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총선처럼 정부·여당이 감세 정책을 미끼로 유권자들을 낚으려는 선거를 경험해본 적이 없다. 종합부동산세와 금융투자소득세, 상속세 등의 선심성 공약에는 대부분 금융·부동산 자산으로부터 고소득을 누리는 이들의 감세 내용이 담겨 있다. 정부·여당이 제안한 감세 공약이 실현될 수 있을지는 선거 결과가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다행스러운 것은 납세자이며 투표권자인 시민들의 반응이다. 시민들이 어떤 조세·재정 정책을 추진하는 정당에 투표할 의향이 있는지 참여연대가 조사한 결과 10명 중 6명은 ‘부자 감세’를 추진하는 정당에 투표할 의향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 확대를 위한 증세가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도 엿볼 수 있었다.
정부·여당이 제시한 감세 공약이 시민들의 불신을 받고 있지만, 예외적으로 한 가지 공약은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힘이 제안한 부가가치세 공약이다. 해당 공약은 두 가지 부문으로 구성돼 있다. 부가가치세 간이과세자 기준을 연매출 8000만원에서 2억원으로 올리겠다는 내용과 생필품에 적용되는 세율을 한시적으로 10%에서 5%로 내리겠다는 것이다.
■ 부가가치세 공약 진지한 검토 필요
부가가치세는 지난해 기준 약 74조원의 세수입을 가져왔다. 소득세(약 116조원), 법인세(약 80조원)와 함께 재정을 뒷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세목 중의 하나다. 올해 예산 기준 부가가치세는 81조4000억원으로 전체 세수(367조3000억원)의 4분의 1가량을 차지한다. 지난해 56조원의 세수결손이 난 상황에서 꼭 필요한 재정지출을 유지하기 위해 감세가 아니라 증세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부가가치세에서 개인사업자는 일반과세자와 간이과세자로 나뉜다. 국민의힘의 부가가치세 공약 첫 번째 부분은 간이과세자 기준을 높여 대상자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것으로, 간이과세를 선호하는 소규모 사업자들의 표를 노린 전형적인 선심성 공약이다. 거래에서 세금계산서를 발급하지 않는 간이과세자가 늘면 부가가치세의 정상적인 과세기반이 무너진다. 바람직하지 않다.
부가가치세 공약의 두 번째 부문은 생필품에 대한 세율 인하 부분이다. 국민의힘이 가공식품 등 서민 밀접 품목에 부가가치세율의 한시적 인하를 요구하자 대통령실과 기획재정부가 지원 효과, 재정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검토할 예정이라고 했다. 대상은 출산 및 육아용품, 라면·즉석밥·통조림 등 가공식품, 설탕·밀가루 등 식재료에 대한 것으로 부가가치세를 한시적으로 10%에서 5%로 인하하겠다는 것이다.
일단 많은 전문가가 반대하고 있다. 물가 안정에 대한 효과는 의심스러운 반면 세수 감소 등 부작용은 명확하기 때문이다. 부가가치세는 모든 재화와 용역을 차별하지 않고, 모든 거래에 동일하게 10% 세율을 부과한다.
부가가치세는 1977년 도입 이후 현재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미가공 식품 등 일부 생활필수품을 면세 대상으로 두고 있을 뿐이다. 여기에 사치품으로 분류되는 귀금속과 자동차 등에는 개별소비세를 추가로 적용하고 있다. 담배와 주류 등 특별한 재화의 경우에는 담배소비세, 주세 등으로 특별히 따로 관리한다. 한국의 소비세 구조는 부가세를 기본으로 하고 개별소비세 등으로 차등을 주는 체계를 갖고 있다. 이에 따라 국민의힘이 요구하는 일부 품목만 부가가치세 세율을 조정하는 방법은 현재 우리나라의 소비세 체계에는 없다.
■ OECD 국가 대부분 생필품에 경감세율 적용
소비세는 소득세와 비교해 납세자들의 세 부담에 대한 자각이 약해 조세저항이 작다는 특성이 있다. 이 때문에 수입목적의 재정조세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기에 적절하다. 정부는 소비세가 가진 이러한 성격을 지나치게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 소비세의 비중이 커지면 조세체계 전체적으로 역진적인 성격이 강화된다. 저소득층은 소비성향이 높은 관계로 소비에서 차지하는 부가가치세의 부담 비율이 높다. 특히 자녀가 많은 가정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소득에 역진적인 부가가치세의 성격을 보완해주는 조처가 필요하다.
소득이 증가할수록 한계소비성향이 낮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때문에 생활필수품 등에 대해 경감세율을 적용하면 소득분배의 역진성 문제에 잘 대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번에 제안된 바와 같이 주요 생필품의 부가가치세율을 5%로 인하하면 부가가치세의 소득분배에 대한 역진성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경우 대부분 생활필수품에 대해 경감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부가가치세는 10%의 표준세율을 갖고 있다. 유럽에서 부가가치세를 활용하고 있는 주요 3국인 영국과 프랑스, 독일의 표준세율 수준과 비교할 때 50% 수준이다. 주요 3국은 20% 정도의 부가가치세 표준세율을 도입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부가가치세는 경감세율을 활용하지 않고 일부 품목에 면세제도를 활용해 실효적인 세율은 이 나라들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차이가 작다.
학계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부가가치세 실효세율 수준은 이들 3국의 부가가치세 실효세율 수준의 69% 정도에 해당한다. 우리나라가 부가가치세의 세 부담 수준이 낮다고 해도 소득세 및 법인세의 세 부담도 이들 나라보다 낮은 만큼 이 나라들과 비교할 때 전체 세수입에서 소비세가 담당하고 있는 비중이 작은 나라라고는 말할 수 없다. 낮은 부가가치세 세율 수준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의 전체 조세수입에서 법인세와 소득세로 대표되는 소득세 분야의 세수입 기여도와 부가가치세와 교통에너지환경세, 주세, 담뱃세 등 소비세 분야의 세수입 기여도는 균형을 이루고 있다.
소득계층별로 조세 부담이 공평해지려면, 즉 능력과 세 원칙에 적합한 과세가 이루어지려면 직접세 분야에서 누진세율 구조에 입각한 적절한 수준의 과세가 이루어져야 한다. 동시에 조세체계에서 간접세 분야의 비중이 작지 않아 간접세 분야에서도 세 부담의 역진성을 무마해주는 장치가 필요한데, 가공 식료품 등에 대한 부가가치세 세율 인하가 이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출산 및 육아에 필요한 재화에 대한 세율 인하를 통해 소비자들이 낮은 가격으로 재화를 소비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저출산에 대한 대책으로 의미가 있다. 영국은 유아용품 부가가치세를 파격적으로 영세율, 즉 0%의 부가가치세 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김유찬 포용재정포럼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