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를 비롯해 이낙연 새로운미래 인재영입위원장, 김종민·조응천·정태근 미래대연합 공동창당준비위원장 등 제3지대 인사들이 지난 1월 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개혁신당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4월 10일 총선을 앞두고 제3지대를 표방하는 정치세력들의 이합집산이 활발하다. 양당에서 탈당해 만들어진 신당만 해도 개혁신당(이준석), 한국의희망(양향자), 새로운선택(금태섭·조성주), 새로운미래(이낙연), 미래대연합(김종민) 등이 있을 뿐 아니라(이후 개혁신당과 한국의희망은 합당했다), 기존 양당 밖의 세력이었던 정의당과 녹색당도 선거연합정당을 추진 중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현 정치가 실패하는 핵심 원인으로 ‘양당 정치의 적대적 공존’을 꼽고 있으며 제3지대 정치가 성공해야 한국 정치가 바뀔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제3지대가 나름의 성과를 거둬 양당 정치에 균열을 내주기를 기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우리 정치가 실패한 이유가 정말 양당 중심의 정치 때문일까. 양당이 상대방을 조롱하고 악마화하며 ‘반사이익’을 노렸던 것은 맞다. 상대를 싫어하게 하면 이기는 게임이었다. 그로 인해 국민 대다수에게 효능감을 주지 못했고, 때론 넌덜머리가 나며 정치 전체를 혐오하게도 했다. 하지만 양당이 상대를 극단으로 몰지 않으며 미적지근한 대립을 이어가거나, 혹은 사적인 자리에선 오히려 끈끈한 사이를 유지하는 그런 정치를 한다고 해서, 정치가 국민의 삶을 개선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국민은 이미 체험해 알고 있다. 과거보다 양당 간의 대립이 심해졌지만, 지금뿐 아니라 과거에도 정치로 인해 우리 삶이 나아졌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가 근본적으로 실패한 이유는 ‘정책의 비주류화’에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다. 정치가 국민 삶을 개선하기 위한 수단은 오로지 정책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책을 중심에 두고 정치하지 않는 정당들이 계속 실패하는 것은 예견된 일이다. 심지어 선거가 다가오면 정치인들은 정책을 더욱 액세서리 취급을 한다. 실제로 실행할 생각도 없으면서 표에 도움이 되면 아무렇게나 던지는 취급을 받는 게 정책이다. 문제는 제3지대를 표방한 정치 세력들도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제3지대 대다수가 양당에 대한 비판과 ‘빅텐트 구성’ 등의 이합집산에만 열중할 뿐, 차별화된 의제와 잘 준비한 정책을 내세우는 사례가 극히 드물다. 이래서는 제3지대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양대 정당보다 정책을 다루는 실무자조차 부족하기 때문에 선거와 같은 정치적 이벤트가 끝나면 더욱 지리멸렬해질 가능성이 높다.
개혁신당, 노인 무임승차 폐지 내세웠지만…
제3지대가 정책을 전혀 발표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많은 이들에게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지난 1월 18일 발표한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폐지’가 떠오를 것이다. 개혁신당은 이 외에도 1호 공약 방송법 개정, 2호 공약 지역 간 교육격차 해소, 3호 공약인 자본시장 개혁 등의 정책도 발표했다. 이준석 대표가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폐지’를 발표한 뒤로 여러 반응이 뒤따랐지만, 대체로 ‘필요한 문제 제기’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무임승차를 처음 도입한 1984년과 비교해 고령층이 전체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현격히 달라졌고, 지하철을 운영하는 공기업들의 적자 폭이 계속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준석 대표가 강조했듯이 ‘비수도권, 비역세권 노인들과 형평성이 어긋나는 문제’도 있다. 개혁신당은 무임승차를 폐지하는 대신에 월 1만원의 교통카드 지급이라는 대안을 내세웠다.
하지만 개혁신당의 발표를 정책적으로 평가하면 실격에 가깝다. 노인 무임승차라는 정책을 둘러싼 환경이 달라졌고, 그 정책이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해서 “폐지하자”고 하는 것은 단편적인 접근이자, 이준석 대표가 그동안 해온 정치 행위와 매우 유사할 뿐이다. 방향을 기존 제도의 폐지로 잡았기 때문에 단편적인 대안이 나오기 쉽다. 이 연재에서 수차례 강조했듯 정책은 단건이기보단 조합(policy mix)이어야 한다. 또 노인들의 이동권을 증진하기 위해 기존 정책의 수정을 포함한 여러 정책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
문제를 제대로 다루려면 해당 정책 폐지를 넘어서 그 정책이 ‘본래 해결하려고 했던 문제’와 ‘현재 수행하고 있는 역할’에 대한 종합적인 고려가 선행돼야 한다. 지하철 무임승차는 노인들의 이동권을 현격하게 향상했고, 건강과 사회적 관계의 증진에도 기여했다. 노인빈곤율이 높은 한국사회에서 저소득층 노인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고, 이동권을 현저히 향상하는 역할도 했다. 기후재앙 시대에는 저탄소 정책의 의미도 더해지고 있다. 반면 비수도권, 비역세권에 거주하는 노인들에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단점도 있었다. 만일 개혁신당의 대안대로 월 1만원의 교통카드를 지급한다고 해도 비수도권에선 편리하게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수단 자체가 없는 경우가 많다.

