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잔 뒤 바리의 일대기지만 모든 것을 다 보여주지 않는다. 잔 뒤 바리가 처한 상황, 감정, 루이 15세에 대한 진심 어린 사랑 등 그의 내면에 깊숙이 초점을 맞춘다. 왜 잔의 삶을 미화했을까.

/㈜태양미디어그룹
제목: 잔 뒤 바리(Jeanne du Barry)
제작연도: 2024
제작국: 프랑스
상영시간: 116분
장르: 역사, 드라마
감독: 마이웬
출연: 조니 뎁, 마이웬, 벤자민 라베른, 멜빌 푸포, 피에르 라샤르
개봉: 2024년 4월 3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수입: ㈜태양미디어그룹
배급: ㈜라이크콘텐츠, ㈜태양미디어그룹
고즈넉한 언덕. 그림 모델을 하는 소녀. ‘잔’이라고 불리는 그 소녀는 수도사와 요리사 사이의 사생아였다는 설명이 내레이션으로 나온다. 잔의 어머니 앤은 프랑스 두무소 가문에서 하녀로 일했다. 두무소 가문은 생트 오어 수녀원을 후원했고, 잔은 수녀원에서 10대를 보냈다. 영화는 그가 ‘에로티시즘’에 빠져 매춘부가 됐다고 설명한다. 우아한 설명이다.
실존 인물 잔 뒤 바리의 일대기
잔 뒤 바리는 실존 인물이다. 프랑스 혁명 전야, 루이 15세의 정부(情婦). 프랑스 왕국의 법도는 복잡해서 정부가 되려면 유부녀여야만 했다. 뒤 바리 백작은 매춘부인 잔을 국왕의 애첩으로 만들기 위해 자신의 남동생과 결혼시킨다. 일종의 정략이다.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은 뒤바리 백작이 전처와 사이에 낳은 아들 아돌프를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했다고 전한다. 아마도 아돌프가 결투 끝에 입은 상처로 사망했고, 잔 뒤 바리가 진심으로 슬퍼했다는 영화의 주장은 사실일 것이다. 어쨌든 잔 뒤 바리는 국왕을 사로잡았다. 국왕의 ‘바람기’는 끊임없었는데 잔은 정부 중에서도 으뜸인 ‘로열 미스트리스’ 자리를 꿰찬다. 왕비가 낳은 딸들은 그런 잔을 혐오하고 무시한다. 오스트리아에서 시집온 세손비 마리 앙투아네트에게도 잔과 대화를 하지 말도록 이간질한다.
영화는 잔 뒤 바리의 일대기지만 모든 것을 다 보여주지 않는다. 카메라는 잔 뒤 바리가 처한 상황, 감정, 루이 15세에 대한 진심 어린 사랑 등 그의 내면에 깊숙이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사에서 ‘가십’처럼 알려진 그의 사치, 방탕, 어리석음-프랑스 혁명을 피해 영국으로 피신해 있던 잔 뒤 바리는 단두대를 충분히 피할 수 있었지만, ‘설마 나까지 당하랴’라는 생각으로 돌아왔다가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처형당한 두 달 뒤 단두대에 끌려간다-은 비추지 않는다. 단두대 처형 사실도 내레이션으로 처리된 에필로그에서만 사정 설명 없이 무미건조하게 언급된다. 왜 잔의 삶을 미화했을까. 영화 감독이자 각본을 쓰고 주연 잔 뒤 바리 역까지 맡은 마이웬의 의도는 아마도 혁명의 광기에 휩쓸린 이 ‘비운의 여성’의 복권일 것이다.
