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랭킹 15위 안으로 끌어올려야…“시간 많이 남아” 본격 승부 걸어
“내년이면 프로 데뷔 20주년이다. 19년차인 올해는 파리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삼았다.”
전 세계 여자골프 투어에서 통산 64승을 거둔 베테랑 신지애(36)는 위대함을 넘어 경이로움 그 자체다. 한국 여자골프의 전설 박세리(47)의 성공을 보며 골프채를 잡은 ‘박세리 키즈’의 선두주자인 신지애는 같은 또래 선수들이 대부분 은퇴한 지금도 변함없이 세계정상급 기량을 발휘하고 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21승을 거둔 박인비를 비롯해 최나연, 김하늘, 유소연, 이보미 등 스타 선수들이 은퇴 선언, 또는 그 순서를 밟으며 선수생활을 정리하고 있지만 신지애는 여전히 띠동갑 아래 후배들과 겨루며 그 역시 전설로 거듭났다. 신지애는 세계랭킹 톱 50위 이내 선수 중 최고령이다.
한국, 미국, 일본 투어에서 최고 선수로 명성을 날리고 아시아 선수 최초로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에 오른 신지애는 올해 자신에게 힘을 불어넣을 활력소로 파리올림픽을 정조준했다. 2022년 여름 세계랭킹 80위까지 밀려났던 신지애는 2023년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 2승, 호주 여자투어 1승에 US여자오픈 공동 2위, AIG 여자오픈 3위 등 메이저대회 호성적을 더해 지난해 말 세계랭킹 15위로 뛰면서 파리올림픽 도전 목표를 현실로 만들었다.
신지애가 오는 8월 개최되는 파리올림픽 여자골프에 국가대표로 나가기 위해선 현재 18위인 세계랭킹을 마감 시한인 6월 24일까지 15위 안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올림픽 골프에는 국가별로 세계랭킹 상위 2명씩, 총 60명이 출전하는데 세계 15위 이내 강자들은 한 국가당 최대 4명까지 더 나갈 수 있다. 현재 한국선수 중 고진영(6위), 김효주(9위)가 꾸준히 세계 톱 10을 지키고 있어 신지애는 우선 15위 진입이 목표다.
세계랭킹 포인트 많은 미국 투어 노려야
올림픽 도전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힌 뒤 신지애는 새해 벽두부터 세계랭킹 포인트를 쌓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동계 훈련기간에 전훈지에서 열린 호주여자골프 빅오픈(2위)에 나갔고, 유럽여자골프투어(LET) 아람코 레이디스 인터내셔널(공동 60위)을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에도 다녀왔다. 이어 싱가포르에서 열린 LPGA 투어 HSBC 위민스 월드 챔피언십(공동 41위)에 나갔고, JLPGA투어 V포인트-에네오스 골프 토너먼트(3위)와 LPGA투어 퍼힐스 박세리 챔피언십(공동 5위) 참가차 일본과 미국을 오갔다.
많은 대회 출전이 랭킹 상승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세계랭킹은 최근 2년간 대회 성적으로 얻은 랭킹점수를 합산해 출전대회 수로 나눈 ‘평균값’으로 순위를 매긴다. 세계랭킹 포인트가 높은 큰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게 최상의 방법이고, 오히려 나쁜 성적을 거두면 출전 경기수만 늘리게 돼 평점 하락을 감수해야 한다. 한국, 일본 대회보다는 강자들이 많이 나오는 미국 투어에 걸린 랭킹포인트가 많기 때문에 수시로 해외대회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신지애는 지난 3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열린 LPGA투어 퍼힐스 박세리 챔피언십에 나가기 위해 ‘지인 찬스’를 썼다. LPGA투어 시드가 없어 출전 자격이 없는 그는 이 대회에 나가기 위해 주최자인 박세리를 졸라 추천선수 자리를 받아냈다. 앞서 세계랭킹 상위권자 자격으로 출전한 사우디, 싱가포르 대회에서 기대에 못 미쳤던 신지애는 절실한 심정으로 얻은 박세리 챔피언십 카드를 제대로 살려 공동 5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냈다. 3라운드까지 공동선두를 달려 우승 가능성을 높였지만 최종일에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2005년 KLPGA 투어에 데뷔한 후 통산 21승을 거두고 2008년부터 미국으로 건너가 LPGA투어 11승을 쌓으며 깊은 인상을 남긴 신지애의 박세리 챔피언십 활약은 많은 현지 팬들을 감동하게 했다. 이 대회에서 우승을 다툰 세계 1위 넬리 코르다(미국)의 언니 제시카 코르다는 자신의 SNS에 “신지애는 한국, 미국, 일본, 유럽에서 모두 최고선수(#1)가 된 선수로 알고 있는데, 누가 팩트체크를 해달라”며 찬사를 보냈다. 비슷한 시기에 활약했던 제시카로서는 여전한 ‘방부제 실력’의 신지애가 경이롭게만 보였다.