정의당 김준우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월 23일 국회에서 녹색당 김찬휘 대표(왼쪽 두 번째) 등과 함께 녹색당과의 선거연합정당 추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히려 제3지대를 표방하는 또 다른 신당인 새로운선택의 노인 교통 공약은 개혁신당의 무임승차 폐지와 대조를 이룬다. 새로운선택이 지난 1월 23일 발표한 ‘노인 교통’ 공약을 보면 “노인 교통 문제는 사실 지방 교통 문제와 다르지 않”다며 “우선, 지방의 교통 인프라 붕괴 상황부터 해결하겠”다는 목표부터 밝힌다. 의미 있는 사례도 제시한다. 충북 괴산군의 면적이 경기도 수원시의 8배에 가까운데도 택시 수는 94분의 1, 버스 수는 40분의 1에 불과하다. 두 지자체의 인구 차이가 크긴 하지만, 노인인구의 비중은 괴산군이 압도적으로 높다. 괴산 같은 지역에서 촘촘한 버스와 철도 대중교통 체계를 갖추기 어렵기 때문에 새로운선택은 수요응답형 교통수단인 ‘지역우버와 콜버스 1만대 도입’을 대표 공약으로 내세웠다. 지역우버는 자가용으로 동네 노인의 이동을 돕는 부업을 허용하는 교통수단이고, 콜버스는 충북지역에 이미 도입된 수용응답형 버스로, 전화나 스마트폰으로 배차를 요청하면 소형버스가 이동하는 형태다. 새로운선택은 이 공약을 도입하기 위해 여객자동차운수사업을 개정해 수도권과 대도시를 제외한 지역에서 지역우버가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새로운 수단들이 기존 교통량의 얼마만큼을 대체할지, 지역별로 몇 대나 배치할지 등의 구체안까지 담았다면 더욱 좋았겠으나, 이 정도로도 다른 정당보다 훨씬 준비된 형태의 공약이다. 새로운선택은 무임승차가 가능한 노인의 연령을 점진적으로 70세로 조정하겠다고 하면서 무임승차에 사용되는 예산만큼 지역 교통체계 구축에 재정을 쓰겠다고도 밝혔다.
개혁신당이 발표한 다른 정책 대다수도 분석 자체가 민망한 수준이다. 예를 들어 개혁신당이 발표한 2호 공약의 핵심 내용은 기숙형 중고등학교인 ‘책임교육학교’ 도입이다. 천하람 개혁신당 창당준비위원장은 “각 도의 거점도시부터 책임교육학교를 확충해 지방 교육의 질을 높이고 사교육비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정책의 효용을 설명했지만, 이 학교의 핵심 특징이 ‘기숙형’이라는 점 외엔 아무런 설명이 없다. 게다가 기존 교육 분야의 여러 시도인 혁신학교, 마이스터고, 자율형 사립고, 특목고 등과 이 학교가 어떻게 다른지, 또 이 학교의 대상 인원과 예산 규모가 어느 정도라서 전체 교육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전혀 제시하지 않았다. 아주 기본적인 요건조차 갖추지 못한 정책인 셈이다.
반면 새로운선택이 발표한 정책인 ‘연금개혁안’, ‘중부담 중복지 사회 이행을 위한 조세제도 전면 개편’ 등을 보면 논쟁의 여지가 상당히 있지만,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고, 어떤 조합의 정책을 어떻게 추진하겠다는 등의 기본적인 요건을 갖추고 있다. 특히 한쪽의 주장만이 아닌, 정책적 타협책도 함께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연금개혁안에선 연금액의 수준을 높이지 말자(소득대체율 인상 반대)는 대신에 실업과 출산, 군복무 등의 기간을 연금 가입기간으로 산입하는 ‘크레딧 제도’, 중위소득 50% 이하 노인들에 부가급여를 지급하는 등의 대안을 함께 담았다. 조세정책에서도 소득세 각종 공제항목 정비와 금기시되는 부가가치세 인상까지도 내건 반면에 상속증여세의 최고 세율을 낮춰 계층 간 타협을 하자는 제안을 담았다. 정책의 수용성을 고려한 세심한 접근이라고 볼 수 있다. 새로운선택의 공약이 극찬할 만한 수준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개혁신당과 비교하자면 한 마디로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 주목도 면에선 새로운선택에 비해 개혁신당이 압도적이다.
처참한 수준의 제3지대 정책들
개혁신당과 새로운선택을 제외하면 다른 제3지대 정당들은 아예 정책이 보이지 않는 수준이다. 물론 아직 신당의 전열을 정비하지 않은 시기지만, 그걸 감안해도 각 정치 세력이 어떤 지향을 가지고 있는지, 서로 뭉치고 합당하는 선택을 한다면 어떤 가치와 의제를 공유하는지조차 뚜렷하지 않다. 그나마 ‘기후’와 ‘노동’이란 뚜렷한 가치 지향을 유권자들에게 일관되게 알려온 녹색당과 정의당의 선거연합정당만이 어떤 지향을 가지는지를 직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을 뿐이다. 녹색당과 정의당도 연합정당을 통해 어떤 정책 연대를 할 것인지, 이번 총선에서 어떤 의제와 정책으로 우리 사회를 전환하고자 하는지를 보다 분명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제3지대 정당이 정치권에서 지속가능하려면 의제와 정책을 주도해야 한다. 바라건대, 전향적인 대중교통 정책인 49유로 티켓을 만들어낸 독일 녹색당과 같은 역할을 제3지대 정당들에 기대한다. 독일 녹색당은 2022년 독일에서 유가 급등으로 유류세 인하 논의가 시작되자, 대안으로 9유로(약 1만3000원)로 한 달간 대부분의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9유로 티켓을 제시했다. 결국 3개월 한시적으로 이 정책이 도입됐다. 폭발적인 호응을 얻은 이 정책은 상시적인 정책인 49유로 티켓으로 재탄생했다. 이처럼 한국의 제3지대 정당들이 시민들에게 효능감 있는 정책,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꿀 대담한 대안을 제시해주길 바란다.
<윤형중 LAB2050 대표>