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시대에 필요한 동료 시민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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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여당 총선장을 지휘할 사령탑으로 등판하며 ‘시민’을 ‘동료 시민’으로 호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어떤 의도로 그러는 것일까? 의견이 분분했다. ‘동료 시민’이라는 단어를 어디서 보았을까? 내가 떠올린 것은 제러미 리프킨의 책 <회복력 시대>였다. 미래학자인 리프킨은 여기에서 ‘분산형 동료 시민 정치로 대체되는 대의민주주의’라는 제목으로 한 챕터를 다룬다.

지현영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변호사

지현영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변호사

세계적 석학인 그가 던지는 화두는 그동안 국내에서도 상당한 주목을 받아왔다. 최근 그의 핵심 주제 중 하나는 ‘기후변화라는 글로벌 리스크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이다. 이 책 또한 인류가 대멸종을 피하고 삶을 지속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동안 산업 발전을 이끌어온 ‘효율성’이라는 미덕이 코로나19라는 위기를 통해 그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더 빠른 속도와 최적화를 추구하는 효율성을 통해 위대한 국가가 된 미국은 정작 필요한 때 항균비누와 화장지, 마스크를 구하지 못해 마비됐다.

효율성은 위기에 대처할 대안의 공간을 남겨놓지 않기 때문에 예측불허의 기후위기라는 리스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효율성은 중복과 다양성을 허용하는 ‘회복력’으로 대체돼야 한다. 회복력은 통제할 수 있는 조건 하에 작동하는 ‘효율성’과 달리 변화하는 상황에 대한 ‘적응성’을 추구한다. 회복력은 생물학적 시스템이 작동하는 자연스러운 방식이기도 하다. 회복력 혁명을 위해서는 이것이 작동할 수 있는 인프라의 확보와 구축이 중요하다. 저자는 회복력 인프라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분산형 동료 시민 정치’에 기반을 둔 생태 지역 거버넌스와 시민정치 그리고 생명 사랑에 기반을 둔 교육제도를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서 ‘동료 시민’이 등장한다.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의 최근 핵심 주제는 ‘기후변화’다. 기후 관련 재난 상황에서 정부가 중앙집중적으로 통제하고 관리하기는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리프킨은 ‘분산형 동료 시민 정치로 대체되는 대의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기후나 팬데믹과 관련한 재난 상황에서 정부가 중앙집중적으로 비상사태를 통제하고 관리하기는 쉽지 않다. 지역사회 중심으로 시민이 기동력 있게 대응하고 협력해야 한다. 극단적 재난 상황이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리프킨은 투표에만 반짝 참여하는 대의민주주의로는 기후위기 시대에 필요한 회복력을 구축하기 어렵고, 시민 개개인이 통치 과정의 긴밀한 일부분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리프킨의 ‘동료 시민’은 새로운 정치방식의 주역이자 모든 동료 생명체와 연결돼 지구를 공유하는 포용적 일원이다. 동료 시민 정치는 시민이 자신이 속한 지역사회, 생태지역의 보호에 관한 관여를 긴밀하게 하는 참여민주주의다.

한동훈 위원장의 “동료 시민” 운운이 표를 얻기 위한 총선 전략이 아닌, 녹록지 않을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지금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시민성을 담았으면 좋겠다.

<지현영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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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이후 준비해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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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