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먹을 모이만 챙겨 떠난 철새 클린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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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감독을 ‘알바’처럼 하다 해임…한국 체류일정 줄여 세금 줄일 궁리 의혹도

한곳에 오래 있고 싶지 않다. 갇히거나 매인 느낌을 싫어한다. 일을 끝내면 떠나려 한다. 하고 싶은 걸 못하면 답답해한다. 불편한 곳에서 불편한 사람과 있는 걸 견디지 못한다. 타인에게 뭔가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낯선 문화는 알기보다는 피하려 한다. 표정은 밝고 말은 명랑하다. 몸매는 호리호리하고 복장도 가볍다.

독일 언론 슈피겔이 최근 보도한 위르겐 클린스만 기사를 요약한 내용에다 기자가 지난 1년 동안 클린스만을 취재하면서 느낀 부분을 약간 넣어 정리했다. 이처럼 행동하는 동물은 무엇일까. 새? 고양이? 여우? 지난해 3월부터 지금까지 클린스만이 한국 남자축구 대표팀 감독으로 보인 모습은 아래와 같았다.

183일 미만 체류 땐 세금 22%로 ‘뚝’

클린스만은 국가대표 명단을 발표할 때 해외에서 하는 경우가 적잖았다. 국가대표 소집훈련, 굵직한 행사가 있을 때는 한국으로 왔지만 일이 끝나면 바로 미국, 유럽으로 갔다. 한국에 머무는 기간을 최소화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클린스만은 대한축구협회와 계약할 당시 세금이 포함된, 소위 ‘그로스’ 베이스 연봉으로 계약했다. 외국인은 한국에 183일 미만으로 머물면 소득의 22%만 세금으로 낸다. 그 이상을 체류하면 49.5%가 세금이다. 결국 한국 체류 일수가 183일 미만이면, 클린스만은 그로스 연봉의 28%를 더 가져갈 수 있다. 계약서를 들여다볼 수도 없고, 클린스만 머리로 들어갈 수도 없으니 확인할 방법은 없다. 어쨌든 클린스만은 아시안컵 직후 입국해서는 “아시안컵을 분석하겠다”고 해놓고 이틀 만에 떠났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아시안컵을 마치고 2월 8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아시안컵을 마치고 2월 8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클린스만은 25년째 미국에 살고 있다. 지금은 로스앤젤레스 남쪽 뉴포트 비치에 거주한다. 이곳은 그의 아내 고향이다. 클린스만은 서울에 머물 때면 호텔에 거주했다. 거처를 한군데로 정하지 않은 스타일이다.

클린스만은 재택근무를 선호했다. 훈련, 경기, 행사 등을 제외한 업무는 실내에서 하려 했다. 스스로 “노트북이 내 사무실”이라고 말했다. 국가대표 명단을 발표할 때도 외국에서 노트북을 켜놓고 비대면으로 하기도 했다. 클린스만은 혼자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한다. 독일 국가대표선수 시절에도 독방을 고집한 것으로 유명하다.

클린스만은 여러 곳을 다니면서 다양한 일을 했다. 해외 축구 방송에 출연해 패널과 해설가로 활동했고, 국제축구연맹(FIFA)에서 기술연구위원으로도 일했다. 하고 싶은 일도 다양했고, 시쳇말로 오지랖도 국제적으로 넓었다. 축구 감독이기보다는 축구 엔터테이너에 가까운 행태였다. “한국대표팀 감독도 알바(아르바이트) 중 하나가 아니냐”는 힐난이 나왔다. 이에 대해 클린스만은 “국가대표팀 감독은 프로팀 감독과 다르다”며 “해외로 자주 다니면서 세계축구 트렌드도 배우고 정보도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한국 주전급 선수들이 대부분 유럽에 있는데 굳이 한국에 오래 머물 이유는 없다”고도 했다. 한국프로축구는 안중에 없다는 말로 들렸다.

