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나부터 잘해야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용서하지 않은 종의 비유’(1629, 캔버스에 유채, 투르미술관 소장)

‘용서하지 않은 종의 비유’(1629, 캔버스에 유채, 투르미술관 소장)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내로남불)’이라는 말처럼 우리는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지만 남은 한도 끝도 없이 깎아내린다. 자기애가 너무 강해 자신을 비판하지는 못하지만 남의 허물은 객관적인 시선이라는 핑계하에 비판한다. 남을 칭찬하는 데는 야박하지만 남을 비판하는 일에는 열을 내는 이유가 자기는 비판하는 사람보다 더 올바른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다. 그래서 자기가 하는 일은 매사에 옳고 남이 하는 일은 매사에 틀리다.

자신에게 관대한 사람의 최후를 그린 작품이 클로드 비뇽(Claude Vignon·1593~1670)의 ‘용서하지 않은 종의 비유’다.

왕관을 쓴 남자가 쿠션에 기대앉아 손가락으로 노인을 가리키고 있고, 2명의 젊은 남자가 노인의 팔을 잡은 채 그를 바라보고 있다.

왕관을 쓴 남자는 왕이다. 그는 담비로 덧댄 푸른색 코트를 입었는데 이는 대관식 복장이다. 쿠션에 기대 팔로 얼굴을 괴고 있는 왕의 모습은 편안함을 강조하면서 그의 관대함도 의미한다.

왕이 신하를 가리키는 오른손은 자비를 상징한다. 종교화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른손을 내밀고 있는 모습이 자비를 상징하는 데에서 비롯됐다. 왕 앞에 놓여 있는 가죽 표지 책과 무질서하게 놓인 서류들 그리고 동전은 노인이 젊은 남자들에게 붙잡혀 있는 이유를 나타낸다. 그렇다, 이 작품은 성경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용서하지 않은 종의 비유’는 마태복음 18장 23절부터 35절까지에 나오는 말씀을 그대로 표현한 것 같다. 성경에 따르면 한 신하가 국고금 조사 과정에서 1만달란트나 되는 막대한 빚을 진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왕 앞에 끌려 나온 늙은 신하는 빚 갚을 돈이 없었다. 당시 풍습으로 그가 가진 모든 소유의 재산을 팔아서 빚을 갚아야만 했다. 신하는 왕의 발치에서 ‘내가 다 갚겠습니다’라고 엎드려 빌며 간청했다. 이에 왕은 그를 불쌍히 여겨 그 엄청난 빚을 탕감해주었다. 그런데 용서를 받은 신하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신에게 소액의 빚을 진 친구를 만났다. 그는 갚겠다는 친구의 말을 무시하고 빚진 돈을 받을 때까지 감옥에 집어넣었다. 그 소식을 들은 왕은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긴 것처럼 너도 네 친구를 불쌍히 여겨야 할 것 아니냐”며 그 신하가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넣으라고 명령한다.

비뇽은 이 작품에서 신하가 국고금을 탕진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탁자에 놓여 있는 동전과 책 그리고 서류를 무질서하게 배치했다. 또 그는 신하의 팔을 잡은 젊은 남자들의 미소로 왕의 자비를 강조하고 있다.

남을 비판하는 일처럼 재미있는 일은 없지만 나에게 관대한 사람일수록 실수가 많은 법이다. 남을 보면서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올바름만 강조해서다. 남을 비판하는 일은 심심한 날에 소소한 재미일 수 있지만 남의 처지를 비난하기에 앞서 나부터 잘해야 한다.

<박희숙 작가>

박희숙의 명화 속 비밀 찾기바로가기

이미지
용산의 역경루
오늘을 생각한다
용산의 역경루
공손찬은 중국 후한 말 북방민족들이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 정도로 위세를 떨쳤던 화북의 군벌이다. 오늘날 베이징 근처 유주를 근거지로 세력을 키웠던 공손찬은 백마의종이라는 막강한 기병대를 중심으로 황건적과 만리장성 넘어 이민족들을 토벌하며 군세를 넓혀갔다. 탁월한 군사적 재능을 갖췄으나 성품이 포악했던 공손찬은 폭정을 일삼으며 민심을 크게 잃는다. 왕찬이 기록한 <한말영웅기(漢末英雄記)>에 의하면 공손찬은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본다는 이유로 부하를 죽이는가 하면 유능한 관료들을 쫓아내고 점쟁이를 측근에 등용하는 등 막장 행각을 벌였다. 하루는 백성들 사이에서 덕망 높았던 관리 유우를 저자에 세워놓고 ‘네가 천자가 될 인물이라면 비가 내릴 것이다’라고 말한 뒤 비가 내리지 않자 그 자리에서 죽여버렸다. 분개한 수만의 유주 백성들은 유우의 아들과 합세해 공손찬을 공격했고, 라이벌 원소와 이민족들까지 연합해 공격하니 공손찬은 고립무원에 처한다. 사방이 포위된 공손찬은 기주 역현에 거대한 요새를 짓고 농성에 들어가니 이 요새가 역경성이다. 자신의 남은 전력을 요새 건설에 쏟아부은 공손찬은 “300만석의 양곡을 다 먹고 나면 천하정세가 달라질 것이다”라고 말하고 외부와 연락을 끊은 채 향락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