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정사업본부가 발행한 ‘헌종가례진하도 병풍’ 기념우표 /우정사업본부 제공
조선 제24대 왕 헌종(1827~1849)은 1830년 왕세손에 책봉됐다. 1834년 제23대 순조(1790~1834)가 사망하자 8세에 즉위했다. 11세였던 1837년에 안동 김씨 영돈령부사 영흥부원군 김조근의 딸을 왕비로 맞았다. 효현왕후(1828~1843)는 10세 때였고, 4년 뒤 가례를 올려 왕후가 됐으나 2년 만인 1843년 16세에 소생 없이 요절했다.
헌종은 바로 다음 해인 1844년에 익풍부원군 홍재룡의 딸을 계비로 책봉했다. 효정왕후(1831~1904)로 14세였다.
조선시대 왕은 대개 왕세자 시절인 10대 초반에 혼인하고, 왕세자빈의 나이는 10대 초반이었다. 헌종을 비롯해 단종·성종·중종·명종·선조·인조·숙종·경종·영조·순조·철종·고종·순종 등은 왕 지위에서 혼례를 했다.
헌종은 가례의식을 마치고 다음 날 경희궁 숭정전에서 교서를 반포하고 문무백관의 진하(進賀)를 받았다. 진하는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신하들이 조정에 모여 임금에게 축하를 올리는 것을 말한다.
당시 모습을 그린 게 ‘헌종가례진하도 병풍’이다. 비단 위에 그림을 그리고 청록산수기법으로 색을 입혔다.
병풍은 총 8첩으로 이어져 있다. 각 첩의 크기는 가로 46.5㎝, 세로 112.5㎝다. 제1첩에는 예문관제학 조병구가 지어 올린 반교문(백성에게 널리 반포하는 글)이 적혀 있다. 제2~7첩에는 신하들이 왕에게 축하를 올리는 장면이 있다.
제8첩에는 정3품에서 정9품에 이르는 선전관청 관원들의 품계, 관직명, 생년, 과거급제년, 본관 등이 적혀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19세기에는 사실적인 궁궐의 모습을 재현한 궁궐도 제작이 발달했고, 국가의 경사스러운 의례를 마친 후 관원들이 기념화(계병)를 주문할 때 진하도를 선호했다고 한다.
진하도 형식은 크게 각 건물을 정면 부감(높은 곳에서 내려다봄) 시점에서 그린 ‘조대비 사순칭경진하도 병풍’ 계열과 사선 방향에서 부감하는 시점 계열 등 두 가지다.
‘헌종가례진하도 병풍’은 후자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1982년에 보물로 지정된 동아대 석당박물관 소장본과 2011년 보물로 지정된 경기도박물관 소장본 외에도 국립중앙박물관에 1좌가 더 있다. 조선시대의 계병은 좌목(자리의 차례를 적은 목록)에 이름이 오른 관원들의 숫자대로 제작해 나눠 갖는 게 관례였던 만큼 같은 내용의 작품이 여러 개 남아 있다고 한다.
우정사업본부는 ‘헌종가례진하도 병풍’ 기념우표 45만 장을 3월 20일부터 판매한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조선왕실의 문화가 지닌 위엄과 화려함을 정교한 색채화로 재현해 귀중한 역사적 자료로 평가받는 ‘헌종가례진하도 병풍’을 우표로 감상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기념우표는 가까운 우체국이나 인터넷우체국에서 구매할 수 있다.
<유희곤 기자 hul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