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을 취재한 지 2년 6개월, 그사이 몇 번이나 당대표가 바뀌었다. 이준석 대표는 쫓겨났고, 김기현 대표는 사퇴했으며, 중간엔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이 있었다. 지금은 한동훈 비대위원장 체제다. 각자 정치 이력도 성격도 다르다 보니 기자들 질문에 답하는 스타일도 천차만별이었다.
한 위원장의 답변 방식은 그중에서도 독특했다. 비아냥, 반문 화법, 따발총처럼 쏘아대는 말투를 지적하는 게 아니다. 그런 건 SNL코리아 ‘한동안’ 캐릭터가 맛깔나게 그려놨다. 지난해 12월 법무부 장관 신분으로 한 위원장이 국회를 찾은 날의 일이다. 어느 기자(편의상 A매체 B기자라고 하자)가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한 입장을 묻자 그는 “민주당이 저한테 꼭 그거 물어보라고 시키고 다닌다고 그러더라”고 답했다. 기자가 ‘질문 사주’를 받은 것 아니냐는 검증된 적 없는 주장이었다.
당시 명품백 의혹은 이미 공론화돼 고발까지 이뤄진 사안이었다. 특검 얘기도 나오고 있었다. 사법 행정을 관장하는 장관 말고 누구에게 묻나. 하물며 그가 신임 비대위원장으로 유력 거론되던 시점이었고, 총선까지 반년도 남지 않은 때 여당 대표 입장은 국민 평가를 가름하는 기준이 될 수 있었다. 유의미한 질문 아닌가.
당시 B기자 옆에서 나도 “이준석 전 대표는 ‘한 장관은 특검을 총선 이후에나 하자고 할 것’이라던데 어떻게 생각하나”라고 질문했다가 한 소리 들었다. “이준석 대표더러 직접 물어보라고 하시죠.” 나는 이 대표 대신 질문한 게 아니라 그 같은 의견·의혹 제기에 대한 한 위원장 입장을 물은 것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독자 대신이었다. 한 위원장의 ‘고발 사주’ 의혹이 혹여나 진실로 밝혀진다면 ‘그래서 남도 그렇게 의심했구나’ 생각해야 하나.
비교적 최근인 지난 3월 25일엔 이런 일이 있었다. 한양대학교에서 선거대책위 회의를 마친 한 위원장이 ‘정권심판론’에 대해 “정말 심판받아야 할 사람들은 이재명과 조국”이라며 “(그런데) 국민이 (이들 범죄와 수사 내용을) 망각하고 있다”고 말하자, 기자들 사이에서 ‘조만간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날 계획으로 아는데, 같은 비판(범죄 사실 망각)이 나올 것 같다’는 물음이 나왔다. B기자였다. 한 위원장은 “A매체 B기자죠? 또 그런 질문을 한다”, “그냥 B기자의 비판 아닌가”라고 맞받았다.
그러고 보니 ‘한동훈 비대위’ 들어 국민의힘 당직자들은 백브리핑(비공식 브리핑)마다 매체와 기자 이름을 밝히고 질문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이런 일까지 시시비비하고 싶지 않아 슬며시 지나갔지만 생각해 보니 이상하다. 보통은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당대표 기자 간담회 때나 이렇게 했다. 마음에 안 드는 질문을 하면 그 기자 이름을 기억해 두려 하나.
한 위원장 팬클럽인 ‘위드 후니’에 “좌파 기자” 등 B기자에 대한 비난이 올라왔던데, 설마 한 위원장 본인이 ‘좌표찍기’를 유도하려 한 건 아니라고 믿고 싶다. 취임사에서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을 ‘오마주’한 그다. 트럼프가 CNN 기자를 콕 집어 비난하다가 입은 오명을 알 것이다. 굳이 ‘입틀막’하지 않아도 권력은 질문과 이견을 위축시킬 수 있다. 언론 압박이 별건가.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