.6배, 일본(9.8%)의 2.4배에 달한다. 경제위기를 겪을 때마다 일터에서 쫓겨난 이들이 노동시장에 다시 진입하지 못하고 창업에 나선 결과다. 사실상 새 일자리를 만드는 데 미흡했던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자영업자들이 몸으로 떠받친 셈이다.
이들은 코로나19 때도 공공의 이익을 위해 영업금지·제한 등 사회적 거리 두기의 경제적 부담을 오롯이 떠안았다.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늦었음에도 세계적으로 우수한 코로나19 방역 국가로 평가받은 데에는 자영업자들의 희생이 적지 않았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자영업자들이 어려움이 가중되던 2021년에는 22명의 자영업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영업은 인구 고령화 속 취업할 곳이 없는 고령자를 위한 사회안전망 역할도 하고 있다. 60세 이상 자영업자 수가 지난해 전년보다 7만4000명 증가한 207만3000명을 기록하며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60세 이상 비중도 전체 자영업자 중 36.4%로 역대 가장 높았다. 이는 같은 연령대 임금근로자(17.0%)보다 19.4%포인트 더 높다.
은퇴 후 대체할 일자리와 소득처를 찾지 못한 고령자들이 생계형 창업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자영업자 부실이 가파르게 진행되면 가계는 물론 금융시장과 사회·경제 전반에 적지 않은 충격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유다. 자영업자가 취약계층으로 밀려나면 한국사회는 당장 이들을 떠안을 만한 공적 인프라와 비용에 대한 정책적 대안을 갖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 한은 금리 11번 연속 동결 “물가·환율 불안”
앞으로가 더 문제다. 얼어붙은 체감 경기 속 소비 부진과 인건비·원자잿값 상승, 고금리 등으로 서민과 자영업자 모두 힘든 상황이 계속될 수 있다. 총선 후로 미뤄둔 공공요금 인상도 줄줄이 예고돼 있다. 정부는 지난 3월에 연간 물가의 정점을 찍고 하반기로 갈수록 빠르게 안정화될 것이라고 했지만, 현재 물가 흐름은 정부 희망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수입품 가격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환율도 출렁이고 있다. 환율이 수입 원자재 가격이 올라 1~2개월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반영된다. 고물가 상황이 좋아질 수 있는 요인을 찾기가 어렵다. 가계를 짓누르고 있는 고금리 기조가 조기에 바뀔 가능성도 크지 않다.
미국 금리 인하 시점의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애초 미국이 6월에 인하를 시작해 올해 총 3번 기준금리를 내릴 것으로 봤다. 지금은 올해 9월에야 금리 인하를 시작할 것이란 예상이 우세하다. 한국도 빨라야 올해 4분기에나 금리 인하를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은행은 지난 5월 23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3.50%로 묶어두며 통화 긴축 기조를 이어갔다. 작년 1월부터 1년 4개월 동안 11차례 연속 동결이다. 한은이 긴축 기조를 이어가는 데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아직 목표 수준(2%)까지 충분히 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일찍 금리를 내리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환율·가계부채·부동산 불씨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한국은행은 올해 소비자물가상승률 전망치를 기존 2.6%로 유지했다. 금통위는 “향후 물가 경로에는 국제유가와 환율 움직임, 농산물 가격 추이, 성장세 개선의 파급 영향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게다가 이날 한은은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2.1%에서 2.5%로 올려 ‘경기 부진을 막기 위한 조기 인하’의 명분도 사라졌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 증가세가 이어져 지난 1분기 성장률이 1.3%로 시장 예상을 웃돎에 따라 연간 전망치를 조정한 것으로 보인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올해 5월 30일 개원하는 제22대 국회에 ‘금융부담 완화를 위한 금융지원 확대’를 최우선 정책으로 요청할 예정이다. 차남수 소상공인연합회 정책본부장은 “취업 등의 퇴로나 사회안전망이 없어 어떻게든 원금을 갚으며 자영업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시장 전반의 구조를 봤으면 한다”며 “정부는 원리금 상환 유예와 대출 문턱을 낮추는 종합적인 정책으로 자영업자들이 취약계층으로 전락해 사회 문제로 번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소관 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는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행정안전부 등과 함께 범부처 차원의 종합 대책을 준비해 올해 6월 중 발표할 예정이다. 중기부 관계자는 “관계부처와 협업해 고물가·고금리 등에 따른 경영 애로 해소, 소상공인 안전망·재기 지원 강화안을 고민하고 있다”며 “경쟁력 있는 소상공인은 기업가형으로 육성하는 등의 합동 정책을 마련하겠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도덕적 해이는 경계하되 다중채무자 재기를 위한 채무 재조정 등 선별적·맞춤형 지원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이를 위해선 차주에 대한 정확한 실태 파악과 진단이 선행돼야 한다. 이윤수 서강대 교수(경제학)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일괄적으로 무조건 대출을 연장해 주다 보니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며 “정부는 차주의 상환 여력을 구별해 선별적으로 채무를 재조정하고 상환 여력이 없는 차주에게는 폐업을 지원해 퇴로를 열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은성 기자 ke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