역사사회학자 로버트 단턴에 따르면 프랑스 혁명을 이끈 것은 자유·평등·박애와 같은 그 어떤 고귀한 이념이 아닌 메스머리즘(동물성 자기(磁氣)를 활용하면 병이 나을 수 있다고 설파하는 돌팔이 의학)이나 정치 포르노 따위였다. 이를테면 루소의 대표작 <사회계약론>은 프랑스 혁명기에는 인기가 없었고, 이 시기 그에게 유명세를 안긴 책은 그의 정치 포르노 소설 <신 엘로이즈>였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근친혼을 한다든가, 루이 16세가 성적 불구였다는 등의 근거 없는 낭설이 대중의 분노를 자극해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영화에선 생략된 씁쓸한 뒷이야기
영화 속에서 전후 사정 이해에 도움을 주는 것은 왕비를 잃은 국왕이 매춘부 출신 여인을 총애하면서 궁정을 휩쓸고 지나갔을 추문·낭설 따위다. 이미 루이 15세 때부터 프랑스 혁명은 예견돼 있던 셈이다. 하나만 더. 루이 15세는 잔 뒤 바리의 마음을 얻기 위해 ‘흑인 소년’ 자모르를 시종으로 선물한다. 선물 상자 속에서 겁에 질린 얼굴로 나오는 아이는 너무나 뚜렷한 아프리카계 흑인인데 실제 역사 속의 자모르는 치타공 출신 벵골인이었다. 영화 속 자모르와 같은 외모일 리 없다. 영화는 엄격히 서 있는 근위병들 사이로 자모르와 잔이 술래잡기 비슷한 놀이를 하는 장면을 통해 프랑스 사회가 억압하고 있는 소수자/이방인을 재현(representation)의 대상이 아닌 주체로 묘사하려 했는지 모르지만, 자모르 역 캐스팅부터 ‘백인 아니면 유색인종’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영화에서는 거의 생략되거나 미화됐지만 보석과 사치를 좋아했던 잔 뒤 바리는 루이 15세의 사망 후에도 낭비벽을 버리지 못했다. 자모르는 프랑스 혁명 시기 급진공화파 자코뱅당에 가입했고, 잔 뒤 바리는 자코뱅과 관계를 끊지 않는다면 시종에서 해고하겠다고 협박했다. 자모르는 혁명 세력에 잔이 반혁명 세력을 돕는다고 밀고했고, 결국 잔은 단두대로 끌려간다. 자모르도 나중엔 잔과 공범 혐의로 투옥되는데 탈옥해 영국으로 도피했다가 나폴레옹 집권기가 지나 프랑스로 돌아와 천수를 누리다 세상을 떠났다. 영화에는 언급되지 않은 씁쓸한 뒷이야기다.
세기의 가정폭력 소송 주인공 조니 뎁의 스크린 복귀작

/㈜태양미디어그룹
영화를 보며 가장 눈에 밟혔던 배우는 방탕한 왕, 루이 15세 역을 맡은 조니 뎁이었다. 루이 15세는 잔 뒤 바리에 빠져 일생을 보내다가 64세에 천연두에 걸려 사망한다. 원래 주어진 배역 탓도 있겠지만 시종일관 내내 그늘진 얼굴이다. 분명 얼굴은 조니 뎁인데, 뭔가 혼이 빠진 듯한 느낌이었다. 감독도 일부러 염두에 두고 캐스팅한 걸까.
조니 뎁은 팀 버튼 감독의 페르소나로 <가위손>(1990)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10)에 이르기까지 성공 가도를 달렸다. 정점을 찍은 건 아무래도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해적왕 잭 스패로다. 그러다… 망했다. 정상에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조니 뎁의 세 번째 부인인 배우 앰버 허드(우리에겐 <아쿠아맨>(2018)의 공주 메라로 잘 알려져 있다)가 워싱턴포스트에 자신을 가정폭력의 희생자라고 주장하는 기명 기고문을 내면서부터다.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짧았다. 2015년 결혼한 뒤 두 사람의 이혼소송이 최종 마무리된 것은 2017년 1월 14일이었다. 언론 기고를 통한 ‘폭로’는 2018년 12월로 이혼한 지 만 2년 가까이 지나 나왔다. ‘폭로’ 후 두 사람의 삶은 각자 엉망이 됐다.
앰버 허드는 자신이 주장한 가정폭력을 증명하고자 몰래 찍은 동영상을 공개했다(이 동영상은 넷플릭스에 3부작으로 공개된 다큐멘터리에서 날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른 건 다 판단을 유보한다고 하더라도 조니 뎁이 자신의 분노를 참지 못하고 싱크대 선반의 그릇을 깨부순다든가, 마약을 하는 등의 ‘폭력성’은 효과적으로 드러났다. 소송은 2022년까지 이어졌는데 비공개로 진행한 재판내용은 주고받은 단어의 ‘뉘앙스’까지 다 인터넷과 가십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저런 종류의 소송 결말이 다 그렇지만 누구도 완벽하게 승리하진 못했다. ‘아내 학대범(wife-beater)’이라는 표현을 썼다며 조니 뎁이 영국 언론 더선에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에선 졌고, 앰버 허드 본인에 대한 페어팩스 카운티 소송에서 조니 뎁이 이겼다. 그것도 아주 크게. 배심원들은 앰버 허드가 가정폭력을 입증 못 했으니 그가 주장한 혐의들은 전부 허위이고, 악의로 조니 뎁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결론 냈다. 앰버 허드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포함해 1035만달러를 내야 하는 처지가 됐고, 2022년 7월 앰버 허드의 항소가 최종기각되며 세기의 재판은 마무리됐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