이제는 팬들의 기억도 희미해졌겠지만 신지애는 KLPGA 투어에서 ‘파이널 퀸’으로 통했다. 대회 마지막 날이면 더욱 강해지는 집중력,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얻은 별명이었다. 국내 무대를 평정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지 3년 만에 세계 1위에 오른 신지애 돌풍에 현지 언론은 학생선수로 꿈을 키우던 시절 불의의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잃은 불우한 가정사를 극복한 그의 인간승리에 감동하며 찬사를 보냈다.
2013년까지 미국에서 11승(메이저 2승)을 거두며 승승장구하던 신지애가 2014년 일본으로 무대를 옮긴 것도 충격적인 뉴스이자, 큰 화제였다. 모두가 꿈꾸는 LPGA를 포기하고 홀아버지와 두 동생 등 가족과 가까이하기 위해 JLPGA투어로 옮긴 신지애는 그로부터 지난 10년 동안 일본에서 28승이나 거두는 저력을 뿜어냈다.
“올림픽 도전은 내게 에너지 드링크”
일본 진출 후 매년 우승하다가 부상 탓으로 우승하지 못한 2022년부터 서서히 그의 경기력도 쇠퇴하는 듯싶었으나 오히려 더욱 맹렬한 기세로 살아나 생애 첫 올림픽 출전을 노리는 자리까지 왔다. 골프는 신지애의 전성기가 지난 2016년 리우올림픽부터 정식종목으로 부활했기에 신지애는 출전 기회가 없었다. 팬들은 신지애가 젊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꿈을 이루길 열렬히 응원하고 있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도전 그 자체가 의미가 크다는 마음의 각오도 하고 있다.
신지애는 올림픽 출전을 100% 확신하고 있다. 지난 4월 3일 제주도 서귀포 테디 밸리 골프&리조트에서 열린 2024 KLPGA투어 국내 개막전 두산건설 위브챔피언십 공식 기자회견에 나선 신지애는 “올림픽 도전은 확신이 없었다면 시작하지도 않았다”며 “목표를 설정한 만큼 꼭 이룬다는 생각으로 그만큼 열심히 하고 있다. 실은 세계 15위 턱걸이가 아닌 그 이상 더 높은 순위로 올림픽에 나가는 걸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진영, 김효주 외에 현재 세계 15위인 양희영(35)까지 4명 모두 파리올림픽에 가자는 뜻이다.
신지애는 결과보다 과정에 충실하자는 좌우명 아래 한결같이 혹독한 훈련과 노력으로 20년 넘게 최정상 엘리트 선수로 뛰어왔다. “올림픽을 향한 도전은 내게 에너지 드링크처럼 힘을 내게 한다”는 그는 “후배들도 안주하지 말고 더 강한 무대에 도전하며 발전 과정, 진심, 방향성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제 랭킹이 1년 전만 해도 70위였다”는 그는 자신의 노력이 같이 달려가는 선수들에게 좋은 자극이 되고, 그 영향력이 후배들에게도 닿기를 바란다는 마음도 잊지 않았다.
지난 3월 박세리 챔피언십 우승 좌절 이후 “아직 3월이다. 시간이 많이 남았다”며 아쉬움을 달랜 신지애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승부를 건다. 4월 18일부터 미국 텍사스에서 열리는 LPGA 시즌 첫 메이저대회 셰브론 챔피언십에 출전하고, 5월엔 JLPGA투어 메이저대회 살롱파스컵, 6월엔 US여자오픈에 잇따라 참가한다. 랭킹포인트가 많이 걸린 큰 대회들인 만큼 여기서 결판을 낸다는 굳센 각오로 ‘위대한 도전’ 길에 오른다.
<김경호 선임기자 jerom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