클린스만은 하고 싶은 것이라면 주변 분위기와 상관없이 하려고 했다. 그는 지난해 9월 웨일스에서 웨일스 대표팀과 평가전을 치른 뒤 상대 최고 스타 아론 램지(Aaron Ramsey)를 찾아 유니폼을 요청했다. 클린스만은 “아들이 경기 전에 문자를 보냈다. ‘램지 유니폼을 가져다줄 수 있느냐’고 물어 유니폼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한국은 당시 웨일스와 졸전 끝에 0-0으로 비겨 5경기 연속 무승을 기록했다. 굳이 유니폼을 얻고 싶었다면 외부로 드러나지 않게 구하면 될 일이다. 결국 클린스만은 유럽으로 가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협회 요구로 한국으로 끌려왔다. 공항 인터뷰도 탐탁지 않아 했다.

파주트레이닝센터도, 김치도 싫어

클린스만은 한국 국가대표팀의 파주트레이닝센터를 싫어했다. 슈피겔 보도에 따르면 그는 “독재자 김정은이 군림하는 어둠의 제국과 가깝다”고 말했다. 손님 국적과 상관없이 한국 식당에 무조건 김치가 나오는 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을 구사하지만 한국어는 거의 못 했다. 클린스만은 “단어를 읽을 수는 있지만 의미는 모른다”고 말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지난 2월 7일 아시안컵 4강에서 요르단에 패한 뒤 손흥민을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지난 2월 7일 아시안컵 4강에서 요르단에 패한 뒤 손흥민을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클린스만은 인터벌 달리기 등 거의 매일 땀을 쫙 빼는 훈련을 한다. 하루라도 이 훈련을 거르면 기분이 좋지 않다고 말한다. 훈련도 될 수 있는 대로 아침에 하는 걸 선호한다. 슈피겔은 “클린스만은 갇혀 있다고 느끼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클린스만은 날씬한 몸매를 유지한다. 언제라도 어디든 갈 수 있어 보이는 듯한 가벼운 옷을 즐긴다.

클린스만은 최근 대표팀 감독직에서 경질됐다. 협회는 더는 클린스만으로는 대표팀을 운영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무전술, 무전략, 전시형 공격축구, 자유방임형 리더십이 문제였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한국 국민과 한국 문화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 공감 능력 없이 마치 남의 일처럼 한국대표팀을 대하는 자세, 대표팀 감독 업무를 여느 알바처럼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클린스만은 아시안컵 4강에 들고도 경질됐다. 전임 파울루 벤투 감독은 아시안컵 8강에 그치고도 살아남았다. “사람이 싫으면 목소리도 듣기 싫다”, “며느리가 미우면 발뒤축도 밉다”는 말이 있다. 감성적으로 상대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상대가 어떤 걸 어떻게 해도 싫다는 뜻이다. 클린스만에 대한 한국인 느낌도 비슷했다. 어쨌든 계약 기간을 2년 정도 남긴 채 경질된 클린스만에게 협회는 수십억원 이상 위약금을 물어줘야 한다.

앞서 슈피겔 기사를 언급하면서 어떤 동물과 비슷한지 물었다. 후보군인 새, 고양이, 여우 중 하나의 특징을 인공지능 챗GPT에 물었더니 아래와 같은 답이 나왔다. “적응력이 뛰어나다. 사막, 열대우림, 도시, 황야 등 다양한 환경에서 산다.”, “이동 능력이 탁월하다. 이곳저곳을 쉽게 옮겨간다.”, “건강하고 활력이 있는 깃털을 가졌다.”, “아름답고 밝고 다양한 소리를 낸다.”, “다양한 행동과 특성을 지닌 동물이다.” 클린스만은 슈피겔을 통해 “나는 새처럼 날아다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새장에 갇히고 싶은, 같은 곳에 오래 머물고 싶은 새는 없다. “새와 같다”는 본인 말을 들어보니 그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알겠다.

새는 떠났다. 평생 먹고살 만한 모이도 챙겼다. 지금까지 머문 곳과 사람들이 불편해졌으니 다시 오지도 않을 것 같다. 이제 새가 떠나면서 남긴 걸 ‘뒤처리’하는 일만 남았다. 그건 날지 못하면 안달하는 새를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불러온 축구협회 몫이다.

<김세훈 스포츠부 기자 shkim@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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